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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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있는 최첨단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제작사 휴먼 매터스 캠퍼스에서 아빠와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십 대 소년 철이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홈스쿨링을 통해 공부하며 휴먼 매터스 캠퍼스 내에서만 인간관계를 맺으며 생활하던 철이는 최근 들어 웬만하면 집 밖을 나가지 말라는 아빠의 주의를 자주 받게 된다. 뉴스에서는 연일 테러 소식을 전했고 이곳 역시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빠의 과잉보호에 답답함을 느끼던 철이는 빗방울이 떨어지던 어느 날 아빠를 마중 가기 위해 소광장으로 향했고, 아빠를 깜짝 놀래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낯선 이들에게 믿을 수 없는 말을 듣게 된다.


나는 다시 물었다. ‘등록이 무슨 뜻이냐고. 그러자 왼쪽 남자가 단조롭고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휴머노이드 등록 말입니다. 당신은 등록된 휴머노이드가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보시다시피 저는 인간인데요. 휴머노이드 아니에요.”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기계는 절대 실수하지 않습니다.” (p. 37)


아빠와 함께 단조롭지만 평화로웠던 일상을 누렸던 철이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남자들에게 무등록 휴머노이드란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가 낯선 곳에서 힘든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처럼 하루아침에 다른 세상에 혼자 뚝 떨어지게 된 철이.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와 아빠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빠르게 발전해 나가는 과학 기술 앞에서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문제들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고 새로운 윤리 기준이 필요해질 것이다. 이 소설은 그때 우리가 던지게 될 (어쩌면 이미 시작됐을지도 모를) 질문들을 미리 만나게 해주었다. 인간의 수명이 다 한 뒤 의식만을 컴퓨터에 업로드하여 존재한다면 그것은 살아있다고 볼 수 있는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외형까지 인간의 모습을 갖추었다면 우리는 그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등 소설에선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를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전까지 나는 인공지능 로봇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을 닮아갈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난 뒤로는 이런 로봇들과 생활하게 될 우리 역시 점점 그들에게 영향을 받고 변화되어 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지금과는 달라질 인류의 모습과 생각이 궁금해졌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선 자꾸만 눈물이 났다. 휴머노이드의 고민이지만 그저 한 인간의 치열한 사색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장 인간적인 휴머노이드의 인간에 대한 고민과 그의 선택에서 허무하다 느껴졌던 소멸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책을 펼치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르가 펼쳐져 놀라웠지만 평소 좋아하는 장르여서 반갑고 기뻤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다움이란 어떤 것인가. 이런 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질문이 이 작품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랐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지만, 작품을 읽는 시간만큼은 매우 즐거웠다. 김영하식 SF가 궁금하다면, 소설 작품을 통해 가까운 미래에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할 문제들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고 싶다면 어서 이 책을 펼쳐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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