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란
현기영 지음 / 창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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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80년대식 주제와 교과서적 문체 때문에 아련한 기억을 더듬으며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볼 수 있었다. 

 

주인공 허무성은 87년 6월항쟁의 주역으로 평생 잊을 수 없는 민중과 하나되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되지만 검사 김일강의 모진 고문에 의해 동료를 배신하여 조직을 붕괴시킨다. 

 

인간을 동물 이하의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잔학한 고문을 가하는 순간에도 젊은 아내와는 한 없이 자애롭게 통화를 하는 김일강, 그는 독재정권 하에서는 민주화 세력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민주화 세력의 희생 위에 이룩된 민주정권에서는 집권당의 국회의원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정보기관에 근무하면서 획득한 정보를 이용하여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막후에서 통치 이념을 만들어 내는 이데올로그로 활동한다. 그 이념은 박정희를 정점으로 하는 파시즘 체제이다.
 

허무성은 배신의 대가로 일본 유학을 마치고 김일강의 후원으로 사립대 역사학과 교수가 된다. 이미 취업 준비장으로 바뀐 교정에서 나름대로 몸부림을 쳐 보지만 허무성이 기댈 언덕은 없었다. 교통사고로 죽은 아이가 남기고 간 영혼의 상처 때문에 전 남편과 이혼한 민주화 운동의 동지이자 후배인 문정선과 결혼을 한다. 하지만 아내는 끝내 그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인도로 떠난다. 민주화 동지 중에는 스스로 김일강을 찾아가 국회의원이 된 사람도 있고, 말기 암 선고를 받고 노숙 생활을 하면서 노숙자를 대상으로 종말론을 강의하는 사람도 있고, 논술 강사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 허무성의 삶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시대의 흐름에 영합하는 자도 있고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가 확신에 찬 삶들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라는 험한 격랑에서 마구 흔들리는 조각배와 같은 삶이라도나 할까?

멸망해 버린 사막의 고대 왕국 '누란'과 같은 삶 속에도 오아시스 같은 만남은 있었다. 페미니스트인 미대 교수 송난주와 조소과 학생 오용미와의 만남이다. 그러나 송난주는 재단과 인척 관계로 기득권을 바탕으로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는 허영심 많은 인물이다. 결국 허무성이 육체적 접촉을 거부하자 욕을 쏟아부으며 돌아선다. 그라피티로 부당한 세계에 저항하고자 하는 생명력이 넘치는 오용미는 허무성의 추종자이다. 김일강 무리에 의해 모함을 받지만 서로가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희생을 감수한다.
 

허무성은 김일강의 국회의원 사무실에 식칼을 택배로 보내고 오용미에게는 이별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노숙자 생활로 접어든다. 한달 남짓의 노숙생활을 마치고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치열하게 살다간 조상들의 삶과 정신의 터전을 찾아 나선다.

절망의 시대에 절망감만 더 깊게 만드는 작품이었지만 나에게는 흡인력이 있었던 작품이다.
얼굴 없는 가해자들에게 상처 받은 영혼들의 정처 없는 삶.
"피해자는 피를 흘리는데 가해자는 없다니....." 라는 글귀가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고문을 소재로 한 황지우님의 시 한 편

비화(飛火)하는 불새 

나는 그 불속에서 울부짖었다/살려달라고/살고 싶다고
한번만 용서해달라고/불 속에서 죽지 못하고 나는 울었다

참을 수 없는 것/무릎 꿇을 수 없는 것/그런 것들을 나는
인정했다/나는 파드득 날개쳤다

명부(冥府)에 날개를 부딪치며 나를/호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너지겠다고/약속했다

잿더미로 떨어지면서/잿더미 속에서/다시는 살[肉]로 태어나지 말자고
다시는 태어나지 말자고/부서지는 질그릇으로

날개를 접으며 나는,/새벽 바다를 향해/날고 싶은 아침 나라로
머리를 눕혔다/일출(日出)을 몇 시간 앞둔 높은 창(窓)을 향해

 

 
                                                         그라피티(graffi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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