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덮인 세계를 본 적 있는가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8
공희경 지음 / 허블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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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15년, 닿는 모든 생명체를 증발시키는 비가 내린다. 이 비가 최초로 내린 섬에서는 한 명의 생존자를 제외한 나머지 생명체들이 작은 웅덩이만 남긴 채 증발된다.
그 후 많은 연구진들이 비의 비밀을 알아내려 노력했지만 결국 현존 기술로는 감지되지 않고 검출할 수 없는 미상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고 발표한다.
이 물질은 움(AUM)이라 불리운다.

증발에 대항하기 위해 뇌 유전학 연구자 야마구치는 자신의 조부가 태평양 전쟁 당시 비밀리에 수행한 인체 실험을 주목한다.
그 실험의 목적은 하나. 극한의 상황에서 유전자는 어떻게 도약하는가.
첫 움이 내린 그 섬에서 생존한 남자, 야마구치는 그 남자가 조부의 인체 실험의 한 실험체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의 이름은 말라키. 그의 최초의 키는 140센티미터였다. 하지만 움이 포함된 비로부터 섬에서 살아남은 그는 매 해 2센티미터씩 키가 자라나고, 외모 또한 점점 잘생겨 진다.
인체 실험을 통해 진화한 모체의 유전자가 말라키의 극한의 상황에서 도약을 이루어 낸 것이다.
야마구치는 이 ’말라키 유전자‘를 보유한 인간은 움에 노출되어도 절대 증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돈이 많은 자들은 야마구치 시술을 받게된다. 시술 인류가 많아질수록 상위층과 빈곤층의 사이는 점점 더 벌어졌고, 중산층은 사라진다.
그들은 말라키 유전자를 보유한 ’루시‘와 그렇지 못한 ’사가르’로 계급이 나뉘게 된다.
끝없이 성장하는 신인류가 나타난 지 450년이 된 해, 루시들의 키가 비현실적으로 자라난다. 천장을 뚫고, 팔다리가 나무 줄기처럼 길어진다. 그제서야 나타난 마법의 유전자가 만들어낸 부작용. 세계는 몸으로 덮이게 되고 사가르들은 그곳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참 요상한 책이다. 무슨 말이지 알 수가 없다가도 하염없이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루시의 몸으로 뒤덮인 세계를 걷고 또 걷는 카와 아난의 여정은 내 눈 앞에서 벌어진 듯 생생하다. 낮에는 서로의 몸을 밀치면서도 밤에는 꼭 끌어안는 둘의 사랑과 애정이, 멸망한 세계 속에서도 반짝 반짝 빛나는 듯 했다.

인류가 사라지고, 새들은 나는 것을 포기한 채 땅 속으로 들어간다. 계급의 선은 더욱 선명해지고 인간의 잔혹성은 더욱 뚜렷해지며 누구는 신을 찾고, 누구는 신을 버린다.

이 세계의 모든 물질은 엔트로피를 증가시킬 수 없기에 무언가 생겨나면 또 어떤것을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계속 이별을 겪고, 손을 놓아주고, 발자국은 파도에 휩쓸려 사라진다.

이 절망적이지만 사랑이 가득 찬 과정들을 공희경 작가는 놀라운 상상력과 아름다운 문체를 통해 내 눈과 머리 속에 심어주었다. 상어 바나가 바다 속을 유영하는 순간부터, 아난의 커다란 손이 카를 감싸고, 우주의 음악이 카의 몸을 채운 순간까지.

뿌얀 안개처럼 사라진 여린 살라의 귀에 대고 속삭인 소녀의 말들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다.

🔖p.192
살라야, 기억하렴. 어떤 음악은 스스로 살아 숨 쉬는 완벽한 하나의 생명체 같지. 행여나 그것과 마주치게 된다면, 아주 기쁘게 춤을 춰. 그리고 그 감정을 기억해. 그런 친구는 자주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p.253
살라야, 이 말도 안되는 세상에서 질량보존의법칙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커지기만 하는 것이 단 하나 있단다. 그것은 사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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