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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극장 2 - 존재의 비밀과 진리의 심연 하이데거 극장 2
고명섭 지음 / 한길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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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하이데거 저서와 사유 전반에 대해 다룬다. 존재와 시간을 읽다가 내 존재를 까마득히 잊은 채(?) 읽기를 마쳐야 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건데, 이 책은 분명 존재라는 두 글자를 사색의 틀 위에 올려놓도록 이끄는 힘을 보여주었다. 기존의 하이데거 관련 저서들과는 다른 재미와 품격을 준다는 점에서 일독의 의미가 있다.

 

하이데거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책의 내용이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는 점에서 이 책의 첫 번째 미덕이 있다. 물론 독자의 관심이나 수준에 따라 그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하이데거 관련 서적보다도 가독성이 높다는 점은 이 책이 철학 전문서로서뿐만 아니라, 철학에 대한 대중서적으로서의 위상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잘 읽힌다는 점은 자칫 이 책의 내용이 철학적 전문성이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존재와 존재론, 형이상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하이데거를 제쳐두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하이데거의 철학적 위상은 높다고 할 수 있다. 현대철학이 존재와 언어, 하이데거와 비트겐슈타인으로 대별되어 왔듯이, 하이데거는 영미철학에 대응하는 유럽철학의 최고봉이라는 점에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이런 점을 이 책은 완벽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철학서로서의 품격을 넉넉하게 지녔다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에 대한 일종의 전기적 성격이 책 제목에서 부각되고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하이데거 사상에 대한 실증적 논의가 분명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독의 의의가 크게 부각된다고 할 수 있다.

 

1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압도적인 분량에 이 책을 선 듯 읽어낼 엄두를 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울 정도로 이 책은 내용 구성에서나 문체의 유려함 측면에서 탁월함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엄청난 분량을 소화해내는 과정에서 텍스트의 구조나 문체의 일관성을 갖춘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작가는 그 일을 탁월하게 성취해 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의 미덕이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로 힘든 일 때문에 연말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해, 연초에 읽기를 마쳤다. 그저 삶의 힘듦을 책읽기를 통해 이겨보고자 했는데, 그나마 이 책이 조금은 삶에의 위안을 주었다. 존재와 존재론, 평생을 존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갔던 하이데거의 사유 과정을 그의 삶의 과정을 살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은 독서 경험이 되었다. 존재는 사유라는 그 말처럼 또 다시 존재의 사유를 위해 떠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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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지도방법 미래국어교육총서 1
박영민 외 지음 / 역락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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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논술 및 쓰기 지도에 도움이 될까해서 이전에 속았던 경험이 있지만, 다시 한번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있는데, 학교 현장의 쓰기 지도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확인...학자들의 논문 모음집에 불과하고, 그것도 그다지 실속있는 내용은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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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지도 및 쓰기 평가의 방법
Robert E. Owens Jr. 엮음, 박영민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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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지도에 도움이 될까하여 구입해서 보았는데, 최악이다...제목과 내용이 거의 일치하고 있지 않다는 점..쓰기 장애아들을 위한 것인데...학교 현장의 쓰기 교육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책...돈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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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뇌 뇌의 나 1
리차드 레스탁 지음 / 학지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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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연구의 최종 귀결점은 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철학이든 의학이든, 혹은 여타 학문이든 인간이 문제의 중심에 있다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가 바로 뇌가 가지는 불가사의한 힘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뇌의 그런 힘에 대해 딱히 이렇다 할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며, 뇌에 대한 연구도 그렇다 할 진척을 보이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학자들이 뇌 연구에 몰두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곧 인간의 뇌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지 못하고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부분을 알지 못한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최근 인지과학이 여러 학문분야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뇌의 몇 10 %도 이용하지 못한다고!


종종 평범한 이들은 그들 뇌의 10%도 이용하지 못하며, 기껏해야 아이슈타인과 같은 천재도 20% 가까이 사용했을 뿐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는 뇌가 가지는 엄청난 잠재력을 제대로 우리 인간이 사용할 줄 모른다는 말이거나 혹은 인간의 게으름을 반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종종 이런 사실들이 과연 우리 인간 한계를 감내케 하는 사실이라면 결국 남는 것은 공허함 뿐이다. 진정으로 우리가 뇌의 본질적인 잠재력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단지 신비속에 감춰진 채로 가설로나마 뇌의 본질을 바라봐서는 안 될 터이다. 곧 과학적인 기반이 토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뇌의 나, 나의 뇌>는 그런 뇌의 본질에 우리를 한층 더 가깝게 이끌어 들인다. 그러면서 뇌 연구가 가지는 한계를 솔직하게 과학적인 견지에서 보여준다.


“현재의 과학기술은 또한 가장 단순한 활동에 연루되는 뉴런의 수를 측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게 발달하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가 뇌의 10퍼센트만을 사용한다는 게 사실인가’라는 질문에 최선의 답은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p137)


좌반구와 우반구가 하는 일이 다르다고!


종종 좌반구는 읽기, 쓰기와 관련된 언어 능력이나 추리 능력과 관련되고, 우반구는 공간적, 연합적인 것으로 예술적인 능력을 주로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었다. 하지만 뇌는 일반적으로 지적된 바와 같이 두 개의 뇌로 나뉘어져 기능하는 것이 아님을 이 책은 지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좌반구는 독서, 언어, 필기, 산술, 계산 및 기타 추리 능력을 담당한다. 우반구의 기능은 공간적, 연합적인 것이며 예술적인 능력도 담당하다. 하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지침일 뿐이다. 뇌란 전체적인 구조로서 동작하며 이 모든 기술을 결합하여 작동한다.”(p109)


즉 어떤 특정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뇌를 구성하는 수천억개의 뉴런(신경계의 구조적, 기능적 단위인 신경세포)이 풍부하게 활성화되어 있으며, 이들 사이의 접합부를 가리키는 시냅스가 더욱더 증가된 양상으로 조직된 뇌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뇌의 특정 부분이 특정 기능에만 집중적으로 사용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뇌란 부분의 합 이상인 전체인 것이다.


물론의 뇌의 특정 부분이 손상됨으로써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특정 부분이 손상됨으로써 단순한 기능적인 장애만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인 장애까지 동반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봐서 뇌의 일부분의 손상도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데 치명적일 수 있음을 이 책은 넌지시 알려 준다.


뇌는 왜 컴퓨터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일까?


공상과학 영화에서 자주 인공지능 인간인 사이보그가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유사한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는 로봇들이 인간 세상을 마구 지배하려고 날뛰는 장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인간의 뜨거운 피를 갈구하면서 그 차가운 이성들은(?) 종종 비극의 결말을 맞이한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과연 우리 인간의 연구의 종착지는 바로 인간의 두뇌겠구나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그 차가운 이성들이(?) 종종 갈구하는 것은 인간의 뜨거운 피라는 점에서 조금은 싱겁고 유치하다는 생각을 아울과 묘한 역설적 상황에 이르게 된다.


다름이 아니라 그런 영화에서 그런 차가운 이성들이 정작 바라는 것, 아니 그런 차가운 이성들이(?) 정녕 갈구하는 바는 바로 인간의 두뇌인 것이다. 그것이 정녕 뜨거운 피의 결정체인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인간을 인간답게 해 주는 가장 정수리이도 하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미 그런 존재들이 인간의 두뇌를 뛰어넘고 있다는 착각속으로 보는 이들을 유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의 뇌, 뇌의 나>에서는 이런 인간의 뇌를 왜 컴퓨터가 뛰어넘을 수 없는지를 매우 과학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으며, 정녕 인간의 두뇌가 왜 뛰어난지를 쉽게 알려준다.


“인공지능기계가 인간의 뇌를 능가할 것 같지는 않다. 그 까닭은 뇌의 기본단위인 뉴런이 특수한 물리적, 화학적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서술하면 뉴런은 살아 있는 반면, 컴퓨터는 그렇지 않다. 두말할 필요없이 뇌와 컴퓨터는 다른다. 컴퓨터 부속품들과 달리 어떤 두 개의 뇌도 정확히 똑같은 것은 없다.”(p270)


인간에 대한 연구는 그 목표가 무엇이든 인간을 인간답게 해 주는 차별 요소, 혹은 구별 요소가 무엇인지를 밝혀 가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연구에서 마지막 종착지가 바로 인간의 두뇌가 될 것이다. 우주를 존재하는 입자의 수에 필적하는 인간의 두뇌의 정보량은 그야말로 무궁무진 그 자체이다.


요즈음 뇌과학에 대한 연구가 여기저기에서 선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의 뇌에 대한 과연 몇 %, 아니 스스로에 대해 몇 %나 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뇌에 이르는 수천, 아니 수억의 길을 따라 조심스러운 첫발을 디디고자 하는 사람들은 서슴없이 <나의 뇌, 뇌의 나>를 펼쳐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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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박정희 1
백무현 지음, 박순찬 그림, 민족문제연구소, 뉴스툰 기획 / 시대의창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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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박정희 1,2>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 근대사에 남긴 흔적과 개인사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형식은 만화의 틀에 의지하지만, 기실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마치 지난 시절 박정희의 과거사를 사진 찍어 내듯 들추어 낸 사실적 평론 성격의 만화라 할 수 있다.


자료 준비에서부터 인물 접근 방식과 서술 방식, 그리고 만화가 가지는 여러 가지 상징과 묘사기법의 장점을 충실하게 살린 근래에 보기드문 뛰어난 박정희 관련 저서라 할 수 있다. 만화가 살릴 수 있는 장점에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 전개방식은 기존의 감정에 치우치다 시피한 여러 박정희 관련 저서보다 훨씬 더 믿음과 신뢰가 간다.


만화로 보는 박정희라….


우선 이 책은 만화의 형식을 빌린다. 만화가 가지는 장점은 우선 전체 내용 전개가 빠르고, 인물들이 작품 전체의 맥락에서 가지는 의미를 인물 묘사과 외양 등을 통해 직접적으로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그런 맥락을 놓치지 않고 있다. 특히 아래 컷은 우리 근대사의 암울했던 한 시기의 종말을 알리는 것으로 충분한 상징성을 확보한다.


이 작품에서 만화가 가지는 또 다른 미덕은 그림으로 드러나는 인물의 풍자와 비판에 있다. 그간 박정희가 가져왔던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영웅주의적 색체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주로 한국 전쟁이후, 특히 쿠데타 성공 이후의 카리스마를 토대로 한 강력한 철권에의 지도자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만화 가지고 있는 통속적인 재미나 쾌락적 기능에의 추구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특히 저자 서문에서도 드러나듯이 초지일관 박정희 일대기를 사실적인 장면과 내용으로 그려내기 위한 시도에 충실했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했거나, 사실에서 벗어나는 희화적인 장면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 책에선 만화의 큰 장점인 상상력의 발휘나 화려한 장식과 과장된 표현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단지 한 독재 권력의 상상력이 빚어 놓은 화려한 포장과 허상을 벗겨내고 실체를 발굴하고자 하는 무미건조한 진실의 전달이 있을 뿐입니다.”(그린이 서문에서)


박정희는 어떻게 군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


대부분 전쟁 이후의 박정희의 모습들은 우리 근대화와 맞물려 잘 드러난다. 특히 최근에 방영된 드라마나 책 등을 통해 우리 근대화에 박정희가 어떤 모습으로 군림했는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인지 되고 있다. 하지만 전쟁 이전 박정희의 행보에 대해서 익히 알려진 바가 없다. 알려졌다 해도 그렇게 크게 부각되거나 문제시 되어 이야기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만화 박정희>에서는 두 권으로 책을 나누면서 1권에서 전쟁 이전의 박정희의 행보에 대해 자세하게 그려낸다. 


유년 시절 박정희의 가정사와 학창 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자신의 어머니가 마흔의 중반에 원하지 않았던 아이를 낳은 것이 바로 박정희였다. 근대 지식인인 형 박상희의 도움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나중에는 교사직을 얻어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결혼생활의 불만족 그리고 교사직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군인이 되기 위한 결심을 하게 된다.


권력에의 집착과 욕망이 교사직을 집어 던지고 일본 괴뢰군 역할을 했던 만주 군관학교에로의 입학을 유도한 것이었다. 당시 일본의 괴뢰 만주국 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혈서하는 장면, 자신의 출세와 목적을 위해서는 동료나 민족도 쉽게 배신하는 모습 등에서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한 영웅적인 바탕이나 근본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이처럼 박정희가 군인이 된 것은 쓰러져 가는 이 나라와 겨레를 위함이 아니었고, 단순히 탄압받고 억압받아 왔던 자신의 울분을 극복하고 나아가 권력 지향에로의 단초를 거머쥐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이 책은 언급한다.



우리 근대사에서 박정희는 무엇인가.


가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야당 대표가 나와 현 정권에 대해 엄격한 비판의 칼날을 세울 때가 많다. 물론 자신의 아버지가 우리 근대 경제의 초석을 마련했고, 못 먹고 못 살던 이 땅의 수많은 서민들을 위해 피땀을 흘려 가며 이룩해 놓은 점 때문에 자신있게 할 말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우리 근대사의 어두운 면을 본다면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라는 반문도 던져 본다.


과연 ‘우리가 제대로 된 근대화를 이룩했고, 지금 우리는 그 결실을 거두고 있는 것일까’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그 해답은 분명 ‘아니오’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60, 70년대의 정경유착을 발판삼아 성장과 거대기업 일변도의 경제구축이 나은 폐해를 아직도 우리는 제대로 씻어 내지 못하고 있다. 여차하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사상누각의 토대속에 지난날 보다 더 심화된 어려움 속에 신음하고 있다. 더 어려운 서민 살림에 하루하루 늘어가는 빈민층의 증가, 이 모든 것의 시초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차근차근 따져 본다면 야당 대표도 할 말을 다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박정희의 향수와 카리스마에 몸달아 있는 이들을 본다. 그 근원과 정체가 무엇인든지간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 그리움이 지금 대한민국 거대 야당의 토대를 이끌어 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토대 위에 거대 야당은 제 갈길을 열심히 달려 가고 있다. 원내에서 제 목소리를 충실히 내다 못해, 거리까지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말로 ‘박정희와 근대화’라는 큰 화두를 언제 제대로 정리해서 풀어 놓을 수 있을지 어려워만 보인다. 다행히 그런 와중에 나온 <만화 박정희>는 그런 어려움에 조금의 위안을 줄 수 있는 내실있는 저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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