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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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 우리집 상황이 이 책을 넘어서 버렸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의 100세 생신이 다가오던 날,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큰머느리 외숙모가 갑짜기 돌아가셨다.

그 뒤 외할아버지의 100세 생신은 조촐하게 치뤄졌고, 외숙모의 장례식은 그보다 먼저 엄수되었다. 어린 시절의 작았던 내가 가끔 보내져 지내곤 했던 시골 외갓집. 아마 그날 장례식에 참석했던 식구들의 이야기를 모으면 이런 책 한 권이 나오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외할아버지나 돌아가신 외숙모의 사연이 갑짝스러워서 안타깝고 여러가지 내게 쌓여있던 묵은 감정들도 떠올랐었다.

멕시코라는 국가에 대해 잠시 생각할 수 있었던 책이었고, 점점 해체되어 가는 가족의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등장인물이 많고, 대사도 많아 장편 시나리오 한 편을 읽는 기분도 들었다. 평소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거의 접하지 못해서 배경지식 같은게 조금 전무했고, 대화체의 소설에 개인적으로 익숙해지지가 않는 것이 책에 집중하기 힘든 점도 되었다.

죽음을 앞두고 우리는 여러가지 삶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질병에 의해 삶을 정리하고 살아있는 이들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해야 하는 순간이라면 마음 정리의 시간이 필요로 할 것이다.

빅 엔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부모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그의 마음은 조금 겸손해지고, 선명해 졌을런지도 모른다. 책은 그런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기 보다는 대화와 상황의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인물들에 대해 전체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방식을 취한다.

56쪽. 빅 엔젤은 가끔 기분이 안 좋을 때면, 리틀 엔젤을 이름 말고 별명으로 불러대곤 했다. '저 미국인'이라고 말이다.

35쪽. 언어가 한 가족을 어떻게 다시 세웠는지 알 길은 없다. 그가 온몸을 바쳐 영어를 배우려 했을 때, 그의 자녀들은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스물 여덟의 리틀 엔젤은 미국 여자의 아들이다.

135쪽. 무덤은 작은 갱도 같았다. 주변에는 평평한 묘비들이 잔디밭 위 모자이크처럼 늘어져 있었다.
136쪽. "우리 둘째 오빠 묘야. 삼촌."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브라울리오 데 라 크루스. 1971-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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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쪽. 오전 9:45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케이크는 냉장고에 보관해놨다가 11시쯤 꺼내 글자를 쓸 예정이었다.

451쪽. 그 당시 국경은 지금과는 딴판이었다. 거대한 장벽도, 드론도, 적외선 탐지기가 설치된 감시탑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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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의 가족 범위도 이전처럼 단순한 가계도만으로 정의할 수가 없다. 이혼과 재혼가정은 물론 결혼이주민, 동성결혼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확대되고 있다. 간통제와 호주제 또한 폐지되었다.

미국과 국경을 접한 멕시코의 경우도 우리보다 더 빨리 가족의 경계가 다양한 형태를 띄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지금의 한국처럼 핵가족화 되는 현상은 아직은 아닐 것 같다. 한국의 산아 제한 정책이나 높은 사교육비는 지금의 가족 형태를 특징지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73쪽. "난 형의 생일에 진짜 커피를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해. 스타벅스 한 상자 사야겠어."
리틀 엔젤이 말했다. 마리루는 스콘을 두 개째 먹었다. 칼로리 따위는 개나 줘.

이런 식으로 때로는 대화끝의 독백도 많다.

423쪽. "나는 떠났어. 나 자신을 뭔가 대단한 존재로 만들고 싶어. 내가 세상을 바꿀 거라 생각했지."

440쪽. "앵무새 기억나?" 그건 수십년도 더 된 이야기였다. 그때 빅 엔젤은 영주권을 딴 지 겨우 6개월 밖에 되지 않았었다. 미국인이 된다는 건 셸락 코팅제를 잘 바르는 것과 흡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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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국경을 길다랗게 사이에 둔 멕시코 중산층 가정의 가게도가 중간중간 그려지며 그들을 관통하는 삶의 조각조각을 연결시키는 길고도 짧은 이야기들을 통해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삶을 인식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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