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 (여름 한정 특별판) - 나태주 시집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감성을 충전하고 싶을 때는 역시 시집 한 권 읽는 것이 최고인 것 같다. 덥고 습한 여름 날,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 옆에 두고, 에어컨 시원하고 틀어 놓고, 창가에 기대 앉아 멀리 창밖 풍경을 그림 삼아 시집 한 권 읽는 것. 일상에서 챙길 수 있는 나의 소소한 행복을 느낀 시간이 되었다.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는 나태주 시인의 등단 50주년 기념 시집으로, 1부에는 신작 시 100, 2부에는 독자들이 사랑하는 애송시 49, 마지막 3부에는 나태주 시인이 사랑하는 시 6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겨울에 이미 출간된 시집이지만, 여름을 맞이하여 시원한 옷으로 갈아입고 새롭게 출간되었는데, 표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러스트 작가 오아물 루의 그림이다. 표지도 감성적이고, 안에 수록된 시들은 더더욱 좋은 이번 시집은 완전 대만족이었다. 시집을 선물하게 된다면 나는 이 책을 고를 것 같다.

 

 

 


 

하늘이 좋다

바람이 좋다

이 좋은 바람

이 좋은 하늘

너에게 보낸다 


(p. 23 『너에게 보낸다』 중에서)



가끔 너무나도 화창한 날씨, 기분 좋은 바람, 맑고 깨끗한 하늘을 만날때면, 사랑하는 이에게도 이것을 보여주고 싶고, 이 느낌을 함께 공유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시는 그런 마음을 그린 것 같다. 좋은 것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좋은 것을 사랑하는 이에게 주고 싶은 마음 말이다.

 





 

저기 꽃이 피어 있다

얼른 보러 가야지

 

저기 아이가 오고 있다

얼른 만나러 가야지

 

예쁘다

그냥 예쁘다 


(p. 27 『골목길1』 중에서)


꽃을 대하듯 아이를 대하는 그 마음. 그저 꽃같이 예뻐서 한번 더 눈길이 가는 것이었나보다. 가끔 아이와 외출할때면, 어르신들 중에서 아이가 예쁘다며 말을 거시고 웃어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마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냥 예쁜 마음. 활짝 피어 있는 꽃을 보듯이 말이다.

 

 



비록 그것이 잠시

아주 짧은 날이란들 어떠랴

사랑으로 후회 없고

사랑으로 잦아진다면

 

너희 둘이서

산이 된들 어쩔 것이며

바다가 되어 노을 속으로

저물어 버린단들

어쩔 것이냐 


(p. 58 『사랑이거든 가거라』 중에서)


사랑으로 아파하는 젊은이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시이다.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이 가는대로, 마음이 시키는대로 하면 되는 것이 사랑인 것 같다. 이것 저것 따지고 생각해봐도, 마음은 처음부터 답을 알고 있다.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면, 그 길을 따라가서 무엇이 되었든 온전히 그 사랑을 쏟아내는 것이, 그 길을 가지 않은 채 후회하고 앉아 있는 것 보다 더 낫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서점에서(p.113)란 시를 읽으니 나무를 좋아하는 내가, 숲을 좋아하는 내가 서점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나 보다. 서점의 책들은 모두 숲에서 온 것들이니. 서점을 서성이는 것은 숲 속을 걷다 온 것과 같았구나. 그래서 나무 냄새를 좋아하는 나는 책 냄새도 좋아하나 보다.

 

 



 

얼마나 네가 예뻤는지

얼마나 네가 사랑스러웠는지

너는 차마 몰랐을 거다

 

하늘이 내려다보았겠지

나무들이 훔쳐보고

바람도 곁눈질로 보았겠지

 

너는 그냥 그대로 가을꽃

맑은 바람에 피어 있는

가을꽃 한 송이였단다.


(p. 73 『어제의 너)


아이는 나중에 기억할까? 엄마가 얼마나 너를 예뻐했었는지. 너 그 자체로 니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아마 모를거야. 나도 몰랐으니까. 내가 그렇게 사랑받았다는 것을. 내가 누군가에게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뭇잎을 밟으면

바스락 소리가 나오

 

그대 내 마음을 밟아도

바스락 소리가 날는지 ······.


(p. 135 『바람이 부오』 중에서 )


오랜 시간이 지나고 계절도 바뀌어 푸르던 나뭇잎은 갈색 빛으로 변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밟으면 바스라지는 소리와 함께 부셔져 버렸다. 오랜 세월이 흘러 빛바랜 내 마음도 밟으면 바스락하고 조각조각 흩어질 것이다. 한때는 초록빛 싱그러운 향이 났던 내 마음의 나뭇잎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p. 156 『풀꽃 1


이 짧은 문구로 어찌 사람마음을 이리 흔들어 놓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 시를 알게 된 후로 나는 나태주 시인의 팬이 되었다. 이 말은 그 때의 내가 듣고싶은 말이었나보다.

짧은 문장으로 건네는 위로와 솔직한 마음. 그것이 나태주 시의 매력이다.

 

 



『너를 두고』(p. 165)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하루 종일 잠을 자던 너를 보며 마음속에서 솟아나던 사랑을 말로 표현했다면 이 시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읽고 있으니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너그러워지고 따뜻해진다. 이런 맛에 시를 읽는 건가?

 

 



『행복』 (p. 170)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사소하고,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다. 행복은 그런 것 안에 있다. 언제나 내 옆에서

 

 



 

『그런 사람으로』 (p. 189)

사랑이 주는 힘이 이런 것 아닐까 생각했다. 나를 든든하게 채워주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세상이 이전보다 아름답게 보이는 그런 것.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삶에 무뎌졌던 걸까. 담백하다 못해 팩팩해진 내 마음이 시집으로 다시 몰랑해지고 촉촉해졌다. , 내가 잊고 있었던게 이것이었구나. 잃어버린 물건을 잃어버린지도 모르고 있었다가 이제 막 생각나서 다시 찾게된 기분이다. 시집을 좀 더 자주 찾아 읽어야겠다.

 

 

 



 

그냥 줍는 것이다

 

길거리나 사람들 사이에

버려진 채 빛나는

마음의 보석들.


(p. 218  『시』 )


시는 어디에나 있다.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좀더 깊게 느낀다면 보일 것이다.

오늘 내가 지었던 미소가, 아이가 접어 만든 종이비행기가, 오래 전 즐겨 듣던 노래가, 언제나 제자리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모두 시 였다는 걸.

 

 




하지만 나는 소낙비를 나무라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요

날씨 탓만 하며 날씨한테 속았노라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좋았노라 그마저도 아름다운 하루였노라

말하고 싶어요

소낙비와 함께 옷과 신발에 묻어온

숲속의 바람과 새소리

 

그것도 소중한 나의 하루

나의 인생이었으니까요.


(p. 223~224  『인생』 중에서)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다. 소나기가 내려 몸이 젖어도, 그 속에서 느꼈던 숲속 바람과 새소리를 즐길 수 있는 태도를 갖고 싶다. 내게 주어진 반짝이는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봐주고 놓치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장마철, 창가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책을 펼치고 시집 속 시들 속을 산책하며 돌아다녔더니, 꿉꿉하던 기분도 날아가고 빗소기도 한층 더 기분좋게 들리는 듯 했다. 내 마음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에 따라 같은 것도 다르게 다가온다. 마음이 몽글해지는 시들을 읽으니 내가 바라보는 세상도 달라진다. 시인의 따뜻한 시들이 내 일상을 더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제목부터 너무나 멋진 나태주 시인의 시집 <너와 함께라면 인생도 여행이다>는 이번 여름 메마른 감성을 다시 충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나의 마음에 휴가를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변에 선물하기 좋은 시집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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