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8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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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소설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낯선 만큼 초반에 몰입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막상 읽어보니 그것은 기우였다. 초반부터 클라라의 영적 능력, 외삼촌의 죽음, 로사의 죽음 등 사건은 계속해서 터져 나왔고, 소설을 읽을수록 스토리에 더욱 빠져들어 2권으로 넘어 가면서부터는 빠른 속도로 책장이 넘어갔다. 소설은 칠레의 굴곡진 근대사를 환상적인 이미지와 함께 보여주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 역시 혼란의 세계 속에 휩쓸려 들어가 있었고, 갈수록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근현대사가 겹쳐 보이기도 했다.




알바는 군인들의 행동 역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 대부분이 중간 계급이나 노동자 계급 출신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극우 쪽보다는 좌파에 더 가까웠다. 알바는 나라가 왜 내전 상태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전쟁은 군인들의 작품으로, 그들이 받은 훈련의 결정체이자 그들 직업의 빛나는 훈장이라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군인들은 평화 시에는 빛을 발할 수가 없었다. 쿠데타는 군인들이 병영에서 받았던 훈련과 맹목적인 복종, 무기 사용법, 그리고 일단 양심의 가책을 외면하고 나면 습득이 가능한 다른 기술들을 실제로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 [영혼의 집 2], p. 243)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증오심마저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와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몇 주가 지나면서 증오심이 많이 희석되었고 날카롭고 또렷하던 면들도 많이 무뎌지고 뭉뚱그려졌다. 그 어느 것도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은 없었다. 그 모든 일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짜여진 운명에 상응하는 것이었으며, 에스테반 가르시아도 그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우리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의 환상을 믿고 있다. 그러나 전 시대의 영혼들이 공간 속에 모두 뒤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던 모라 세 자매가 말한 것처럼 모든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었다.” ([영혼의 집 2], p. 326~327)





<영혼의 집>은 이사벨 아옌데가 자신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모델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의 실제 삶도 소설 속 알바처럼 외갓집에서 아버지 없이 자랐다고 하며, 군부로부터 쫓기는 사람들을 도와주었고 그로 인해 망명까지 가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을 괴롭혔던 것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대갚음해 주기보다는 기록이라는 사명으로 승화시킨 알바. 그녀의 깨달음은 다소 종교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것만이 고통을 견뎌내고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이 작품을 통해 칠레의 근대사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작가가 전해주는 폭풍 같았던 시대 속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시대를 겪지 않은 나에게도 다양한 감정과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특히 마지막 결말 부분의 알바의 말은 책을 덮고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강렬한 색깔로 채색된 소설을 읽고 나니 머릿속에 잔상이 오래 남았다. 칠레의 근대사에 관심이있는 이에게, 강렬한 스토리의 소설을 찾는 이에게,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느껴보고 싶은 이에게 <영혼의 집>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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