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사방에 있다 - 시와 일상의 풍경
김정란 지음 / 한얼미디어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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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거대한 텍스트이다. 그러니 눈이 밝은 자는 심심할 틈이 없다. 사물들에게는 저마다 입이 달려 있다. 아주 작은 말들, 가벼운 말들, 그러나 너무나 의미심장한 말들을 속삭이는 작은 입들이.”(p190에서)


김정란의 산문집 <빛은 사방에 있다>는 이처럼 삶의 작은 부분의 세심하고 면밀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여성작가의 특유의 아름다움과 서정성을 담은 제목이 일상을 향해 머금은 잔잔한 미소를 떠 올리게 한다.


가끔 TV 등에서 진보적인 여성학자로 등장해서 보수적인 진영의 인사들을 공격하는 말투가 제법 날이 제대로 서 있다는 인상을 주는 논객으로만 봤지, 책이나 문학적 성향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논객으로 곧잘 우리사회에 만연한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정체와 지난날 우리의 암울했던 정치적 역정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명료함은 이내 저자의 됨됨이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빛은 사방에 있다>는 시를 위주로 쓴 평론과 이념적 성향의 글들을 제외하면 다분히 사회비판적인 시각의 내용을 담은 짧은 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회비판적인 시각들이 문학 작품과 공유되면서 날카롭고 아프지만 시 본령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잊어 버리지 않고 있다. 


시인답게 전체적인 토막글들이 주는 인상은 다분히 서정적이었다. 하지만 문체적인 성향만 그렇지, 담고 있는 내용은 때론 시적인 서정성을 넘어 사회 참여적 성향을 여실히 드러내기도 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70, 80년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우리 독재의 뿌리를 가감없이 드러내며, 현정부를 마치 빨갱이처럼 취급하는 일부 극우주의자들을 향해 신랄한 비판의 칼날들을 들이대고 하다.


김수영의 대표적인 참여시인 “풀”을 분석하면서 저자는 작금의 우리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직설적이면서 비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커먼 안경을 쓴 쿠데타 사령관은 총에 맞아 죽어 다음에도 여전히 공동체의 맥락에의 맥락을 휘저으며 돌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풀이 이제 바람보다 빠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들은 그 쿠데타 사령관을 신처럼 섬기며, 풀들에게 ‘빨갱이’누명을 씌우려는 시도를 중단하지 않고 있다”(p97에서)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예수를 믿고 예수쟁이지만, 현재 우리 나라의 개신교가 빚어 내고 있는 종교적 양태는 마치 미국 지상주의를 희구하는 배부른자들의 욕심과 야만이라고 그 속내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강대국의 정신적 시민이 된 한국 개신교도들이 가지고 있는 턱없는 ‘선민의식’과 ‘우월의식’은 토속 종료의 아이콘들을 공격하는 무지한 문화적 테러마저 감행하게 만든다. 그들은 단군상의 목을 자르고도 매우 당당하다”(p248에서)


위와 같은 사회 비판적인 성격의 내용이 책 한편의 씨줄을 엮어내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상의 잔잔한 삶의 조각들에서 철학적이며 시적인 영상을 날줄로 엮어 내고 있다. 이성적인 씨줄과 감성적인 날줄이 엮이어 이 책 전체의 맥락을 밀도있게 구성해 낸다.


<빛은 사방에 있다>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우리 삶의 주변에서 희망과 아름다움의 조각들을 찾아 내면서 삶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물어가고 있다. 특히 일상의 영역에서 발견한 소중한 사유의 흔적들을 시와 함께 삶의 형이상학적 본질로 승화시키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목욕’은 현실속에 안주하며 지극한 편안함을 찾는 행위이기에 우파적이고, ‘샤워’는 서서 긴장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항상 밖으로 뛰어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행위이기에 좌파적이라고 지적한 현존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의 일상의 철학에서 그 단적인 ‘빛’의 형상들을 찾아내고 있음을 한 예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삶의 작은 부분에서 지극한 실존적 쾌감과 나아가 사회적인 비판의식까지 아우르는 작업을 해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전반적으로 그 작업들이 다소 시라는 영역 때문에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색채를 드러내지만, 그것도 저자의 문체적 경향으로 본다면 그렇게 큰 무리없이 볼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일상의 잔잔한 부분을 다루는 산문치고는 다소 소재나 내용면에서 추상성이나 관념성을 완전히 제거하기란 힘들 듯 하다. 시가 가지는 상징성을 여지없이 작품 전체에 깔아 놓은 듯한 저자의 의도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빛은 사방에 있다>는 기존의 읽어 왔던 여성 작가들이 서정적이면서 감성적인 산문류와는 차별화되어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시를 작품을 전개해 나가는 주 기제로 사용하면서도 그 내용들이 다분히 사회적 이념적인 부분들을 직접적으로 건드리기 때문에 때론 생경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읽어왔던 여성작가들의 가벼운 일상의 입담과는 다른 또 다른 차원의 산문류라는 점에서 분명 <빛은 사방에 있다>는 일독의 가치가 있었다. 


기존 수많은 작가들의 가벼운 산문류를 읽어가다 보면 이내 그네들의 삶의 모습을 속속들이, 때론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빛은 사방에 있다>역시 그런 점에서는 기존의 산문류와 맥을 같이 했다. 하지만 단순한 일상의 잔잔한 서정성 짙은 묘사에서 벗어나, 여성 작가지만 미시적이 아닌 거시적인 입장에서 이 사회를 읽어내고 따져가는 모습에서 이 시대의 또 다른 여성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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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글쓰기 특강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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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범람하고 있는 논술 관련 서적들을 보면 우선 그 양에 질식할 것 같다. 독서와 논술이 이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전략으로 사용되고부터 엄청난 양의 논술 관련 서적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양에 비해 그 질적 가치를 따지다 보면 이내 허망해지기 일쑤이다.


대개는 논술이 마치 언어의 형식적인 면만을 야무지게 다루어 내면 되는 줄 아는 냥 언어의 형식면을 주로 다루거나 혹은 내용의 피상적인 면만을 건드리는 경우가 가장 다반사다. 물론 그 내용 또한 대부분 전체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동서양 고전의 문구나 문장을 일부분 인용해서 제시해서 논술을 유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학생 글쓰기 특강, 강준만 저, 인물과 사상사>는 하지만 기존의 논술 관련 서적과는 그 거리를 두고 있다. 글쓰기의 방법을 다루되 단순히 언어의 형식적인 면에 강조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가로지르는 가치와 사상의 문제에 역점을 두면서 글쓰기의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편향과 편견의 논술의 넘어서!


우선 그의 책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소제목이 ‘세상엔 공짜는 없다’였다. 이미 방대한 양의 대중서적을 낸 저자이기에 그 말이 담고 있는 고충과 아픔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실감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과 사상’을 비롯해서 ‘한국 현대사 산책’에 이르기까지 몇 십권에 이르는 그의 저서는 이 시대의 다양한 부분을 감싸고 때론 찌르면서 애독되고 있다.


저자 강준만은 우선 언론학과 교수답게 신문사설에서 논술 공부의 졸가리를 잡아라고 강조한다.


“매일 신문 사설 10편 내외를 꼼꼼히 읽는 버릇을 몇 개월간만 지속하면 자신의 글쓰기 실력이 놀라울 정도로 달라져 있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내 경험담으로 보증한다. 속는 셈 치고 일단 한 번 시작해보기 바란다”(p17에서)


하지만 신문 사설이 가지고 있는 이념 편향성을 넘기 위해 적어도 세 개 정도의 신문을 보수파․진보파․중간파로 분류해서 각각의 논조를 비교․평가해 나가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비교적 자유로운 글쓰기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신문 칼럼 읽기로 넘어가라고 강조한다.


논술이라 함은 곧 자신의 주장을 적절한 논거에 맞게 전개시켜 나가는 글이다. 이런 글의 가장 큰 함정은 다름 아닌 편향과 편견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있다. 그런 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두 가지 이상의 신문 사설을 비교해 가면서 보라고 강조하는 점은 논술 공부의 가장 핵심적인 비법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논술의 형식과 내용을 가로지르고 넘어서기


<대학생 글쓰기 특강>은 제목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주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논술 특강이다. 하지만 내용을 훑어 보면 단순히 대학생들의 취업관련 논술만을 다룬 서적이라 보기는 어렵다. 우선 논술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형식과 내용을 폭넓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입시와 관련한 논술 공부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다름 아닌 이 책이 단순히 글쓰기의 피상적인 면, 즉 언어의 형식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주요한 문제를 골고루 전면에 제시하면서 전개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에서 비롯해, 이건희, 이문열, 김용옥 등 이 시대의 화두가 될 만한 무수한 이들의 생각과 주장의 파편들을 논술의 주 재료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논술 서적이 동서양 고전의 딱딱하고 대부분 현실과 동떨어진 죽은 지식의 쪼가리를 다루는 반면에 저자는 지금 이 시대를 감싸고 꼬집어면서 논리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실감나는 논술 참고 서적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말 없이 글 없다’, ‘주어에 책임지자’, ‘접속사 사용을 자제하자’, ‘어정쩡한 대안을 경계하자’, ‘스타일이 내용을 압도한다’, ‘화합적 글쓰기를 지향하자’ 등에서 보듯이 다분히 논술의 형식적인 면도 놓치지 않고 언급하고 있다.


퓨전 스타일의 글쓰기 방식


이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생존 전략의 하나로 책읽기와 글쓰기가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무수한 글읽기의 재료라 할 수 있는 책들을 무수하게 나오고 있지만, 정작 그 글들을 읽고 소화해 내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글쓰기는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듯 하다. 시중의 수많은 논술 서적들이 이런 것을 역설적으로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강준만의 <대학생 글쓰기 특강>은 단순한 논술방식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다. 다양한 사회과학 지식을 쉬운 예들을 통해 제시하고, 또 나아가 이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에 연결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도 인문사회과학적 이론․개념과 글쓰기 방법을 결합시킨 형식이다.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퓨전’스타일인 셈이다.”<머리말에서>


저자가 머리말에서 이미 제시한 바와 같이 이 책은 단순한 논술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넘어 이 시대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사회, 문화, 정치 분야의 문제를 죽은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식으로 글쓰기 방식과 결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나아가 저자 특유의 쉬우면서도 명확한 전개 방식이 더해져 큰 품이 들이지 않고 쉽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점이 이 책이 가지는 또 하나의 미덕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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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모범생 사계절 중학년문고 6
장수경 지음, 심은숙 그림 / 사계절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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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 도서관에서 교육학 장서 부문을 뒤적이다 이 책을 발견했다. 우선 제목이 주는 이미지가 너무 명료했다. 하지만 <전교 모범생>이라는 제목 옆에 다소 우스꽝스럽고 일그러진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왠지 제목이 주는 의미와는 상반되는 듯해서 아동도서지만 뭔가 묘한 역설적인 의미로 다가왔다.


혹시나 제목에서 주는 의미가 이 시대 우리 교육의 우울한 초상의 한 단면과 우리 교육 현실의 일그러진 부분을 아이들의 눈으로 사실적으로 파헤치지 않을까라는 기대로 책을 펼치게 되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가끔 '우리 아이들도 내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그대로 따라 가겠지'라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착각은 그저 착각이었다는 점을 곧잘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서 읽어 낸다. 곧 우리 어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른의 눈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 아이들 그 자체의 눈이라는 점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다.


이런 점이 교육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특히 초등학교 전후로 형성된 삶의 틀이 인생의 거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틀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어른의 눈으로 보는 아이들의 세상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과 그 가치일 것이다. 어른들은 곧잘 그런 아이들의 세상을 마치 다 아는 것인 냥, 혹은 시간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바라보는 어리석음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 삶은 우리 어른들의 축소판은 분명 아니다. 아이들은 그들 나름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방법과 지혜를 곧잘 망각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는 어른의 방식만이 삶의 유일한 잣대인 냥 아이들에게 내세우게 된다.


<전교 모범생>은 그런 편견으로 한 발짝 물러서게 해 주는 동시에, 우리 아이들의 시선으로 그들의 세상을 바라보게 해 준다는 점에서 교육동화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나아가 우리 어른들의 비뚤어진 시각과 욕심을 아이들의 순수한 관점에서 반성케 해 준다는 점에서 아동동화의 범위를 넘어선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해룡이라는 아이를 통해 우리 교육계의 문제를 실감나게 제시한 창작동화이다. 단순히 우리 교육계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시각에서 교사와 학부모를 바라보는 각도를 예리하게 포착해 드러내고 있다.


주인공 '해룡'이는 초등학교 5학년으로 평범하지만, 자존심과 장난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야무진 아이이다. 하지만 때론 장난기와 엉뚱함으로 곧잘 친구들과 선생님으로부터 오해나 꾸지람을 듣는 아이다. 하지만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한없이 괴로워하는 진실성을 보여주는 아이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해룡이의 장난으로 인해 체육 선생님에게 심한 체벌을 받고 해룡이가 상처를 입으면서 시작된다. 해룡이의 엄마는 학교로 찾아가 해룡이의 상처에 대해 따지게 되고 이로 인해 학교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교장은 해룡이에게 부득이하게 전교 모범상이라는 상을 수여하는 대가로 해룡이 엄마의 입을 틀어막게 되면서 일이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그런 상황을 알고 학교에 찾아가 일을 따져 물으면서 일은 크게 벌어지고 결국 교장은 학교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 일로 주인공 ‘해룡’이는 상을 받는 순간부터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고 그의 엄마는 해룡이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일은 모든 이들이 알게 되었고, 결국 엄마도 받은 상을 포기하게 되고, 해룡이도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 동화가 주는 핵심은 '해룡'이라는 주인공이 자신이 받지 말아야 하는 상을 받은 그 순간부터 처하게 되는 양심의 가책과 옳고 바름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겪는 도덕적 아픔에 있다. 이것의 극복을 통해 주인공 '해룡'이는 한 계단 더 성장하게 되고, 더 나아가 더 밝고 씩씩한 어린이로 자랄 수 있는 동력을 얻음으로써 우리 아이들에게 믿음과 희망을 제시해 준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모범상 수상으로 인해 벌어지게 되는 교사, 학부모 그리고 아이들 사이의 문제는 어두운 교육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듯 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문제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아이들 편에서 다분히 객관성과 진실성을 유지하기에 거북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이와 같은 동화를 읽으면서 자칫 우리 교육의 어두운 면만을 보고 지나치게 부정과 편견으로 일관한다면 이는 분명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동화가 주는 매력이 희망과 꿈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라면, 이런 점은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전교 모범생>은 어느 거창한 교육관련 저서보다 솔직하고 진실하다. 그 솔직함과 진실함이 이 땅의 교사와 학부모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그 교육현실은 다름 아닌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가식과 허위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해룡'이라는 개구쟁이를 책을 통해서나마 만난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방학 중에 만난 해룡이를 개학 하고 나면 우리 아이들로부터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때론 거창하고 무겁고, 한편으로 어려운 책들에서 벗어나 우리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떤지 궁금한 독자들이 있다면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나아가 이 땅의 수많은 선생님들과 학부모들, 그리고 개구쟁이 아이를 둔 부모라면 꼭 한번 이 책을 펼쳐 본다면 의외의 성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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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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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전문 철학서를 읽으면서 ‘철학자들은 삶의 단면들을 왜 이렇게 추상적이고 어렵게 다룰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철학 그 본연의 학문적인 탐구에서 어쩔 수 없이 사용되는 난해와 용어와 이론 때문이겠지만, 결국 삶의 진실을 알뜰하게 밝혀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면 좀 더 쉽게 쓰여 져 독자들에게 다가갔으면 했다.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는 이런 바람을 충분하게 만족시켜 준다. 저자는 이미 <철학풀이 철학살이, 민음사 판>, <소설 속의 철학, 문학과 지성사>, <쾌락의 옹호, 문학과 지성사>등의 저서를 통해 철학이 얼마나 우리 삶과 밀접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철학이 추상적이고 난해한 학문의 영역에서 얼마든지 우리 삶의 주변으로 내려올 수 있는지를 문화의 갈래를 넘다들면서 잘 보여주었다.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도 이런 맥락에서 멀지 않은 저서이다. 이번에는 영화속에서 철학의 단면들을 찾아내고 난해한 철학 이론들을 영화와 관련시켜 쉽게 전달하고 있다.


영화와 철학을 가로지르기


고금의 뛰어난 철학자들과 난해한 철학 이론들이 <철학, 영화 캐스팅하다>에서는 영화의 한 장면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트루먼 쇼>를 통해 들뢰즈의 ‘노마드’(nomad, 일자 중심의 근원성과 이원대립적인 흑백논리를 거부하는 일종의 차이와 타자를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의 개념을, <슈렉>이라는 영화를 통해서는 보이는 것 너머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칸트의 ‘숭고함’의 개념을 풀어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비트겐슈타인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일급 철학자들의 난해한 이론들이 마치 영화속의 장면과 이야기들 속에서 술술 풀어져 나온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금세기 최고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저서 <철학적 탐구>의 ‘언어 놀이’라는 개념을 마틴 브레스트 감독의 <여인의 향기>의 두 주인공 프랭크와 찰리의 관계 설정을 통해 풀어낸다. 그러면서 비트겐슈타인의 이론을 아주 간명하게 드러낸다. 


“요컨대 언어 놀이에서의 쓰임새가 곧 그 언어의 의미다. 그러므로 의미는 그 게임이 이뤄지는 방식에 따라 다채롭게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언어 게임이 중요해진다. 그것은 일정한 규칙을 따르고 있으며, 그 규칙은 게임이 참여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삶의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p308에서)


<매트릭스>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것을 보여준다!


<매트릭스>를 통해 철학에서도 난해하기로 유명한 ‘즉자존재’와 ‘대자존재’의 개념을 알기 쉽게 전달한다. 샤르트르의 실존적 인간의 개념을 네오를 비롯한 진짜 인간과 스미스를 비롯한 가짜 인간들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 첨예하게 드러낸다.


매트릭스라는 세계는 가짜가 모든 현실을 장악하여 통제하는 곳으로 여기에서는 가짜와 진짜의 구분은 거의 의미가 없다. 즉 가짜가 진짜를 지배하는 그런 허무맹랑한 환상이 현실로 다가옴을 암시하는 무서운 세상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세상에서 진짜를 구하기 위해 모피어스와 네오가 힘을 합쳐 가짜들의 음모에 맞서고 진짜들을 모두 구출하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가짜인간들을 본질이 우선하는 즉자존재로, 모피어스와 네오를 실존이 우선하는 대자존재로 관계 지운다. 즉 즉자존재는 본질이 먼저 있고 존재가 그것에 맞춰서 만들어지는 일종의 규정되고 획일화된 것이고, 대자존재는 저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선택의 자유를 가진 것으로 관계 지운다. 곧 실존 혹은 존재가 먼저이고 본질은 그 다음인 것이다.


“인간 복제가 목전의 현실로 다가온 지금, 어쩌면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가 부딪쳐야 할 실제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상황이 어떤 것이든 진짜 인간의 기준은 변함없는 것이니, 우리는 그런 기준으로 가짜 인간과 진짜 인간을 구분한다. 그것은 선택, 믿음, 사랑을 통해 자신을 어떤 존재로 만들어 가며 실존하는 대자존재이다.” (p81에서)


요컨대 영화는 금세기의 가장 화려한 문화의 한 영역이자 자본주의가 나은 가장 생산력 있는 매체이다. 하지만 철학은 인문학적인 고고함과 그 역사적 찬란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중들로부터는 먼 거리에 놓여져 있다. 저자는 이런 거리를 영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아주 가깝고도 간명하게 당겨 놓는다.


갈래를 넘나드는 글읽기와 글쓰기


저자 이왕주 교수는 철학을 전공했지만, 실제 이전 저서들에서 문화의 하위 갈래를 넘나드는 실험과 글쓰기를 진행해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철학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전달하기보다 먹고 사는 가시적인 삶에서 찾고 그 의미의 모습을 궁구해 가는 실제적이면서도 실용적인 면들을 질감 있게 전달해 왔다.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도 이 범주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이전의 저서인 <소설 속의 철학>에서 드러나던 초심의 긴장감과 팽팽한 맛이 떨어지는 것이 다소 아쉽다. 하지만 전작이 소설을 통해 철학을 이야기했다면, 이 책은 영화를 통해 철학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분명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갈래를 넘나든다는 것은 곧 문화의 하위 갈래들의 차이와 상대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점을 십분 글쓰기와 글읽기에 활용했다. 특히 독자들에게 다가서기 어려운 철학이라는 영역을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또 다른 후속 작품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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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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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대중소설가가 자신의 글쓰기 삶을 솔직담백하게 기술해 놓은 <유혹하는 글쓰기>는 지나치게 이론화되거나 형식화된 쓰기 이론서와는 다르다.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삶과 밀착된 자신만의 글쓰기 삶을 소설가다운 말솜씨로 풀어내고 있다. 번역서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번역자의 매끄러운 번역과 작가의 재치 있는 말솜씨가 잘 어우러진 읽기 쉽고도 재미있는 쓰기 지침서다.

수많은 쓰기 이론서가 시중에 나와 있지만 정작 초보자들이 참고할 만한 쓰기 지침서는 매우 드문 것이 우리의 독서 현실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쓰기 지침서는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전범으로 하여 더하고 뺀 것이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실상 그 책은 전문적인 작가를 위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초보자들이나 글쓰기 비전문가들에게 내용상 적합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쓰기 지침서는 이 책을 전범으로 하고 있으니 시중에 나온 많은 쓰기 지침서들이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 교육 현실에서는 논리와 논술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 위장한 수많은 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실상 이런 책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만은 아니다. 입시에 초점을 맞춘 대부분 논리 논술 관련 책들은 학생들의 쓰기를 더 어렵게 만들고 우리 학생들을 글쓰기에서 더 멀어지게 만드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글쓰기는 논리 표출 이전에 글쓴이의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여러 파편들을 밖으로 표출하는 양식이다. 여기에 문법학자나 논리학자가 불필요한 여러 장치들을 적용시켜 글쓰기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물론 좋은 글은 명확한 논리와 문법 규칙을 정확하게 준수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 속에 글쓴이의 살아 숨쉬는 흔적들이 녹아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글이란 논리와 문법 이전에 우리 삶의 온전한 그릇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문법과 논리라는 장치를 무조건적으로 들이댄다면 마치 온전한 삶을 죽여 또 다른 삶을 기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문법 중심의 문장에서 벗어나 더 큰 단위에서 생각하고 표출해야 하며 진정으로 쓰고 싶을 때 펜을 들어야 함을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문법적으로 올바른 문장만 연달아 쓰다 보면 글이 너무 딱딱해져 유연성을 잃게 된다.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단은 글보다 말에 더 가까운 것이고 그것은 좋은 일이다. 글쓰기는 유혹이다.(p163)

문단이란 그 내용에 못지 않게 생김새도 중요하다. 문단은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지도이다.(p159)

나는 문장이 아니라 문단이야말로 글쓰기의 기본 단위라고-거기서부터 의미의 일관성이 시작되고 낱말들이 비로소 단순한 낱말의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고-주장하고 싶다. 글이 생명을 갖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면 문단의 단계가 바로 그것이다.(p164)

내가 글쓰기를 다른 일보다 좋아하는 이유를 딱 하나만 꼽는다면 이렇게 모든 것이 일시에 연결되는 통찰력의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런 현상을 가리켜 '핵심을 찌르는 사고력'이라고 불렀다.(p251)

작품에 대한 부담감이 유난히 큰 날은-즉 '쓰고싶다'가 아니라 '써야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날은-작품 자체도 엉망이 되기 싶다. 창작 교실의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는 그 '써야 한다'가 아예 일반화된다는 사실이다.(p288)


우리 학교교육 현실에서 쓰기 과목 하면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과목 중 하나다. 하얀 백지 위에 제목 주고 무조건 써내라 식의 강압을 우리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경험하게 된다.

학생들은 그들의 획일화되고 단편화된 경험들을 무조건 논리적이고 멋들어진 글로 만들어 내라는 압력 아닌 압력을 감당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들의 삶과 마음을 담은 글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이 책은 그런 상황에 뭔가 경고의 메시지를 날리고 있는 듯하다. '쓰고싶다'가 아니라 '써야한다'는 상황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글쓰기 뿐만 아니라 작가의 삶과 밀착된 소설 창작의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 작가의 이력서와 인생론을 통해 글쓰기와 관련하여 불완전하게나마 생애교육의 단편적인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글쓰기는 불완전한 삶에서 시작하여 완전한 삶을 향해 가는 지향 의식이다. 삶은 없고 문자라는 형식만 빌어 억지로 밀어낸 글쓰기는 삶을 도리어 힘들고 억압하는 요소가 된다.

그렇다고 이 책의 모든 부분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인기 있는 대중소설가의 글쓰기 지침서이기 때문에 소설 창작에 한정되었다는 점, 번역서기 때문에 우리 글쓰기와는 약간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글은 때론 그 모양과 느낌이 달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흥미와 재미에만 집중한다는 점 등에서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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