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온 키다리 아저씨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23
정서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서휘 작가의 지옥에서 온 키다리 아저씨는 중학생 미운이가 친구 관계에서 겪는 감정과 가족에 대한 이해를 담은 이야기다. 주인공의 이름은 안미운. 성까지 포함하면 좋은 이름 같지만, ‘미운’이라는 단어만 놓고 보면 왠지 듣는 사람의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다. 처음에는 이 이름이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로 작용할지 궁금했지만, 이야기를 읽어 나가면서 결국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연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운이는 여느 중학생들처럼 아이돌을 좋아한다. 하지만 함께 다니는 친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과 경쟁하는 아이돌을 좋아했기에, 어쩔 수 없이 본래 좋아하는 아이돌이 아닌 친구 무리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척한다. 그러던 중 친구들과의 관계가 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한다. 미운이가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친구들은 점점 미운이를 무리에서 떼어내려 하고, 미운이는 애써 씩씩하게 이겨내려 한다. 때로는 그들에게 다시 다가가려고 노력하지만, 관계를 되돌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 미운이에게도 새로운 친구들이 생긴다. 처음에는 그들이 탐탁지 않았지만, 조별 과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그들에게도 좋은 면이 있음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그들은 미운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로를 존중해 주는 관계였다. 기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미운이가 차츰 마음을 열어 가면서,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게 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와중에 미운이는 스스로를 ‘악마’라고 부르는 키다리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진 그는 미운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닮아 있어 어쩐지 두근거리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미운이는 필요할 때마다 그를 찾게 되고, 키다리 아저씨와의 관계는 점점 깊어진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환상의 존재가 아니라, 미운이의 가족사와도 깊이 얽혀 있다.

사실 미운이는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미운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가 키다리 아저씨와 맺은 계약 덕분이었다. 할머니는 죽을 뻔한 미운이를 살리기 위해 악마와 거래를 했고, 그로 인해 감당해야 할 무게를 홀로 짊어지고 있었다. 미운이는 친구 관계로 고민하며 바쁘게 지내는 동안에도 할머니에게 충분히 따뜻한 손녀가 되지 못했다고 느낀다. 하지만 키다리 아저씨와의 인연을 통해 할머니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 사랑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한 판타지 이야기가 아니다. 키다리 아저씨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미운이가 친구 관계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과,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해 가는 과정에 있다. 친구들에게 소외당하면서 힘들어하는 미운이의 모습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법한 현실적인 감정이라 더욱 공감이 갔다. 또한, 기존 친구들에게 얽매여 있던 미운이가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면서 점차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도 인상적이었다. 키다리 아저씨라는 존재는 단순한 판타지적 장치가 아니라, 미운이와 할머니의 관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하며,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 주었다.

책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얼마나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지, 그리고 나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