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 - 종교 게임을 끝내고 사랑을 시작하다
스카이 제서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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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으로 나가면 이동 시간만 1-2시간, 지하철 안에서 넋을 놓고 있기엔 너무 긴 시간이라 항상 책을 들고 다닌다. 되도록 가벼운 책을 찾다가 집어든 작고 가벼운 책. 가벼운 마음으로 손에 든 책인데, 그 내용은 어찌나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지.

처음은 스포츠 이야기로 시작된다. 단순히 삶의 일부일 뿐 삶의 중심을 차지하지는 않는 것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종교가 그런 신세가 되었다. 저자는 너무 많은 '팀들'이 모여 있는 종교 경기장에서 환멸을 느끼고 손을 떼기로 결심했는데 그 무렵, 예기치 못한 분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며,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면서 저자는 종교 게임을 그만두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저자가 예수님을 따르며 배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종교적'인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신을 두고 살아가는 시대에서 인간은 그들의 욕심을 채우고자 신을 손아귀에 쥐려고 한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신을 원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종교를 짐스러운 규칙으로 이해하고 종교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갔다. 이들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종교의 무거운 멍에에 지친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 11:28-30) 

그렇다면 종교는 잘못된 것일까? 저자는 종교가 아니라 '우리'가 문제라고 한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이 주신 인생 지침서로만 보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의 실수이기도 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한 지식은 있었으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해 그들의 손으로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기준에 합당한 말씀만 가려서 취하고자 한다. 소비주의 종교에 젖어 예배가,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기적을 가져다 줄 자판기로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 왜냐하면 소비자는 언제나 왕이니까 - p.73

정말 마음이 아팠던 부분이다. 내 모습을,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소비주의에 이어 종교적 행동주의자도 나온다. 하나님을 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신이라 치부하며 '사명주의'라는 또 다른 우상을 끌어들이는 모습을 말해준다.

앞의 잘못된 예를 보여주며 저자는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 아들과 형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전에 유산을 달라고 해서 갔다가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과 아버지를 '위해서' 살았던 첫째 아들. 소비주의와 사명주의를 보여주는 예이다. 다른 듯 하지만 둘의 모습은 닮아있다. 둘 다 아버지와의 관계보다는 아버지에게서 받을 것에만 눈독을 들인 것이다. 저자는 이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궁극적인 가치를 둔 우상숭배라고 말한다.

하지만 앞의 두 아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야기 전체의 의미는 "함께"라는 단어로 함축되어 있다. 아버지는 오로지 '아들들과 함께' 살 생각뿐이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성부와 성자, 성령의 사랑의 관계에 동참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와 '함께' 살기를 원하신다. - p.103

이어서 뒷장에서는 통제하려는 우리를 내려놓고 하나님 안에서 안전한 삶을 살라고 한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심을 믿고 삶의 통제권을 내려놓고 안전한 세상에서 살아가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임을 믿고 하나님 안에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볼 때, 두려움을 이기는 힘이 바로 '믿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의 손을 잡아주실 분이 계시기 때문에 사랑 안에서 마음껏 뛰어오르라고 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요일 4:18)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만나 '너는 사랑받는 자다'라고 하실 하나님의 속삭임을 들기 위해 조용한 침묵의 시간을 가지라고 권면말하며 책은 끝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컸던 마음은 불편함이었다. 나의 모습을, 우리의 모습을 너무 적절한 비유와 사실로 써내려갔기 때문일 것이다. 순종하기 싫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라는 명목 하에 꾸역꾸역 살아가던 나는 과연 하나님과 '함께' 살아왔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두 아들 이야기에서는 돌아온 탕자인 둘째 아들, 함께 있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던 첫째 아들의 모습 모두 나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 너무 마음이 아팠고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 나와 '함께'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어 책을 읽어나가면서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읽으면서 참 많이 생각났던 찬양, '내 영혼은 안전합니다'. 찬양의 가사대로 나의, 우리의 삶이 흘러갈 수 있기를 바라며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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