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 열림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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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소설들을 좋아했다. 흥미로운 스토리와 특유의 아련한 분위기가 적절하게 섞인 그 느낌이 너무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녀가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어떻게 그것을 발전시켜 이런 재미있는 스토리를 입히는 걸까 궁금했었다. 끊임없이 과학적 지식을 찾아 공부하는 것인지,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상상과 결합시켜 꺼내어 놓는 것인지이번에 출간된 그녀의 첫 에세이집 <책과 우연들>에서는 그런 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이 실려 있을 것 같아 읽게 되었다.


나는 소설이, 특히 SF소설이 세계의 안개로 뒤덮인 지도와 비슷하다고 본다. 독자의 관점에서도 작가의 관점에서도 그렇다. SF를 읽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이게 도대체 다 무슨 말이야?’ 싶은 부분을 일단 무시하고 넘기며 쭉쭉 읽는 것이다. 작가는 알 수 없는 단어와 상황을 의도적으로 도입부에 배치하고 독자를 대뜸 사건 속으로 끌어들인 다음에야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조금씩 알려준다. 그래서 SF를 읽는 경험은 세계의 안개로 뒤덮인 지도 위를 탐사하는 일과 비슷하다. 당장은 뭐가 있는지 몰라도 앞으로 걷다보면 가려진 세계의 구석구석이 드러난다. (p. 86~87)


작가의 손을 떠난 한 권의 책은 수천수만 명의 독자를 만나며 수천수만 권의 서로 다른 내면의 책이 된다. 이 내면의 책들은 개인마다 너무나 다르게 구성되고 각자의 독서 경험에 고유한 방식으로 개입하므로, 다른 누군가에게 온전히 전달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나의 내밀한 해석과 감상을 서평으로 옮겨보려 해도 그것은 내면의 책의 일부일 뿐이고, 서평을 읽고 쓰는 행위 역시 또 다른 내면의 서평을 만들어내는 일이니까. (p. 218~219)


작가가 독자에게 온전한 의미를 전달하는 일에 실패하고 독자가 작가의 온전한 의도를 파악하는 일에 실패함으로써 책은 원래 의도보다 더 확장된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서평을 쓰는 일이야말로 실패를 기꺼이 무릅써야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읽기를 시도하고 읽기에 실패하면서, 오독이 이따금 확장의 가능성으로 변모하는 우연의 순간을 기대하면서, 오해와 이해 사이를 서성이며 책 위에 무수한 의미를 덧칠해가는 그 작업들을, 나는 기쁘게 찾아 읽는다. (p. 219)


이 책에선 김초엽 작가가 그녀의 작품을 구상하고 쓰면서 했던 생각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작은 생각의 알맹이가 커나가 완성된 무언가로 발전되어 나가는 과정을 듣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또한 그녀가 읽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읽고 싶은 것들이 하나 둘 쌓여 읽을 목록이 대량으로 업데이트되기도 했다. 특히 관심도 없던 작법서들이 나의 관심 목록에 대거 등장했다.


책 속 글들을 읽고 있으니 자꾸만 김초엽 작가와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들어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특히나 김초엽 작가가 영드 닥터 후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내적 친밀도가 부쩍 올라가기까지 했다. 김초엽 작가의 팬이라면 이 책 <책과 우연들>을 꼭 읽어 보길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그녀와 책에 대해, 그녀의 작품과 글쓰기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듯한 선물 같은 시간을 가져 보길 바란다. 김초엽 작가에게 영감을 준 독서 목록이 궁금한 이에게, SF 소설가를 꿈꾸는 이에게도 권해보고 싶다.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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