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싶은 엄마에게
한시영 지음 / 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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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라니. 단지 제목만으로도 읽기 전부터 묵직한 무게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했다. 읽어 내려가며 나는 한 장 한 장, 감정을 삼키듯 책장을 넘겼다.



p.9 ) 저는 절 둘러싼 모든 문장에서 엄마를 읽어낼 수 있어요.
이 문장을 읽을 때, 저자의 삶이 어쩌면 이미 엄마라는 존재로 촘촘히 점철되어 있었겠구나 싶었다. 엄마라는 이름이 붙은 사랑과 증오, 기대와 실망이 한데 얽혀, 어느 문장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느껴졌다.

p.13 ) 여자나 엄마라는 것으로 한정 지을 수 없는, 그런 것에 갇힐 수 없었던 사람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었고, 한 사람의 인생을 가진 존재였다는 사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존재가 자식에게 남긴 상처를 무조건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까? 이 책은 그런 질문을 던진다. 단순한 미화도, 일방적인 비난도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감정, 외면할 수 없는 기억들을 솔직하게 펼쳐놓는다.

p.40 ) 어른이 있는 집 안에서, 그들의 시야 안에 있을 때조차 나는 정서적으로 방임되기도 했으니까.
눈앞에 부모가 있어도, 정서적으로 방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토록 간결하게, 날카롭게 표현할 수 있을까. 보호받아야 할 시간에 외로움과 무력감을 겪었던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p.56 고작 두 시간 정도였지만 나는 나를 기른 엄마에게 내 아이를 맡길 수 없었다. 언제고 나를 두고 나가 취했던 엄마였으니까.
이 부분은 읽으며 숨이 턱 막혔다. 저자는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견뎠던 외로움을 다음 세대에는 물려주지 않기 위해 끝없이 경계하고 있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덮어버릴 수 없는 상처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 책은 담담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술에 취해 자신을 방치했던 엄마, 심지어 딸의 결혼식에도 오지 못한 엄마. 그런 엄마는 내게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부모에게 “없는 게 나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다시 생각했다. 부모라는 역할이 주어진다고 해서 모두가 그 역할에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낳았으니 고마워해야 한다’, ‘부모니까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 폭력을 숨기고 있었는지, 이 책을 통해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이고 싶은 엄마에게>는 그저 비극을 토로하는 에세이가 아니다.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싸우는 인간의 치열한 고백이다. 그리고 그런 싸움이 얼마나 외롭고도 값진 것인지를, 책을 덮는 순간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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