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지기들
에마 스토넥스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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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인 1972년 겨울, 콘월 지방의 랜즈엔드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의 한 등대에서 등대원 세 명이 자취를 감췄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일련의 단서들이 남아 있었다. 출입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두 개의 벽시계는 같은 시각에 멈추어 있었으며, 식탁에는 식사를 앞둔 식기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주임 등대원의 기상 일지에는 폭풍이 그 타워를 맴돌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공교롭게도 그날 하늘은 맑았다. (p. 35~36)




이 소설은 1900년 스코틀랜드 앞바다 엘렌모어 섬에서 등대원 3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미스터리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소설은 시작부터 안개가 끼어 앞이 보이지 않는 짙푸른 바다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밀실과도 같은 타워 등대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진 세 명의 등대지기들. 그들이 왜,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그 누구도 알아낼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을 둘러싼 소문은 무성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설가가 이 사건에 흥미를 느끼고 이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사건과 관련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난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깜깜한 집에 혼자 있을 때 끼익거리는 소리를 듣고 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창문을 닫는 사람, 촛불을 밝히고 살펴보러 가는 사람. (p. 54)


버거의 배는 이 등대 주변의 암초에 부딪혀 난파 됐어. 그 배에 탔던 사람들 모두 익사했지. 배에 실었던 화물은 모두 사라졌고. 버거라는 그 선원은 아서를 탓했어. 그건 등대 측의 잘못이었다고 말이야. 그 배 선원들은 아주 오랫동안 바다에 나가 있었지. 아무것도 없이 지겹도록 거대한 수평선만 바라보며 지내다가 마침내 등대 불빛을 보았는데, 그 불빛이 얼마나 멀리 있었는지 알 수 없었던 거야. 원근감이 달라지거든.” 그는 담배 끄트머리로 자기 관자놀이를 툭툭 친다. “어떤 물체가 멀리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자기가 그 위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되지.” (p. 206)




소설을 읽는 내내 차갑고 어두운 회색빛 바다가 연상되었다. 타워 등대라는 장소가 가진 이미지, 감춰진 비밀, 그들의 어두운 내면과 그들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낸 긴장감이 그러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것 같다.



소설은 1972년 등대원들의 이야기와 1992년 사건 이후 남겨진 그들의 아내, 연인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준다. 각 주인공들의 관점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그들의 시선과 마음의 소리를 차례대로 들려준다.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그들이 가지고 있던 비밀들이 하나 둘 얽혀 나오기 시작했고, 안갯속에 가려져 희미한 빛을 뿜던 진실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예상치 못했던 반전과 함께 완전한 빛을 되찾았다.



<등대지기들>은 무게감이 상당히 있는, 잘 쓰여진 소설이었다. 상실감과 그로 인한 고통, 사랑하는 이의 배신, 이기심 등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작품이었고, 짜임새도 매우 좋은 편이라 만족스럽게 읽었다. 정해연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에마 스토넥스의 차기작이 너무나도 기다려진다.



차분하면서 음울한 분위기를 가진, 한마디로 차가운 겨울 바다의 이미지를 가진 소설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쓴 미스터리 소설을 찾는다면, 탄탄한 스토리를 가진 작품을 찾는다면, 흐린 겨울날에 어울리는 소설을 찾는다면 이 책 <등대지기들>을 추천한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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