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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체면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4월
평점 :
책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건 표지였다. 반짝이는 금빛 사과에서 과즙 대신 핏물이 흘러내리는 모습. 이 이미지는 어쩌면 ‘법’이라는 이름 아래 지켜야 할 순수성과 그 이면에 흐르는 불완전함을 상징하는 것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완벽해 보이는 껍질 속에 숨겨진 씁쓸한 진실.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정서와 딱 맞닿아 있다.
<법의 체면>은 전직 판사이자 현직 변호사인 도진기 작가님의 단편집이다. 법조인으로서의 탄탄한 경험이 녹아 있는 덕분에, 디테일이 살아 있고, 절제된 문장 덕에 책장이 가볍게 넘어간다. 무겁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어쩌면 점점 높아지는 사법 불신의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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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은 표제작인 <법의 체면>. 억울하게 장물 취득 혐의를 받은 변상일은 마지막 3심을 앞두고, 냉정한 검사 출신 변호사 호연정을 찾아간다. 승소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건, 그러나 연정은 이 사건 뒤에 숨겨진 놀라운 과거를 알게 된다.
법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체면과 위선, 그리고 그 틈에 짓밟히는 한 인간의 삶. 작가님이 법정에서 느꼈던 실망과 안타까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현실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통쾌한 복수’가 이 소설 안에서는 조심스럽게 펼쳐진다. 짧은 이야기지만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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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체면>을 읽으며 가장 강하게 느낀 건, 도진기 작가님이 법의 불완전함을 누구보다 깊이 체감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오랫동안 판사와 변호사로 일하며, 법이 반드시 정의를 실현하지는 않는다는 현실을 수없이 목격했을 것이다. ‘법’은 이상적으로는 정의의 수호자지만. 현실 속 법정에서는 체면, 권력, 인간적 약점이 뒤엉켜 진실이 묻히기도 한다.
작가님은 이런 씁쓸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소설이라는 부드럽고 깊은 방식으로 세상에 꺼내놓았다. 소설은 현실을 그대로 고발하는 것보다 더 부드럽고, 더 깊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는 것 같다. 법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대신,
“법은 과연 항상 정의를 실현하는가?”
“진실은 언제, 어떻게 가려지는가?”
작은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 스스로 질문을 품게 하고 고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