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억들의 방 - 우리 내면을 완성하는 기억과 뇌과학의 세계
베로니카 오킨 지음, 김병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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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산후 정신병을 앓았던 한 환자 이디스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영국에서는 매년 1400명 정도가 앓는다는 산후 정신병. 자신이 낳은 갓난 아기에게서 썩은 내를 느끼다, 이내 자신의 아기는 악마에 의해 무덤 속에 묻혀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 이디스의 이야기는 끔찍했다. 약물치료 후 퇴원한 뒤에도 자신의 생각들이 진짜가 아님을 알았지만 그래도 그 기억만큼은 진짜였다고 말했다는 그녀. 플래시백의 형태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다는 이디스의 이야기를 들은 뒤 저자는 그동안 본인이 쌓아 왔던 지식들의 테두리가 허물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기억에 관한 새로운 질문들을 던지게 되었다고 한다.


정신과 의사가 쓴 기억과 뇌과학에 대한 글이라 전문적인 분석이 담긴 사실적이기만 한 글일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펼쳐보니 읽는 즐거움도 적당히 있는 글이어서 만족스러웠다. 책에서는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는 환자가 느끼는 증상에 대해 문학작품을 예로 들거나 저자의 임상 경험을 자세히 들려주며 설명하는데, 이러한 방식은 환자들의 기분이나 느낌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어 좋았다.


책 속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냄새와 기억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냄새로 인해 과거에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여러 번 했었다. 봄날 부드러운 바람에 날려오던 아카시아 향기, 적당히 맵싸한 향이 나는 시락국 냄새, 여름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 냄새 등은 순식간에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전까지는 내가 후각이 예민한 편이어서 그런 경험을 했다고 여겨 왔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이유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책에서는 냄새 이외의 감각 경험들은 편도체와 해마로 빠져들기 전에 두뇌 표면의 각 피질을 통해 연계된다.’(p.100)고 한다. 그래서 어떤 노래가 들려오면, 그 노래를 듣고 있었던 과거의 한순간을 떠올리는 식으로 기억을 꺼내 오게 된다. 그러나 냄새의 경우에는 다른 감각 자극과 달리 후각 신경세포가 코에서 후각 피질로 가기 전에 편도체에 먼저 도착한다’(p. 100)고 한다. 그런데 이 편도체는 우리 두뇌에서 감정 반응과 느낌을 촉발하는 부위’(p.99)이기 때문에, 우리는 냄새를 맡는 동안은 감정이 즉각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경험’(p.100)을 하게 되며, 의식적으로 그 자극을 확인하기도 전에 그 냄새와 관련된 과거의 느낌이 먼저 떠오르게 된다고 한다.


그는 과거에 대해 생각할 때와 미래의 계획을 세울 때 사용되는 두뇌 회로가 동일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에, 기억에 의거하여 미래에 관한 결정을 내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사실은 당연하다. 우리는 오직 기억 속에 엮여 들어간 경험을 가지고 환상을 꾸미거나 예견할 수 있다. 기억은 과거의 기록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상상된 미래를 위한 주형이기도 하다. (p. 156)


그동안 나는 기억을 과거의 일에만 관련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저자의 이야기는 기억과 시간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내게 심어주었고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술술 책장이 넘어가는 책은 아니지만,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우리 뇌의 각 부분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고, 평소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어 유익했다. 기억이나 뇌과학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 <오래된 기억들의 방> 또한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이 글은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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