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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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과 초콜릿. 몇 번이고 끊어보려고 다짐했던 마음은 결국 익숙한 중독에 휘말려 내내 간식을 달고 살게 한다. 겨울이 조금 덜 매서운 건 호떡 덕분이고, 초콜릿은 하나만 먹기엔 늘 아쉽다. 그렇다면 100년 전 디저트에 담긴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말 그대로 혀끝의 기억을 자극하면서도, 그 기억 너머의 시간과 공간을 향해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이다.

책은 얼핏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한 100년 전의 디저트를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그 배경은 식민지 조선이라는 무겁고 고단한 현실이다. '먹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위안이자 체면, 때로는 정치적 상징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책은 날카롭고도 따뜻하게 짚어낸다.

책에는 당시 조선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여덟 가지 디저트가 등장한다. 커피, 만주, 멜론, 호떡, 라무네, 초콜릿, 군고구마 그리고 빙수. 지금은 익숙한 간식이지만 그 시절에는 생존과 위로, 근대와 계급의 이야기가 덧입혀진 존재였다.


특히 다방이라는 공간이 인상깊게 남았다. "꿈조차 고독하면 그것은 정말 외로운 일이라며, 다방은 고독한 꿈이 다른 고독한 꿈에게 악수를 청하는 공간"(56쪽)이라는 이상의 표현은 다방이 단순한 커피집을 넘어 당대 청춘들의 마음을 붙들던 은신처였음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주말 오후 카페에서 즐기는 여유가, 이른 아침 바쁜 퇴근길에 한 잔의 커피를 챙기려는 보상심리가 어쩌면 그 시절의 작은 생존의 틈이자 꿈을 숨 쉴 수 있는 은신처의 역할과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호떡에 얽힌 이야기도 마음을 유독 오래 붙잡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겨울 간식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요즘은 겨울이면 흔히 호떡차를 마주할 수 있어 국민 간식으로 불리고 있지만. 당시에는 중국에서 유입된 음식이라는 이유로 부정적 인식이 따랐다고 한다. 값싸고 든든한 음식이었지만, 오히려 가난함을 겉으로 드러내는 음식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기에 호떡을 사 먹다 아는 사람을 마주치면 부끄러워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고 한다. 나는 여전히 집 근처 호떡집에서 가족들과 손을 비비며 호떡 반죽이 노릇노릇 구워지길 기다리지만, 내가 가장 애정하는 겨울 간식의 이전이 그렇게 마음 아플 줄은 몰랐다.

이 책은 단순히 디저트의 유래나 유행을 나열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가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가'를 물으며 먹는다는 행위에 담긴 정체성과 외로움, 식민성과 계급, 문명에 대한 욕망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말하자면 이 책은 겉은 달지만 속은 쌉싸름한 디저트 같다. 시대의 공기 속에서 음식이라는 렌즈로 사람과 사회를 읽어내는 인문서이며,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먹고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되묻게 만든다. 음식은 여전히 관계를 만들고, 삶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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