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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 - 상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19
제프리 초서 지음, 최예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평점 :
일주일 교육 출장중일 때 회사로 캔터베리 이야기가 도착했다. 어서 받고싶은 맘에 회사동료에게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 동료도 책을 사랑하는 친구라 ‘먼저 읽고 달라’고 했는데 몇장 읽더니 포기하고 갖다줬다. 그러면서 내가 절대 완독하지 못할거라고 확신했다. 이유인즉슨 서문에 등장인물이 너무 중구난망 나열되어 있어 읽고싶은 생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말만 듣고 56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어떻게 다 읽지 걱정되었다. 그런데 왠걸, 미물일기를 다 읽고 슬쩍 펼쳐만 본다는게 앉은자리에서 완독할 정도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들었던바처럼 서문의 등장인물은 물론 많지만 각 인물들끼리 얽혀있는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라, 캔터베리로 순례기를 떠나고자 모인 각양각색의 사람(계급계층)들을 단순 소개한 것이고 숙소주인의 제안에 따라 순례길을 보다 즐겁게 만들기 위해 그들 각자가 옛날이야기 내기를 한다는 설정이다. 이것이 서문이고 모두의 동의에 따라 기사의 이야기를 필두로 사람들의 이야기 보따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라비안나이트’ 아라비아의 왕에게 세헤라자데가 1001일일동안 들려줬다는 천일야화의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중세 사회를 구성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 귀족, 종교인, 평민들이 무리를 대변하여 각 계층간의 갈등과 생활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설화처럼 신비롭게 펼쳐놓는다. 옛날이야기 이다 보니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로 묘사되기도 하고, 아름답고 놀라운 이야기 저변에 미천하고 저급한 이야기도 존재하지만 하나같이 재미있고 솔직하고 담대하다는 것!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라고 표하고 싶다.
1300년대 지어진 이야기라 다소 따분하고 현세와 동떨어져 있을 것 같지만 사람 사는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더니 권선징악, 현실풍자, 해학요소는 지금 읽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 과거의 왕들, 미신, 종교 등 지금까지도 이야깃거리로 삼곤 하는 요소들이 이야기마다 가득하고 노랫가사를 읊듯 술술 읽혀져 내려가는 문단과 문단(원문의 운문체를 세심하게 되살렸다더니 과연!),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경합 속 흥미진진한 이야기들까지! 모든 요소가 완벽하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기를 멈출수 없을만큼 스토리가 주는 힘에 빨려들었다. 바톤 터치하듯 순례길 위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의 향연 중, 요리사의 이야기 중간에 부자연스럽게 법정 변호사 이야기로 넘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주석에 의하면 요리사 이야기가 이렇게 미완으로 끝나있다고 했고 도대체 요리사의 뒷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정도면 캔터베리 이갸기가 어느정도로 매력적인지 표현되었을까.
운문체를 살려 번역해놓아 책이 술술 잘 읽히는 것인지,
내가 본디 이런 중세 이야기를 특히 좋아하는 것인지, (그러고보면 분위기가 비슷한 빅토르위고의 웃는남자도 아주 좋아했다.)
아니면 정말 이야기자체가 아주 매혹적인 것인지,
아마 세가지 모두 해당 되는 것 같다.
이어질 이야기의 하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초서가 이야기의 끝을 맺기 못하고 죽었다는 걸 이미 알기에 이야기경합의 끝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처럼, 미완이지만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들 그 자체로도 위대한 걸작인 캔터베리 이야기!!(사실 이렇게 좋은 책을 이번 기회에 처음 알게 되었다는게 놀라움)를 널리널리 전파해야지 📖
사랑하는 자에게 누가 법을 강요하랴. 일단 사랑에 빠지면 죽는한이 있어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법이지. -p62
우리는 열심히 행복을 추구하지만, 곧잘 길을 잘못 들어선다. -p66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 찬 길에 불과하고, 우리는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순례자이다. 죽음은 세상 모든 슬픔의 종말이다. -p135
재산을 잃은 것은 찾을 수 있지만 시간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p214
아무리 즐거워하며 살아도 양심에 찔리는 일, 분노, 욕망, 두려움, 질투, 오만, 격정 그리고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일 이런것들로부터 하루라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p268
다른 사람들 본보기를 보며 경고받지 못하는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는 본보기가 될 것이다. -p283
후회하지 않으려면, 화내는 자와 친구가 되지말고 분노한 자와 동행하지 말라. -p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