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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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여러 가지에 대한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다.(p.15)




강도가 한 아파트에서 인질극을 벌였다. 범인은 39세 평균 체력을 가진 동네 주민이다. 그는 권총을 손에 쥐고 집을 나서면서 은행강도가 되려고 했으나, 약간의 문제가 생겨 은행강도다운 일을 벌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경찰이 출동하자 겁에 질려 도망치게 되었고, 우연히 한 아파트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는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아파트 구매를 위해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인질극이 벌어졌다. 몇 시간 뒤 강도는 항복했고, 인질 여덟 명은 풀려난다. 그런데 2-3분 뒤 경찰이 범행 현장을 들이닥쳤을 때, 은행 강도는 없었다. 출구는 모두 닫혀 있었는데 그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경찰 측에선 출구가 없는 곳에서 범인이 사라졌기 때문에 인질 중에서 누군가가 범인의 도주를 도왔다고 예상했다. 그렇지 않다면 아직 도주하지 않았으리라 추측했다. 그래서 경찰은 사라진 은행 강도를 찾기 위해 인질이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점은 따로 있었다. 경찰이 들이닥치기 직전 그곳에서 총성이 들렸고, 도착해보니 그곳엔 핏자국이 흥건했지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혹시 범인이 뛰어내렸나 생각해 보았지만 아래에도 역시 아무 흔적이 없었다. 정말 이상한 사건이었다. 그 피는 정말 범인의 것이었을까? 인질들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일까? 경찰의 추리는 맞아떨어질까? 대체 그날의 진실은 무엇일까?


페이지를 넘길수록 궁금함이 늘어갔고, 어서 진실을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소설을 계속 읽어 나갔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 빌어먹은 장난감 권총이, 거의 진짜 같았던 그 권총이 진짜처럼 보였던 이유는 진짜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계단에서 큰사슴과 개구리와 원숭이 그림이 바람에 나풀거릴 때 꼭대기 층의 어느 아파트에서는 러그가 피에 흠뻑 젖는다. (p. 101)





이 소설은 어딘가 좀 바보스럽고 마음이 아파 보이기도 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바보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지 소설은 심각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소재만 보면 매우 긴장감 있고 심각한 분위기가 연상되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피자 주문 할까요?”

그 생각에 즐거워진 로가 실수로 로게르를 팔꿈치로 찌르자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깨어났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왜요?”

피자요!” 로는 했던 말을 반복했다.

피자? 지금?” 로게르는 콧방귀를 뀌고 손목시계를 보았다.

이번에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은행 강도가 체념의 한숨을 쉬었다. “안 돼요. 일단 나는 돈이 없어서 피자를 주문할 수 없어요. 나는 심지어 인질마저 굶겨 죽이는 사람이에요······.” (p. 261)





인질극에 말려든 사람들은 모두 그날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인질극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에게는 드러내지 못한 각자의 상처가 있었지만,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모난 마음이 다듬어져간다. 풀지 못했던 그들만의 문제들이 풀려나간다.



소설을 읽는 내내 겉으로 보이는 사람의 모습과 실제 그 사람과의 간극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이해되지 않는 말과 행동을 보이더라도, 사실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들과 그 사람 내면의 생각을 들여다보게 된다면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소설 속 이야기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어긋난 관계는 결국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진실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다.





흔히 인간의 성격은 경험의 총합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전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다. 과거가 모든 것을 규정한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절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어제 저지른 실수들이 우리의 전부는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선택, 다가올 미래도 우리의 전부라고 말이다. (p. 462)





우리는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고, 더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바보다. 그러나 때로는 바보가 아니기도 하다.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얻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바보들이 넘쳐나는 유쾌한 인질극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이에게, 이해할 수 없던 누군가를 이해해 보고 싶은 이에게, 그리고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간 소설에 관심이 있는 이에게 <불안한 사람들>을 추천한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만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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