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블루 캐슬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김고명 옮김 / 예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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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빨간머리 앤의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장편 소설이다. 빨간머리 앤 시리즈를 너무나 즐겁게 읽었기에 이번 작품 역시 기대되는 마음으로 만나보았다.



스물아홉의 노처녀밸런시 스털링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요즘의 기준으로 볼 때 스물아홉은 절대로 노처녀가 아니지만, 소설이 발표된 1926년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설정이다.) 누추한 그녀의 방에서 자신만의 상상의 왕국 블루 캐슬을 떠올리는 밸런시는 빨간머리 앤처럼 상상을 좋아하는 아가씨였다.



현실에서는 좋다고 하는 남자 하나 없는 삶이지만, 블루 캐슬 속 그녀는 연인이 한둘이 아니었다. 상상 속에서 멋진 연인들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결혼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밸런시.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웃들과 친척들의 눈치를 보며 따분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밸런시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불만스러웠다. 평생 모쏠(모태쏠로)로 살아온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조차도 말이다. 그런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는 협심증에 동맥류까지 겹친 매우 위중한 상태’(p.65) 라는 진단까지 받게 된다. 기껏해야 남은 시간이 1년 정도일 것이라는 절망적인 이야기도 덧붙여서 말이다.



난 평생 남들 비위를 맞추려고 애썼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어. 이제부터는 나 좋은 대로 살 거야. 다시는 마음에도 없으면서 이런 척, 저런 척은 하지 않겠어. 난 평생 거짓말과 가식과 회피를 공기처럼 들이마셨어. 진실을 말한다는 건 얼마나 호사스러운 것일까!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는 없더라도 절대로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을 거야. 어머니가 몇 주나 뾰로통하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걱정 안 해. 절망은 자유인이요, 희망은 노예라.’ (p. 84)



밸런시는 시한부 인생을 맞이하게 되자,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았던 지난날들과 진정한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자신의 삶이 후회되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만큼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자 결심한다. 그녀의 남은 일 년은 어떠한 경험으로 채워지게 될까? 그녀의 마지막 일 년은 후회 없는 삶이 될까? 궁금한 마음과 함께 뒷이야기를 이어서 읽어 나갔다.




100년 전쯤에 쓰여진 소설임에도 요즘의 작품을 읽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는 매끄럽고 현대적인 번역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내용이 계속해서 유머 있게 흘러가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주인공임에도 못생기고 인기 없는,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설정부터 재미있었다.



난 누구에게나 블루 캐슬이 있다고 생각해. 다만 부르는 이름이 다를 뿐이지. 나한테도 그런 게 있었지······ 한때는.” (p. 158)




밸런시에게 다가올 죽음은 절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을 할 수 있는, 그리고 새로운 기쁨을 얻을 기회를 주었다. 그것은 후회스러운 지난날들은 제쳐두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남은 날들을 소중하게 사용할 계기가 되어주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는다. 다만 밸런시는 우리보다 그때를 조금 더 가까이 느끼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자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자신의 뜻대로 살아나가는 그녀의 이야기는 소설 밖의 시한부 인생들에게너답게, 너대로 살아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밸런시는 타인들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면서부터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 다른 이와의 비교,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로지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일 때 행복으로 가는 문은 열리게 된다.



밸런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행복에 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인생이 아름다운 집이고 날마다 새롭고 신기한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는 것만 같았다. 그 집이 있는 세상은 그녀가 등지고 온 세상과 공통점이 전혀 없었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젊음이 불멸하는 세상, 과거도 미래도 없이 오직 현재만 있는 세상! 그녀는 그 매력적인 세상에 완전히 자신을 내맡겼다. (p. 257)




이 책은 유한한 인생을 자신의 의지로 꾸려 나가는 것,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그저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준 소설이었다. 유쾌하고 기분 좋은 소설을 찾는 이에게,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또 다른 작품을 찾는 이에게 <달콤한 나의 블루캐슬>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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