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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
이지혜 지음 / 파람북 / 2020년 10월
평점 :
소소한 일상이 모여 절기를 이루고 계절이 순환하는 동안 인생은 무르익어 간다. 예술가들이 계절과 교감하고 영감을 받았듯이, 우리 모두는 오감을
활짝 열어 그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끼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 아름다움 속으로
언제든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음의 향연을 음미하는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각별하고 애틋한 존재가 되어
주길 바란다. (p. 7)
이 책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계절에 따라 저자가 추천하는 클래식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을에 출간된 책이어서 그런지 가을부터 시작해서 여름으로 마무리한다. 각
계절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개성에 잘 어우러지는 곡들과 함께 사계절을 더욱 뚜렷하고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관련 곡의 QR코드가 없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물론 곡을 찾아서 듣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지만... 요즘
책들에 대부분 QR코드가 있어서 편리함에 쉽게 적응되어 그런지 조금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가을의 가장 첫번째 곡은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다. 정말 너무나 가을스러운 곡이었다. 가을 특유의 쓸쓸함이 묻어나는 듯한 이 곡은 뭔가 사연을 품고 있을 듯했지만,
이 곡에는 아련한 러브스토리 같은 내용은 없다고 한다. 이 곡은 기타 독주곡으로, ‘트레몰로 주법’(같은 음을 같은 속도로 여러번 치면서 연주하는
주법- 네이버 시사상식사전)으로 반주를 했다고 한다. 타레가는 이 주법을 처음으로 고안한 인물이라고 하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특히 생애 후반에 들어 건강상의 문제로 오른손 손톱이 자라지 않게 되자,
어떻게든 기타 연주를 해보기 위해 손끝 살을 이용해서 연주하는 주법을 개발했다. 그게 바로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에 등장하는 ‘트레몰로 주법’이다. 손가락을
바꿔가며 연이어 줄을 퉁기면 음향이 더욱 풍성해지고 부드러운 사운드가 연출된다. 절실함은 곧 예술이
되었다. (p. 18)
겨울의 첫번째 곡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이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곡이었다. 곡을 계속 듣고 있으니 내가 있는 이 공간이 회색 구름으로 가득 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24곡의 가곡이 들어있는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가 빌헬름 뮐러의 시를 가져와 순서를 약간씩 조정하여 한 줄기의 이야기로 엮어낸 것이라고 한다.
슈베르트는 《겨울 나그네》에 등장하는 ‘나그네’가 느끼는 이방인의 감정과 외로움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한 듯하다. 서른
살의 나이에 가난과 병마에 지쳐가던 그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이 작품에 유난스레 몰입했는데, 1년
뒤 결국 죽음을 맞았다.
가곡 《겨울 나그네》는 시종일관 음울하고 비극적이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그는
추운 겨울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홀로 방랑의 길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간혹 밝은 곡조가 나오지만
잘 새겨들어 보면 일종의 환영 같은 것일 뿐 나그네는 언제나 고독하다. (p. 91)
겨울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곡 차이코프스키의 <호두까기 인형>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곡을 감상하며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크리스마스가 곧 다가온 것만 같고 크리스마스가 주는 따뜻하고 행복한 분위기가 연상되어 괜히 마음이 들떴다.
저자는 새해의 첫 아침에 들으면 좋은 곡으로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추천한다. ‘오스트리아인들에게 제2의 국가’가 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에
대해 저자는 ‘이 곡을 들으면 기분 좋은 예감이 드는 새해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 역시 새해의 첫 아침은 아니지만 아침에 일어나
이 부분을 읽으며 곡을 감상하였는데, 우아한 분위기의 이 곡이 마음속에 희망적이고 즐거운 기분을 채워주는
느낌이 들어 저자가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 2021년 1월 1일 아침에는 이 곡을 들어야겠다!
아래의 글은 저자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의 감상을 각 악장별로 설명한 부분이다. 감성적인 곡 설명 부분이 쉽게 읽히면서도 어떤 느낌인지 잘 와닿아 특히 좋았다.
1악장은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바이올린 솔로가 마치 새처럼
자유롭게 비상하듯 등장한다. 아련한 먼 기억을 이야기하듯 서정적이다가 이내 격정적인 몸짓으로 표정을
바꿔 활약한다. 일반적인 협주곡과 달리, 악장의 중간에 카덴차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2악장은 북유럽 특유의 침착하게 가라앉은 냉기와 서정이 피어오른다. 바이올린의 애조 띤 노래는 점진적으로 상승하다 스러지면서 내면의 깊은 곳을 건드리고 사라진다. 3악장은 팀파니와 저음 현악기들이 울리는 묵직한 리듬 위에서 정열적이고 현란한 바이올린의 움직임이 펼쳐진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저음부의 리듬과 상반되는 바이올린의 자유로움은 기묘한 조화와 쾌감을 선사한다. (p. 134)
겨울의 플러스 편에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저자가 들려주는 곡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 나가며 유튜브 영상을 검색해 함께 감상해보았다. 알고 있었던 곡이었지만 공연을 집중해서 제대로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전에도 들었던 곡인데도 이상하게 새롭게 들렸다. 특히
4악장이 이렇게나 감동을 주었었나? 직접 듣는 것도 아니고 영상을 보고 있음에도 뭔가가
가슴속에 꽉 들어차는 기분이 들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나는 분명 신을 믿지 않는데도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신이 존재할것만 같이 느껴진다. 저자는 교향곡 9번 <합창>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거대한 산과 같은 존재였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봄의 첫번째 곡은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D장조>이다. 저자가
너무나 계절에 잘 맞는 곡을 선정하여 곡을 듣고 있으니 지금이 가을임에도 봄의 향기가 물씬 풍겨오는 것만 같았다.
‘내면의 기쁨을 노래하고 연주했다’는 모차르트의 곡은 마음을 한없이
밝고 가볍게 튀어오르도록 만들어주었다.
작곡가들 가운데 ‘봄’을
닮은 이는 누가 뭐래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다. 그가 남긴 음악들은 아이의 해맑은 미소처럼 꾸밈이
없고 하나같이 살갑다. 나풀거리는 봄날의 나비처럼 가벼우니 마음을 억누르는 법이 없다. 겨울을 뚫고 나온 매화꽃처럼 세상의 온갖 소음들 사이에서도 마치 시그널처럼 생동한다. 매화가 봄의 초록빛을 이끌고 오듯 모차르트의 음악은 우리네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p. 158)
매 계절에 분류된 곡들을 듣고 있으니 그 계절들이 너무나 그리워졌다.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은 항상 아쉬운 일이었지만, 책을 읽는 동안 만큼은 빨리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름 편에는 모리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이 실려 있다. 이 곡은 양손이 아닌 왼손으로만 피아노를 연주해야
하는 곡이다. 이는 1차대전에 참전 후 오른팔을 잃은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유튜브에서 곡을 찾아 들으며 이야기를 읽어 나갔는데, 저자가 곡에 관해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아름답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다수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그런 정형화된 아름다운 선율은 아닌데
이상하게 불안한듯 매력적으로 들린다. 두 손으로 피아노를 연주해도 어려울 곡을 한 손으로도 멋지게 들려주는
피아니스트가 참 대단하게 보였고, 이런 곡을 쓴 라벨 또한 존경스러웠다.
클래식 음악에 관한 이야기라 딱딱하고 지루하고 어렵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려운 음악이론이나 용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음악가들의 삶과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려준다. 클래식 곡을 찾아 들으며 책을 읽고 있으니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클래식 음악 해설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여서 그런지 쉽게 읽히고 재미있어 페이지도 술술 넘어간다.
가을을 넘어 겨울, 봄, 여름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곡을 듣고 있으니 다음의 계절들이 기다려졌다. 책 속에서 소개한 음악들과 보낼 미래의
시간들이 기대된다.
<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은
쉽고 재미있는 클래식 입문서를 찾고 있는 사람에게, 클래식 음악과 함께 계절의 변화를 더 깊이 느껴보고
싶은 사람에게, 일상의 근심거리를 잠시 내려놓고 클래식 이야기를 들으며 편안한 마음을 만들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클래식 음악의 쉬운 감상 해설과 음악가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면 고민없이 이 책을 선택해도 좋다! (이 책 너무 좋아요♥)
이 글은 ‘책과콩나무’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