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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ㅣ 오늘의 젊은 문학 4
이경희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1월
평점 :
2020 SF 어워드
대상 수상 작가의 첫 소설집이라는 말에 기대감을 가득 안고 읽어보게 된 책이다. 이 소설집에는
이경희 작가의 중단편 6편과 이지용 문화평론가의 해설이 실려 있다. 6편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세 편을 아래에 소개해 본다.
『살아 있는 조상님들의 밤』
소설은 계룡산 근처 인류 최후의 도피처에 생존자들이 모여 있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인류의 종말을 앞두고
겨우 도피처에 들어온 주인공 한나는 무엇이 이런 상황을 불러온 것인가 절망하며 과거를 떠올린다. 그녀는
제사 없애기 운동 본부로 활동하던 어느 날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된다. 좀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어머님은 한나에게 폭풍 잔소리를 퍼부었고, 그녀는 연락이 안 되는 전남편을 찾아 집 밖을 나섰다. 그러나 거리에도 무덤에서 돌아온 듯한 모습의 노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끔찍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고, 그것이 종말의 시작이었다. 끝도 없는 꼰대들의 부활과
잔소리 공격에 세상은 어떻게 변할지...
『다층구조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에 대하여』
이 작품은 끔찍한 장면에서 시작했다. 주인공 진(Gene)은
엄마의 시신 옆에서 눈을 뜨게 되고 누가 엄마를 죽인 범인인지 찾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진에게 모든
것은 혼란스럽게 보이는 듯했다. 디스 라는 이름의 존재, 엄마의
시신을 수습 중인 엄마, 내 욕망에 따라 변하는 도심의 모습 등 읽는 사람 역시 주인공만큼 혼란으로
울렁거리는 마음이 들었다. 어지러운 환상의 이미지를 가진 작품이라 그런지 잔상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
묻지마 폭행으로 사랑하는 ‘은하’를 갑작스레 잃게 된 하나와
정원은 점점 사이가 멀어지게 되고, 급기야 하나는 ‘절대
따라오지 마’라는 메모를 남긴 채 미래로 떠나게 된다. 천국이
아닌 먼 미래, 약속의 때가 오면 은하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서. 하나를 사랑했던 정원도 그녀를 뒤쫓아 미래로 떠나게 된다. 그들은
다시 재회할 수 있을까. 그들은 어디까지 나아가는 걸까. 이
작품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리고 끝나고 나서도 머릿속에 질문을 계속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경희 작가의 작품은 이번 소설집으로 처음 만나보았다. 기대감이 커질수록 막상 책을 펼치면 만족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은 그런 내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만족감을 주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읽을 만큼 재미있었다. 첫 번째 작품 『살아 있는 조상님들의 밤』은
시작부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상상도 못한 종말의 풍경을 웃프게 표현한 것이 매우 재미있었고, 이런 SF도 있구나 싶어 새로웠다.
가장 좋았던 작품은 제일 마지막에 실려 있던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였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정원과 하나의 발걸음을 따라 펼쳐지는 미래 세계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앞서 나왔던 작품의 스토리가 연결되듯 나오는 부분도 재미있었으며, 마지막
결말도 마음에 들었다.
SF 소설을 펼쳐 마음이라도
먼 곳을 여행하고 돌아오니 갑갑함이 조금 해소되는 듯했다. 코로나 블루에 빠져 우울한 사람들, 쉽고 재미있는 SF 소설을 찾는 찾는 이들에게 이 책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를 추천하고 싶다. 나는 이제 한국 SF하면 김초엽 작가와 함께 이경희 작가가 생각날
것 같다.
【 이경희에게 SF란 무엇일까?
모든 탁월한 작가들은 장르 그 자체와 맞서 장르의 정의와 외연을 확장해 왔고, 여기 실린
여섯 편의 소설에서 당신이 느끼게 될 감정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경희의 소설은 우리의 어두운
현실을 비추는 반사경이자, 다가올 내일을 보여주는 미래경이자, 무엇보다
이야기 그 자체로 매혹적인 황홀경이다. 부디 그의 소설이 우리의 우주를 지금보다 더 다정하게 만들어주기를. 】 (p. 375, 문지혁(소설가, 《에픽》편집위원)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