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에쿠니 가오리만의 표현법과 문체를 좋아한다. 이 책에서도 역시나 그녀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글에서는 따뜻한 봄날의 가벼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만 같다. 소곤소곤 부드러운 속삭임을 내게 건네는 것만 같다. 그래서 그녀의 책을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도 가벼워진다.


사실 이 책을 구매할 때 참고했던 서평들에 좋지 않은 말이 많아서 별로이면 어쩌나 조금 걱정을 하긴 했었다. 그러나 책 속에는 내가 그녀를 좋아했던 포인트들이 그대로 살아있어서 여전히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었다.




글자에는 질량이 있어, 글자를 쓰면 내게 그 질량만큼의 조그만 구멍이 뚫린다.

가령 내가 안녕이라고 쓰면, 안녕이라는 두 글자만큼의 구멍이 내게 뚫려서, 그때껏 닫혀 있던 나의 안쪽이 바깥과 이어진다. 가령 이 계절이면 나는, 겨울이 되었네요 하고 편지에 쓸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그때껏 나의 안쪽에만 존재하던 나의 겨울이 바깥의 겨울과 이어진다. 쓴다는 것은, 자신을 조금 밖으로 흘리는 것이다. 글자가 뚫은 조그만 구멍으로.” (p. 52)





스시 집에서 나는 정종은 조금, 맥주는 많이 마십니다. 신기하게도 스시 집에서 마시는 맥주는 바다를 닮았어요. 맑게 갠 한낮의 정말 아름다운 바다입니다. 파도가 철썩철썩 부딪치며 바위를 씻어 내리는 것처럼, 맥주가 내 목과 내장을 씻어내려, 해변에서 바캉스를 즐기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간간이 마시는 정종은 밤바람 같은 것이죠.” (p. 92~93)





이런 책을 읽는 동안은 어디에 있든, 뭘 하고 있든, 혼의 절반은 그쪽 세계에 가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다시 펼칠 때면, 그쪽으로 가는 느낌이 아니라, 그쪽에 돌아온 느낌이죠. 그걸 좋아해요.” (p. 93)





멋진 책 한권을 읽었을 때의, 지금 자신이 있는 세계마저 읽기 전과는 달라지게 하는 힘, 가공의 세계에서 현실로 밀려오는 것, 그 터무니 없는 힘. 나는 이 에세이집 안에서,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p. 212)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쓰기’, ‘읽기’, 그리고그 주변’. 각각에 대한 그녀의 생각들을 들려준다. 나에게는 뒷부분보다 앞부분(‘쓰기읽기부분)의 글들이 더 와닿았다. 책 속읽기부분에서 나오는 에쿠니 가오리가 읽었다는 책들의 제목도 하나 둘 메모해 두었다. 이 책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이 또 늘어났다.


이번 에세이를 통해 느낀 그녀는 섬세하고, 여리고, 조금 엉뚱하기도 한 사람 같았다. 그리고 책(특히 그림책)을 매우 좋아하는 작가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번에 아라이 료지와 함께 그림책을 썼구나…)




바깥은 초여름의 날씨이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는 봄날을 느꼈다. 이번에도 역시나 그녀의 글은 내 마음을 밝고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한다면, 읽고 쓰는 행위와 바깥세상에 대한 그녀만의 시각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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