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박사의 딸
실비아 모레노-가르시아 지음, 김은서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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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모레노-가르시아의 <모로 박사의 딸>은 H.G. 웰스의 <모로 박사의 섬>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재해석한 작품이다. 소설은 모로 박사의 딸 카를로타와 연구소 관리인 몽고메리 로턴의 시선을 교차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배경은 19세기 후반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외딴섬 야샥툰으로, 외부 세계가 알지 못하는 존재들이 살고 있다. 바로 한 인간이 창조한 동물 인간들이다.

소설에서 몽고메리 로턴은 막대한 빚을 갚기 위해 리잘데의 고용에 응하여 야샥툰이라는 섬에 오게 된다. 거기서 동물 인간들을 창조한 모로 박사를 마주하고, 그의 기괴한 실험을 알게 된다. 모로 박사는 자신을 신적인 존재로 여기며 동물 인간들을 창조하고 통제하려 한다. 반면, 박사 집의 가정부 라모나는 자연의 질서를 따르며 박사의 딸인 카를로타와 창조된 동물 인간들을 성심성의껏 돌본다.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
(natura non facit saltus)

소설 속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문장이 있다. 바로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는 말. 이는 모로 박사의 실험이 결국 자연의 질서를 끝끝내 거스를 수 없음을 암시한다. 박사는 동물의 유전자를 결합해 새로운 존재를 만들려 하지만, 결국 그의 세계와 질서는 몰락하고 그가 만들어낸 창조물들은 자유를 얻게 된다.

이 소설은 단순한 SF나 호러가 아니다. 인간에게 깊은 윤리적 고민을 던진다. 책을 읽고 내 마음에 깊이 박히는 질문이 한 가지 있었다.

💭괴물은 누구인가?

모로 박사가 만들어낸 '동물 인간'들은 처음에는 무지 이질적으로 보인다. 본 적 없는 무언가인 동물 인간이 그저 괴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가장 비윤리적인 존재는 인간이었다. 소설의 하반부에서 몽고메리가 "나는 야샥툰에서 괴물을 본적은 없어"라고 말한 게 의미심장했다. 인간 사회에서 상처받은 그가 오히려 동물 인간들과 함께하며 비로소 안식을 찾았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괴물'은 인간 내면의 잔인함과 배타성이 아닐까?

어쩌면 이런 유형의 이야기라면, 실험으로 태어난 존재들은 '저주 받은 피조물'로 남거나 인간과 결국 충돌하며 비극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치만 이 작품은 그 반대의 길을 택했다. 카를로타와 동물 인간들이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살아갈 길을 찾았다는 것. 여기서 이 소설이 단순히 인간의 죄를 고발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돌봄과 연대의 가능성을 강조하며, 인간에게 윤리적 고민을 던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를로타와 루페(동물 인간)가 함께 떠나는 결말이 바로 그 장면이다. 소설은 모로 박사가 만든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뒤에도 인간과 비인간이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에 가능성을 남겨두었다. 기존의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공존의 가능성을 갖는 것. 이 부분에서 소설이 단순 비판에서 끝나지 않고 연대와 공존에 대한 희망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대우받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의 존재들은 누구의 죄일까? 아마 단순히 모로 박사의 죄로 끝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제국주의적 질서, 인간중심적 사고, 과학의 오만 같은 더 큰 구조적인 문제로 확장시켜 볼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이 소설에서 배울 수 있는 건 '괴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대우받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 같다. 그 대우가 연대와 사랑이라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다는 것. 나는 그게 이 소설이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 같다.

출판사에서 받아 너무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조금만 무서워도 책장을 덮을까 흠칫하게 되는 나지만, 단순한 공포 요소보다 더 강렬한 주제와 감정이 끌어당기는 힘에 딥하게 빠져 읽었다.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연대와 돌봄,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 같은 깊은 주제를 담고 있으니 무서움보다 그 안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과 감정적인 몰입이 더 컸던 듯 하다. 카를로타와 동물 인간들의 관계가 주는 따스함도 내가 끝까지 읽게 만든 요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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