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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 글로벌 거지 부부 X 대만 도보 여행기
박건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4월
평점 :
정릉의 달동네에 사는 부부는 추운 겨울을 비교적 따뜻한 대만에서 지내기로 한다. 하루 경비 2인 기준 1일 300위안. 한국 돈 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대만을 도보로 걷는 한일 부부의 68일간의 기록.
4년 전, 대만에 온 부부는 몸에 I♡TAIWAN이란 문신까지 새겨가며 그때의 기억을 간직해오고 있었고, 3년 후 홀로 대만을 여행하며 그런 확신이 동경으로 바뀐 경험을 한다. 마침 이전에 출간된 책이 대만에서 출간이 되어 1일차 출판사 미팅도 마친다.
기본적인 동선도 고민할 필요없이 그들은 서쪽행을 정해두었고, 대만 친구로부터 권장받은 동쪽행을 시작한다. 목적지는 없으며, 하루 20~30km를 걷는 두 달간의 겨울나기 여행. 서로 티격태격 하면서도 상황에 적응해가며 험난할 수 있는 도보여행을 이렇게도 괜찮은 느린 여행으로 기록해 두었다.
와이파이로 카우치서핑(해당 사이트 가입자끼리 집 소파 또는 빈 이부자리에 여행자를 재워주는 시스템)을 이용하며, 기차역에서 햇빛 아래서 젖은 텐트도 말린다.
떠나기 3주전 모 관광서에서 <저가 여행>으로 강의를 하기도 한 저자는 마침 단체로 대만으로 여행온 참석자들과 만나기도 한다.
옛 탄광마을 호우동의 폐교 위기의 초등학교는 호우동 관광명소다. 스페인 순례길에서 주워온 운동화로 버티던 아내 미키는 근처 경찰서에서 뜻밖의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그의 아내 미키는 이미 인도나 태국을 여행한 도보 여행 경력자로 숙소에 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빈방이 없으면 로비에 텐트를 치고 잘테니 최대한 싸게 해달라는 식. (48쪽)
그래도 로비의 텐트에 지친 순간에는 이제 누가 좀 재워주었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는 부부. 여행객에게 경찰서가 관광안내소 만큼 고마운 존재라고 하니 혹시 도보여행을 하게 되면 꼭 참고할 사안같다.
길을 물어보는 사람에게 때로는 구호물자도 건네 받는 다고. 산을 넘고, 도교사원을 지나, 온천공원에서 발을 담그는 휴식(68쪽), 다시 텐트와 이동, 구호물자, 카우치서핑, 도보, 계곡온천(80쪽), 냉천이 솟는 마을(84쪽)을 지나, 학교야영과 화련행 난코스 쑤화꽁루의 경치(91쪽)-대만 달리기를 한 마크는 해골을 그려놓았다고, 12일 만에 도착한 난아오의 자연농원(기차로는 2시간 거리라는데..)에서 4일간 머문다. 목숨이 여러개가 아니므로 도보원칙을 깨고 쑤화꽁루는 히치하이킹.
난하오에서 여행동지의 죽음을 접한 저자는 친구의 장례 직후 귀국하여 일본에 있는 미키를 불러 가난한 여관살이를 했다고. 소일거리를 하며 틈틈히 책을 쓰고 서울로 옮겨 전세집을 마련하면서 이번 대만 여행이 가능했다고 한다. (110쪽)
책 날개의 자기 소개가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된다. 박건우, 1984년생. 천운 덕에 이소룡보다 오래 살고 있는 삼십육세. 시대를 풍미하고 요절한 젊은이들의 나이를 넘는 순간 지금 삶은 덤이라며 매일 새 삶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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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1/3은 이렇게 시작했다. 이제 나머지 2/3는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겠다.
러시아에서 헝가리로 날아간 내 동생이 귀국하면 책을 건네줘야 겠다.
각자가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것은 획일화된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더 나은 삶이 아닌 더 나은 생각만이 우리를 천천히 느리게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말해 줄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