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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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컴퓨터의 귀찮은 질문과 함께 깨어난다. 2 더하기 2 8의 세제곱근 따위의 질문을 하는 컴퓨터.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인공은 생각처럼 대답이 잘 나오지 않았고 더듬거리며 입을 움직이다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 한참 뒤 깨어난 그는 자신이 침대에 눕혀져 말 그대로 환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의식이 없는 동안 로봇 팔들이 그를 돌봐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누구이며, 왜 이런 모습으로 이곳에 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따금씩 떠오르는 단편적인 기억들과 왜인지 모르지만 머릿속에 가득 들어있는 과학 지식들을 활용해 그는 이곳이 어디인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건지 답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숫자를 계산해 보고 얻은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방은 중력이 너무 크다. 원래 지구의 중력가속도는 9.8m/s이어야 하는데, 이 방의 중력가속도는 15m/s이다. 낙하하는 물체가 다르게 느껴지는이유가 그것이다. 너무 빨리 떨어지니까. 이렇게 근육이 많은데도 내가 힘이 없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원래의 무게보다 1.5배는 더 나간다.

문제는, 중력에 영향을 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중력은 증가시킬 수도, 감소시킬 수도 없다. 지구의 중력 가속도는 9.8m/s이다. . 그런데 나는 그 이상의 중력을 경험하고 있다. 가능한 설명은 한 가지뿐이다.

내가 있는 곳은 지구가 아니다. (p. 33)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기억의 공백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은 독자가 공간과 상황을 이해하는데 더욱 편리한 장치였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소설 속 상황과 공간에 무지한 상태인 독자가 소설 속 세계에 천천히 발을 들이도록 만들어 한꺼번에 입력되는 과한 정보로 흥미를 잃지 않게 도와주었다. 또한 주인공의 입과 독백을 통해 배경지식이 지루하게 흘러나오는 것보다 회상 장면을 통해 필요한 설명을 그때그때 들려주는 것은 소설을 더 생기 있게 꾸며주는 장치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소설은 이미 주인공이 우주선에 홀로 남은 시점에서 시작되었지만 우리는 이 우주선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고 그것에는 어떤 과학적 지식들이 활용되었는지를 차근히 이해해 나갈 수 있었다.


태양의 빛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지구는 점점 추워질 것이고 전문가는 이대로 가면 19년 뒤에 인류의 절반이 죽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크나큰 위기 앞에 세계는 한마음으로 최고의 과학자들을 모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고, 그들은 마침내 인류의 유일한 희망인 헤일메리 호를 만들게 된다. 헤일메리란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주 낮은 성공률을 바라보고 적진 깊숙이 내지르는 롱 패스를 뜻하는 미식축구 용어이자, 버저가 울리는 순간에 득점할 것을 노리고 먼 거리에서 던지는 슛을 뜻하는 농구 용어’(p. 70) 이다. 그 뜻에서 헤일메리 호의 용도이자 운명이 예상된다.


나는 자살 임무를 수행하러 왔다. , , 조지, 링고는 집에 돌아가지만, 길고도 험난한 나의 여정은 여기에서 끝난다. 이번 임무에 자원했을 때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러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내 두뇌에게는 이 정보가 새롭기만 하다. 나는 여기에서 죽는다. 혼자서 죽게 된다. (p. 111)


헤일메리 호의 유일한 승조원. 지구를 구하기 위해 일종의 자살 임무를 맡아 먼 우주까지 날아온 그는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고는 그곳에서 외롭게 마지막을 보내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소설은 생각지 못한 때에 새로운 사건을 보여주었다. 그곳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한 외계 생명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는 정말 너무 재미있게 빠져들어 읽었다. 처음 만나는 완벽하게 다른 존재와의 소통 과정은 너무나 흥미로웠다. 거기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사이에 쌓여간 우정이 보여주는 감동까지진짜 너무 재밌는 소설이란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캐릭터들도 매력 있고,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 적당한 유머, 빈틈없는 과학적 지식까지 고루 다 갖춘 SF 소설이다. 이런 작품을 쓴 앤디 위어는 정말 SF 천재다.


라이언 고슬링을 주연으로 한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있던데 <마션> 이상으로 재미있는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매우 기대된다. 영화가 그려낼 로키의 모습과 그가 내는 소리를 어떻게 표현했을지가 특히 궁금하다.


이 작품은 요즘 흔히 보이는 SF 느낌이 묻어 있는 소설이 아닌 정통 SF 소설이다. 요즘의 한국식 SF에 익숙해져 있다면 소설 속 설명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재미는 정말 확실하게 있으니 SF 소설을 좋아한다면 꼭 한번 읽어 보길 바란다. 현실의 고민에서 벗어나 광활한 우주의 이야기 속에 빠져보고 싶은 이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과학이 세상을 구한다. 과학자 만세. 앤디 위어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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