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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 어느 30대 캥거루족의 가족과 나 사이 길 찾기
구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이 한 문장을 읽고 울컥했다.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제목부터가 따뜻하다. 독립을 하지 않았거나 아직 준비 중인 사람, 혹은 이미 독립했지만 여전히 익숙한 품을 그리워하는 사람에게까지 조용히 다가가 말을 건네는 책이다.
내가 본가를 떠나 처음 ‘홀로서기’를 시작한 건 대학의 끝자락인 4학년 시절부터였다. 당시엔 ‘독립했다’는 말이 어쩐지 어색하지 않았다. 자취방 계약서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설렘, 반찬이 없을 때마다 배달 앱을 켜던 날들, 혼자서 집안일을 처리하고 병원에 가고, 잠든 밤중에 비가 오면 창문을 혼자 닫는 일까지—모든 것이 ‘내 몫’이 되는 생활이 신기하고 어른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었다. 진짜 독립은 단순히 본가를 떠나 사는 것이 아니며, 특히 경제적 자립 없이 말하는 독립은 어쩌면 ‘독립 놀이’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 역시 여전히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고, 대학 시절엔 주말마다 본가에 내려가 시간을 보내는 삶을 오랫동안 유지했다. 펜데믹 시기엔 아예 본가에서 시간을 보냈고, 결국 지금껏 본격적인 독립 생활을 한 시간은 손에 꼽을 만큼 짧다. 그마저도 어쩐지 얄팍하게 느껴질 만큼 마음이 본가에 닿아 있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아직도 나는 제대로 독립하지 못한 건 아닐까?’라는 마음을 조용히 감싸주었다. 독립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종종 ‘완전한 분리’를 당연시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단정하지 않는다. 다양한 방식의 ‘독립 전후’ 삶을 담담하게 보여주며, 독립을 했든, 하지 않았든, 어떤 선택이든 괜찮다고 말해준다.
책은 한 사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여러 인물의 경험과 감정을 통해 독립이라는 주제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혼자 사는 것의 어려움과 외로움, 그러나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자기만의 루틴과 여유, 때로는 실패와 좌절까지. 그 모든 장면들이 조곤조곤 이어져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걷고 있는 삶의 풍경과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특히 “모두가 각자의 섬을 꾸리는구나, 재밌겠는데?”라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각자의 섬을 꾸리더라도 난 여전히 구씨 집안일 거야.”라는 문장에서는 왈칵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문장은 나에게 ‘뿌리’에 대한 감각을 되새기게 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살아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의 자식이다. 내 생활 반경이 달라지고, 리듬이 바뀌어도, 나를 만든 자리와의 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독립은 단절이 아닌, 새로운 거리감 속에서도 이어지는 관계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독립을 미화하지도 않고, 독립하지 않은 삶을 폄하하지도 않는다. 무엇을 선택하든, 각자의 이유가 있고, 그 안에서 각자만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불안이 스칠 때, 조용히 꺼내어 볼 수 있는 책이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시선으로, 독립이라는 삶의 한 국면을 포근하게 담아낸 이 책은,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넨다.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혼자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혹은 아직 혼자 살아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필요한 이야기다. 각자의 섬을 꾸려가는 중인 사람들에게, 때로는 고요하고 때로는 분주한 삶이 결국 ‘나의 이야기’로 채워져간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켜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완전한 독립이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말—그 말 한마디에 기대고 싶은 날들을 위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