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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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상품화해서 판매하는 여행사 정글. 그곳에서 여행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고요나는 10년째 재난 현장을 찾아다니며 상품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요나는 한때 회사의 브레인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업무 영역이 조금씩 바뀌게 되고 동료들과의 대화에서도 겉도는 느낌을 받게 된다. 거기다 최근에는 상사로부터 성추행까지 당하게 되자 그녀는 이러한 상황을 회사가 자신에게 주는 옐로카드로 이해하게 되었다. 결국 버티다 사표를 낸 그녀에게 회사는 휴식 겸 출장 겸 회사의 여행 상품을 골라 여행을 다녀오라는 제안을 한다. 그녀는 그 제안을 수락하고는 정글의 최고가 상품사막의 싱크홀을 선택하여무이로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게 된다.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 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 내 삶에 대한 감사 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어느 단계까지 마음이 움직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국 이 모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니까 재난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는 이기적인 위안 말이다. (p. 61)



사람들의 동공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강렬한 이미지다. 특히 매스컴으로 재난을 마주하는 경우, 이미지가 재난의 실체를 지배한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규모로 터진 몇 건의 재난을 비교해보면, 피해 규모와 성금 혹은 관심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도시는 뉴스 몇 줄을 장식하고 금세 잊히는가 하면, 또 어떤 도시는 보다 농도 짙은 관심과 많은 성금을 얻었던 것이다. 그건 폐허가 된 도시를 잘 녹여 낸 몇 장의 사진과, 그 사진의 주석 같은 사연들 때문이었다. (p. 145)



세상에는 좋은 곳, 멋진 곳이 많은데 소설 속 사람들은 대체 왜 재난의 현장을 여행하는 것일까. 요나의 말처럼 그들은 재난현장을 보면서 살아있다는 이기적인 감사함을 느끼고 싶은 걸까. 재난 여행이라는 것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소설 밖의 우리도 재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과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듯 보였다.



책을 읽기 전 제목만 보고 예상했던 것과 스토리가 전혀 다르게 흘러갔기에 내용에 더 빠져서 읽게 되었다. 무이섬 사람들은 작은 단위로 분업화되어 가짜 재난을 위해 일하게 된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일이 정확히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하지 못했고, 각자만의 이유로 주어진 일을 수행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작은 이기심이 쌓여 쓰레기 산이 만들어지듯이, 그들의 욕심 또한 큰 재앙이 되어 그들에게 되돌아갔다.



쓰레기 산이 휩쓸고 간 무이 섬의 재난 현장에는 한국어가 적혀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발견된다. 이 부분에서 소설은 먼 나라의 재난이 정말 우리와 아무 연관이 없는 일인가란 물음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들려왔던 재난 소식들이 떠올랐다. 지구 반대편에서 들려온 산불 소식들, 바다에서 쓰레기로 고통받던 해양 생물들... 편리를 위한, 경제적인 이익을 위한 작은 선택들이 모여 현실의 재난을 불러왔다. 우리는 과연 이런 일들과 무관할까. 지금도 우리는 또 다른 쓰레기 산을 만들어 재난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욕심과 이기심은 환경 문제뿐 아니라 우리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다양한 문제들에도 뼈와 살을 보태 우리에게로 되돌아온다. 너는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너에게는 정말 조금의 책임도 없는가. 소설은 나에게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는 것만 같았다.



기발한 상상력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씁쓸한 결말로 읽는 이의 머릿속과 마음을 어지럽혔다. <밤의 여행자들>은 기대 이상의 작품이었고, 충분히 읽어볼 만한 소설이었다. 또한 이 소설은 2021년 영국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 수상 작품이라고 하니, 관심 있는 이라면 한번 읽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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