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승우 작가의 <소설가의 귓속말>은 어느 한 부분 의미있지 않은 글이 없었던 것 같다. 전체적인 느낌이 통일을 이루는 글이면서도 조각조각 다양한 의미와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글쓰기와 발견하기에 관한 주제들인데 그가 소설쓰기의 영광에서 말했듯 신인상을 받은 직후의 장면부터 현재를 향해 묵묵히 걸어왔을 소설가로 걸어온 삶의 귀퉁이들을 제목에도 제시한 '귓속말'이라는 특정한 전달 방식을 고안하여 풀어 나간다.

173쪽. 문제는 소설이나 영화와는 달리 우리의 삶이 임의적 플롯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흐르는 시간의 한 지점을 막고 여기까지 내 야기야, 할 수 없다. ..

작가는 서사 그 다음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으나 작가의 의도를 존중해야 한다는 플롯의 문제를 들려준다.

일상에서 때로는 이야기와 삶을 구분이 모호해지는 일도 더러 일어난다. 삶은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야기는 삶 속에서 뽑아낸 하나의 플롯이라는 문제의 핵심 같은 게 어쩌면 독자의 마음이 작가의 마음과 어느 부분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점들 같았다.

창작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작가가 세심하게 골라내 들려주는 말들은 참 유익하게 다가온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읽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이승우 작가의 책들을 읽으며 나도 뭔가 창작의 세계에 한 걸음 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에릭직톤의 초상> <식물들의 사생활> <생의 이면> 이런 제목들이 눈에 띈다.

44쪽. 다비드 르 브르통은 보름 동안 도보 여행을 한 청년 루소의 고백을 소개한다. '나는 한번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며 이렇게 뿌듯하게 존재하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때 혼자 걸어가면서 했던 생각들과 존재들 속에서만큼 나 자신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35쪽. 보이는 대상을 향한 주의 깊음이 아니라 보는 주체를 향한 주의 깊음이다. 보이는 자기를 주의 깊게 보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그의' 외부, 그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149쪽. 실체와 그림자는 닮았지만, 닮았을 뿐 같은 것은 아니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기원이고, 하나는 다른 하나에 예속되어 있다. 질적으로도 완전히 다르다. 그림자에게는 생명이 없다. 그림자는 실체가 될 수 없다. 그림자는 실체에서 나왔지만 실체에 이르는 길은 막혀 있다.

151쪽. 이 그림자는 처음에는 실체에서 비롯했지만, 그의 기원인 실체가 사라졌으므로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은 고유한 실체가 된다. 실체로서의 그림자는 내용이 텅 비어 있으므로 껍데기이고, 결여, 불완전, 거짓, 혼란을 그 속성으로 한다.

222쪽. 하유미 소설*에 나오는 회사원은 회사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회사가 하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들의 일은 보직에 따라 맡겨진 개별적인 업무가 아니라 시킨 일에 대한, 그것이 무엇이든 성찰하지 않고 하는, 무조건의 복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