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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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50만 소도시 B구역 산기슭 사설 동물원의 파충류관에서 사육사로 일하던 그녀는 뱀에게 동물성 단백질로 만든 프로틴을 사료로 주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살아있는 닭이나 토끼가 지급되었다.

폭풍우가 몰아친 날 산사태로 동물원이 무너지고 몇몇 동물들은 구조 되고 비단뱀을 비롯한 몇몇 동물들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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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이 왜 허물을 벗는지, 언제 벗는지, 정확히 알려진 건 없다. 뱀은 제가 허물을 벗고 싶을 때 벗는다. 15쪽.

동물원은 보육원과 비슷했다. 새끼들은 어미와 떨어져 사육사의 손에 자랐다. 24쪽.

방역 센터는 'T-프로틴'을 하루에 두 번 이상 복용할 것을 권정했다. 처음 방역 센터에서 프로틴을 공급했을 때만 해도 80%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73쪽.

이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허물을 떠안았다. 이 허물로부터 새로 태어나는 것이 소원인 이들의 애환은 재난에 가깝다.

이들이 허물을 제거하기 위해 방역센터에 입소하면서 미심쩍은 일을 목격하고, 그곳을 나와 자신과 도시의 허물과 대면해가는 내용이 이 책의 주요한 사건이다.

뱀과 소도시의 방역센터, 도시의 생산동력이 바코드로 대변되는 T-프로틴의 복용, 또 그들 앞에 나타난 또 다른 희망인 뱀 "롱롱"의 허물벗기를 통해 이들은 잊혀진 환상과 꿈과 소원이 기업이 된 도시의 촘촘한 그물망을 속을 각 개인의 허물을 똑바로 마주할 희망의 순간을 향해 한단계씩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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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허물이 죄다 벗겨진다고 했거든." 61쪽.

D구역에 가면 뱀을 모시는 무당들 천지야. 세상의 허물을 벗기려고 언젠가는 뱀 신이 나올 거라 믿는 거지. .. 롱롱의 전설을 믿는 것과, 롱롱을 내손으로 꺼내는 것은 숫제 다른 말인 거다, 이 말씀이야. 66쪽.

07년 김유정 문학상의 작가 이경의 책, <소원을 말해줘>는 허물이라는 은유적 장치들을 전설속의 뱀을 통해 재현하고 있다.

프로틴으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의 풍자는 동화 <원숭이의 꽃신>을 떠올리게 했고, 밤에 피리를 불면 나타난다는 집안의 뱀들에 관한 잊혀졌던 두려움들도 떠올랐다.

<괴물> 같은 영화나 몇 해 전의 한국사회를 일시에 공포에 떨게 했던 전염병 메르스 사태 등도 생각나게 한다.

갑갑한 도시 특유의 꽉죄여진 삶의 장면들이 문득 작가의 소설이나 환상만이 아닌 지금의 현실과 때로는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건 나 뿐만은 아닐 것같다.

방역 센터가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는 말은, 말 그대로 언제까지나 개발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개발을 멈춰도 안 되고, 개발에 성공해서도 안 되는 것이죠. 이 도시의 생산 동력은 시민들이 허물을 입고, 허물을 벗는 데서 나옵니다. .. 153쪽.

단백질 영어명 프로틴(protein)은 그리스어의 proteios(중요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단백질의 한자 표기에서 단(蛋)이 새알을 뜻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단백질은 달걀 등의 새알의 흰자위를 이루는 주요 성분이다. -위키백과

허물벗기라고도 한다. 곤충의 경우 몸의 겉이 딱딱하므로 몸이 자랄 때에 허물을 벗어버리고 자라게 된다. 즉, 애벌레일 때 몸이 커짐에 따라 여러 번 허물을 벗고,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변태(탈바꿈)를 할 때도 허물을 벗는다. 척추동물 중 파충류에서도 볼 수 있는데, 뱀의 경우 몸이 커짐에 따라 낡은 껍질을 벗고 자란다. -탈피脫皮 학습용어 개념사전


정말로 허물을 벗고 동면하는 뱀들의 사생활이 롱롱을 통해 꽤 다양한 각도로 구사되고 있어서 조금 새로운 부분들이었고,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던 것 같다.

무겁고 어두울 수 있는(?) 주제를 매끄럽게 전개하고 있어 가볍게 그러나 몰입해 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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