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1
정소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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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읽고 나면 기분이 참 나빠진다. 잿빛의 공간 어디선가 불쾌한 곰팡내가 흘러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소설 속 인물들은 층간 소음으로 인해 서로 다투게 되는데, 여기에는 분명한 가해자가 없다. 서로가 피해자도 되었다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서로를 탓하며 불쾌함, 두려움, 불안 등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주고받았고, 그들 사이에서 오고 가던 것들은 점점 덩치를 키워 나갔다.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였다. 가족 내에서나, 이웃 사이에서나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해였다. 며느리가 자신과 아들에게 상처를 주고 떠날까 봐 불안한 시어머니,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오랫동안 이해받지 못했던 며느리, 예민한 아기를 키우느라 지친 데다가 아기 우는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 때문에 더더욱 스트레스를 받던 아기 엄마, 남편과의 불화로 힘든 것에 더해 옆집에서 시끄럽다는 이유로 시도 때도 없이 벽을 치느라 큰 스트레스를 받던 여자. 소설 속 인물들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구나 이유가 있고 그럴 수 있겠구나, 힘들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닫힌 마음으로 듣는 이야기들은 어떤 것도 와닿지 못했다. 층간 소음이란 테두리를 벗어나서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하며 부정적인 고리를 엮어 뻗어 나간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유일한 방법은 역지사지가 아닐까 싶다.


어떤 과정을 거치든 간에 둘 중의 한 집이 떠나야 끝나게 되는 싸움이었다. 가해자는 뻔뻔했고, 피해자는 예민했으며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했다. 누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그들의 이야기만 듣고는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어 휘둘리다 보면 서로 상대의 편을 든다고 나를 욕하고 멱살까지 잡았다. (p. 128~129)


층간 소음의 피해자였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가해자가 되었고, 그들의 변화는 그들의 삶을 망가뜨려갔다. <가해자들>은 호러 장르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무섭게 느껴졌다. 뉴스에서 층간 소음 때문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들을 여럿 들어보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층간 소음을 소재로 한 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짧은 시간 내에 읽어낼 수 있는 몰입감이 강한 소설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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