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
정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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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놓았을 때, 그는 서늘해진 손을 코트 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다. 한마디에 쉽게 없어지는 말이라면 무얼 약속했는지 무얼 했는지 어떤 사랑을 했는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결국 사랑이란 지나왔던 겨울 길을 되짚어 제가 갔던 길을 다시 걸어보는 일이라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p. 91)



벚꽃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숨을 쉰다. 바람결에 날아가는 잎들과 대기의 서늘한 흐름. 한철을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들. 벚꽃이 질 때, 사랑이 미움에 닿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랑이 우리를 바닥을 보게 하는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 안에서 뭉개지고 흐트러지는 마음이 있다. 그냥 밟고 지나가도 되는 마음들이 있을까. 빗물에 쓸려가는 벚꽃을 보면, 시작과 동시에 끝을 생각하게 된다. (p. 148)




시인의 에세이는 조금 더 길어진 글로, 조금 더 가까워진 마음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그의 글은 차디찬 겨울, 소복이 쌓여 있는 눈처럼 느껴졌다. 쌓여 있는 눈은 보기엔 폭신폭신 보드라워 보이고 아름답지만, 막상 가까이 가서 만져보면 손이 따가울 만큼 아리게 차갑다. 시인이 이번 에세이에서 꺼내 보인 말들에선 한겨울의 눈처럼 보드랍지만 차가운 슬픔이 배어 나왔다. 책을 읽고 있으니 그 슬픔의 빛깔에 내 마음도 물들어 차분히 가라앉았다.



슬픔으로 아파했던 시간들을 겪었던 그는 이 책을 통해 슬픔으로 휘청거리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로하고 다독인다. 감성 가득한 겨울밤을 보내고 싶은 이에게, 차분하면서도 진심 어린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 이 책 <우리는 약속도 없이 사랑을 하고>를 추천하고 싶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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