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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 - 개발과 손익에 갇힌 아름드리나무 이야기
김양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평점 :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한 숲, 높이 치솟은 나무를 좋아한다. 나무가 품은 고요함,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풍경 속에서 나는 늘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그래서 일상 속 가로수길을 거니는 소소한 순간도 감사하고, 여행길에서 숲길을 발견하면 망설임 없이 발길을 들인다.
그러나 익숙한 것들은 너무 쉽게 당연해지고, 소중한 것들은 때로 무심히 스쳐 지나간다. 대한민국 곳곳에 자리한 노거수들도 그렇다. 오랜 세월을 품은 이야기의 증인이자 마을의 터줏대감 같은 존재. 하지만 이제는 개발의 걸림돌이란 이유로 애물단지처럼 여겨진다.
긴 시간 지켜지고 가꾸어 온 나무들, 그 곁을 지켜온 사람들. 그 모든 노력을 외면한 채, 어떻게든 정당성을 찾아가며 나무를 베어내려는 손길들. 정말 그래야만 하는 걸까. 하나를 알고 둘은 모르는 듯, 오직 개발과 손익만을 좇는 세상에서 국내 1호 나무 전문 기자가 전하는 이야기를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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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700년을 살아온 나무를 베지 않고 옮기는 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면, 그 과정 자체가 굉장히 신중하고 치열했을 것이다. 500톤이라는 무게를 생각하면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 나무가 지닌 생태적·문화적 의미를 보존하려는 의지도 컸을 거다.
보통 개발 논리에서는 오래된 나무는 걸림돌로 여겨지기 쉬운데, 안동 은행나무를 이식한 것은 그런 흐름 속에서 ‘살리는 선택’을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물론 이식하는데 든 26억이라는 비용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 나무는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그곳을 지켜온 존재이니 금액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오랜 세월을 품어온 나무의 생명의 기록.
안동 은행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이 사례가 앞으로 다른 오래된 나무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단순한 개발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게 된다면 참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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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보라매 공원 포플러 나무
화가들의 풍경화에도 유독 자주 보이는 나무가 있다. 바로 포플러 나무. 책을 통해 서울 보라매 공원의 포플러나무가 위험수목이라는(어쩌면 프레임이겠지만) 이유로 잘려나갔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무거웠다. 특히 공원의 나무라면, 오랜 세월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늘이 되고, 바람이 되고, 풍경이 되었을 텐데, 단지 ‘위험’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베어져야만 했을까.
위험하다는 판단은 결국 사람이 내리는 것인데, 그 기준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싶다. 경전철 공사라는 ‘개발 논리’ 속에서 그 나무들은 단순한 장애물로 치부되었을 수도 있고, ‘안전’이라는 명목 아래 빠르게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겠지만, 정작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아직도 모두가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권으로 이주해 살면서 큰 나무들이 점점 사라지는 풍경에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 두렵다. 나무가 사라질 때 함께 지워지는 것들(그늘, 새들의 보금자리, 바람의 길), 그런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정말 ‘위험한 것’을 올바르게 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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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책은 단순한 ‘나무 이야기집’이 아니라, 기후변화와 도시화로 위협받는 나무들의 생존기이자,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우리가 마주한 딜레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기록으로 와닿았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나무들이 새롭게 보였다. 거리의 나무들 앞에서 문득 반성하게 됐다. 오래도록 한자리를 지켜온 나무들이 인간의 편의와 개발 논리에 의해 사라지는 모습은 더없이 안타깝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묵묵히 뿌리를 내리고, 계절을 맞이하며 버텨온 존재, 나무. 그 거대한 생명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우리는 늘 개발과 효율을 말하지만 때로는 남겨두는 것, 살려내는 것이 더 큰 의미가 될 때가 있다. 이전의 가제 “사람을 구한 나무, 사람이 구한 나무”라는 표현처럼 나무가 사람을 구하고, 사람이 나무를 구하는 일. 그것이 계속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