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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수집하는 노인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현정 옮김 / 아고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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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이스 캐롤 오츠는 무척 유명한 작가지만 우리나라에선 왜 그런지 그렇게 인기있는 작가도 아니며 작품이 많이 소개되지도 않은 듯 하다. 나도 오츠의 책은 이 책이 처음 접한 거였고. 

 미국문학의 대가 다섯명의 마지막 순간을 테마로 하여 단편 다섯개를 엮은 책인데, 미국문학사에 지식이 없는 사람도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이 소설은 픽션이지만 동시에 작가가 꽤 꼼꼼하게 조사를 한 듯, 실제 사건과 교묘히 얽혀들어가는 부분도 있으니 아무래도 아는 게 많으면 그만큼 더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겠고. 

 '소녀수집하는 노인'은 '톰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말년을 그렸다. 늙음에 대한 한탄과 아내와 사랑하는 딸을 연달아 잃는 가정의 불행으로 인해 어리고 귀여운 소녀를 '수집'하는 취미를 갖게 된 클레멘스(트웨인의 본명) 할아버지. 물론 원조교제라는 말로 얼핏 떠오르는 그런 성욕의 측면은 아니지만, 또 쉽게 그런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에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기도 하다. 자신이 원했지만 갖지 못했던 순수함과 귀여움의 상징으로서 소녀를 원하는 노인. 하지만 그 순수한 욕망은 동시에 '영원한 소녀는 없다'는 당연한 진리 앞에서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데... 

 헤밍웨이의 마지막을 다룬 '아이다호~'도 마찬가지다. 녹슬어가는 육체와 세상사에 대한 환멸로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 총으로 자살을 꿈꾸는 헤밍웨이. 강렬히 죽음을 원하면서도 막상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한다. 실패하면 웃음거리가 될거란 핑계를 내세우지만, 그토록 죽음을 원하는 그의 모습이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강한 미련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자신의 젊은 날을 반성하며 한편으로 젊은 병사들에게 동성애 비슷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헨리 제임스의 이야기 '성 바르톨로뮤 병원의 대문호'는 내가 헨리 제임스의 책을 읽지 못했고 그의 삶에 대해서도 아는게 별로 없기에 큰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노년에 접어든 후에, 아니 어쩌면 노년에 접어들었기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여 비난받을 일조차 서슴지 않는 모습에서, 다시금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경계에 걸쳐있는 욕망이란 코드를 읽어낼 수 있었다. 

 정말 포가 다시 살아나서 쓰기라도 한 듯 포 특유의 환상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물씬 배어나는 '죽은 이후의 에드거 앨런 포 그리고 등대'도 마찬가지로 앞서 말한 삶과 죽음, 욕망이라는 주제를 변주하고 있다. 헨리 제임스와 나중에 나올 에밀리 디킨슨은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마크 트웨인과 헤밍웨이, 그리고 포를 다룬 세 편의 경우에는 정말 그 작가의 문체로 착각할만큼 탁월하게 문호들의 스타일을 재현해냈고 그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정도의 연륜을 쌓은 대작가가 굳이 다른 작가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새로웠지만 유연하게 다른 사람의 문장스타일을 재현하는 것이 기가 막히기도 하면서 동시에 오츠 본인의 탁월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SF적인 상상력의 '레플리럭스'는 그 기발한 상상력에 그치지 않고 자연스럽고 매끈한 전개와 만만치않은 소설적 재미, 그리고 생사를 가르는 것이 무엇이며 인간답다는것은 또 무엇인지 우회적으로 묻고 있는 점까지, 실로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역시나 디킨슨의 작품 세계를 잘 몰라서 조금 재미가 반감되긴 했지만 말이다. 

 정리해보자면 다섯 문호의 삶과 죽음, 그리고 욕망을 통해 우리의 인생이 어떠한 것인지 또 그것이 얼마나 지독한 집착이며 동시에 그러한 집착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기둥임을, 현란하게 문장스타일을 바꿔가면서 처연하게 얘기하고 있는 수작소설이다. 굳이 주제만 의식해서 강박적으로 읽을 필요도 없다. 그냥 재미있게 읽다보면 절로 욕망과 인생에 대해 각자 생각이 들 테니까. 

 이만한 작가를 아직 몰랐다는게 부끄러우면서 한편으론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이 작가 본연의 스타일은 어떤 것인지, 한번 다른 책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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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그림 - 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 무서운 그림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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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혹은 미술이라고 하면 아직 그리 친근하지만은 않은게 사실이다. 몇몇 유명한 화가의 전시회는 성황리에 열리곤 하지만 과연 그조차도 그림 자체의 매력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듯 하다(아직 남아 있는 문화사대주의와 그에 편승한 자본주의, 그리고 허세권하는 사회 등의 모습이 얽힌 것이라 생각한다). 간단한 미술입문서를 보려해도 죄다 비슷비슷한 그림들을 시대순으로 나열해놓고 '이 그림은 이런 기법으로 그려진 그 시대의 걸작이며 이 화풍은 후세에 영향을...'하는 뻔한 설명뿐이라 쉽게 지루해진다. 과연 그림이나 미술은 그렇게 지루하기만 한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다행히 몇년 전부터 쉽고도 재미있는 미술관련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또 이러한 토양 위에 본격적이면서도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중고급 해설서들도 차츰 늘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은 입문 단계에서 헤매는 나같은 무식한 사람에겐 아직 낯설게 보이는 것도 사실인데... 

 그러던 차에 만난 책이 이 녀석이다. 얇고 작은 책이지만 무척 재미있고 신선했으며 무엇보다 미술 자체에 대한 흥미를 돋궈주는 매력적인 에피타이저 역할을 해준 점이 고맙다. 

 제목처럼 이 책은 '무서운 그림'을 담고 있다. 20점의 그림을 소개하면서 왜 그 그림이 무서운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읽다보면 그 당시 시대상이나 화가의 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파악해볼 수도 있고 인간 감정의 풍부함과 그 표현력에 새삼 놀라게 되기도 한다. 

 '제 아이를 잡아먹는 사르투누스'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딧' 같이 한눈에 보기에도 무서움이 느껴지고 선혈이 낭자한 그림이 있는가 하면 '에투알'이나 '그레이엄 집안의 아이들'처럼 전혀 무서워보이지 않는 그림도 있는데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나 몇 가지 기호를 통한 그림의 해석 등을 통해보면 서늘한 무서움이 조용히 뒤에서부터 덮쳐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1
 

 이런 그림이야 누구나 무섭다고 하겠지만, 


2
 

 이런 그림도 무섭다? 하지만 의미를 알고 보면 다르다! (물론 고야의 그림에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러한 '무서움'은 단순한 잔인함이나 끔찍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춘기'에서 보이는 성장에 대한 두려움, '마리 앙투아네트 최후의 초상'에서처럼 화가 자신의 악의가 드러난 경우,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 초상에서 출발한 습작' 같이 기존 그림을 재구성함으로서 드러내는 현대인의 불안함과 소외의식 등, 실로 무서움이라는 단 하나의 말로 표현하기 무색할만큼 다양한 감정이 이 그림들에 드러나, 혹은 숨어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그림처럼 그림 자체보다 해석을 통해 이야기를 구성하는 게 더 중요한 경우나 중세말엽 교조주의적인 크리스트교가 어떻게 순박한 농민을 통제했는지를 보여주는 그뤼네발트의 제단화, 또 무희를 통해 19세기 프랑스의 어두운 면모를 보여준 드가의 그림처럼 그림이 그려진 시대상을 읽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그림들을 이런저런 해석과 의미부여로 다시 읽어내려가는 재미도 재미지만 그림 자체만 봐도 흔한 미술입문서적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개성짙은 그림들을 볼 수 있어 이래저래 눈요기는 배부르게 할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림해설이나 시대배경설명 등에서 깊이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며(저자가 전문 미술가가 아니며, 책 자체의 성격도 그리 깊은 설명과 어울리지 않으므로), 또 해석이 중요한 미술의 특성 상, 나같은 초보들이 무작정 저자의 시각과 해설로만 무의식중에 빠져들 수 있는 위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좀더 크고 두꺼운 책으로 나와 그림도 크고 시원하게 보여주고, 재미있는 얘기도 더 많이 해주길 바랐는데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기도 하고. 

 즉 이 책이 미술 자체를 전부 설명할 수 있는 책은 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서브의 역할, 혹은 흥미를 돋궈 본격적인 미술서적을 읽도록 유도하는 역할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하지만 허세부리면서 콧대를 세우는 오만하고 두꺼운 책 100권이 할 수 없는 '대중들에게 미술을 좀더 쉽고 친근한 존재로 인식시키는' 역할 만큼은 충분히, 그리고 훌륭히 해내고 있는 책이며 인간 감정과 그 표현법의 다양함을 생생히 인식시켜주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으니 가볍게 읽어볼만한 책으로는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다. 

그림에 대한 해석을 주로 다룬 책 '세계명화의 수수께끼', 부담없는 가격으로 명화들을 소개하고 있는 입문서 '1000년의 그림여행', 어렵지 않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몇몇 작품들을 심층분석하고 있는 '세계명화비밀' 등이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초보자를 위한 미술서적이라 생각하여 같이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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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외계인이 가득하다면... 모두 어디 있지?
스티븐 웹 지음, 강윤재 옮김 / 한승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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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외계인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듯 하다. 실제로 외계인들이 등장하는 TV프로그램이나 영화, 공상과학 소설들은 지금도 끝없이 나오고 있으며 외부 세계의 지적생명체 존재 가능성에 대한 이론적 탐구도 계속되고 있으며 실제로 우주탐사선이나 우주로 쏘아대는 전파에 우리의 메세지와 흔적을 남기고 있기도 하다.

 

 이 끝없이 넓은 우주에 우리 외에도 지적생명체가 존재하리란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그 실체가 밝혀진 바는 없으며, 이에 당연히 다음 질문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하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페르미의 역설로 알려진 문제이며, 이를 풀기 위해 저자는 50가지의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이 50가지 가설들은 크게 세 부류, 즉 그들은 여기 있다, 그들은 존재하지만 의사소통이 안 된다, 그들은 없다로 나누어 각기 그 타당성을 철저하게 분석하는데 개중에는 아주 어려운 이론과 복잡한 공식이 필요한 가설도 있고 과학적 근거 없이 그저 상상의 산물인, 약간 우습기조차한 가설도 있더라구.

 

 우선 '헝가리인이 외계인이다'는 황당한 이야기로 이 흥미진진한 지적여행은 시작되는데 곧이어 우리가 외계인에게 사육되고 있다는 동물원 가설과 우리 모두가 외계에서 이주해온 후손이란 가설, 그리고 모든 수수께끼를 쉽게 풀 수 있는 '신'의 존재까지 언급되는 '여기있다' 카테고리가 시작부터 흥미를 주더군. 아직까진 그저 흥미있는 상상력의 산물들일 뿐이었지만 곧이어 '의사소통이 안된다' 카테고리로 넘어가자 바로 과학 전반에 걸친 이론들이 잔뜩 등장해서 머리를 아프게 함과 동시에 지적욕구를 강렬히 땡기게 해주었다.

 

 '의사소통'에 나온 가설들이 내가 평소 생각해 오던 것들과 비슷했는데 우선 별들 간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과 '지적능력체'라고 통칭은 하지만 당연히 발전의 정도나 방향은 다를 수 있으니 거기서 오는 차이(생각해보면 같은 별 같은 종인 호모사피언스 간에도 문명의 격차가 존재하지 않는가말이다), 또 수학적, 과학적 언어의 해독문제까지 실로 그럴싸한 이론들이 척척 나오는데, 나같은 '뼛속까지 인문계체질'이 보기엔 좀 버거운 부분도 있었지만 비교적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백미는 '없다' 카테고리라고 생각하는데 이 카테고리에 나온 가설들은 지적생명체의 가능성을 애써 부정하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의 세번째 별이 얼마나 축복받은 환경인지, 또 그러한 환경에서 우리같이 의식을 갖고 우주를 연구할 수 있는 지적생명체가 진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낮은 확률의 기적인지를 역설적으로 말하는 듯 하더라고. 우주의 구조에서 태양계같은 안정된 항성계 자체가 드물며, 암석과 무거운 원소로 이루어진 지구같은 별도 더욱 드물고, 달이나 목성같이 얼핏 보기엔 우리의 지구 모습에 별 도움이 안되는 것 같은 별들도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또 지구 내부의 문제로 보더라도 생명의 탄생부터 진핵생물로의 진화, 더더구나 지적능력을 갖춘 생물로서의 진화는... 이 모든 확률을 다 곱해본다면 정말 이건 기적이란 말로도 설명이 부족할만큼 기적이 아닌가말이다.

 

 저자의 개인적 견해는 이 리뷰를 보신 분이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하듯, 세번째(즉 없다) 쪽으로 기운다. 하지만 저자도 말하듯 그것이 우리를 위축되게 하는 요소는 전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저 수많은 난관을 겪고 지금 스스로 우주를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에 긍지와 애정을 갖고 삶 자체에 대해 감사들 드리는게, 이 넓은 우주에서 어쩌면 유일한 존재인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하는게 저자의, 그리고 나의 생각이다.

 

 물리, 화학, 생물, 지질, 천문학 등 과학 전반적인 폭넓은 지식으로 쉽고도 진지하게 어쩌면 가벼워 보일 수도 있는 의문에 답하는 이 책은 단순히 외계인의 존재를 규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그리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마저 느끼게 해주는 아주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과학적 이론과 기발한 상상력이 어우러져서 읽기에도 수월한데다 재미도 있는 편이고,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두고 있으니 일독을 권해본다.

 

 특히 호기심이 왕성하고 머리가 잘 돌아갈 나이인 중고교학생들에게 쉽고도 재미있는 교양과학서적으로 권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사람들에게 우선 읽기 전에 스스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둘쯤은 생각해보고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 질문 말이다.

 

 

 "우주에 외계인이 가득하다면, 모두 어디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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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후 너는 죽는다 밀리언셀러 클럽 9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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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계단>에서 사형제를 둘러싼 거의 모든 논란을 소설 속에 무리없이 잘 섞어놓은 솜씨좋은 추리소설가 다카노 가즈아키. 개인적으로 일본소설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부담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만큼은 인정하는데, 그런 일본소설의 특징 위에 제법 진지한 질문도 던지고 있는 그의 책이라서 고민없이 집어들게 되었다.

 

 이 책은 여섯편의 중단편을 모은 일종의 연작소설인데, 케이시라는 예지능력을 가진 청년이 모든 이야기에 공통으로 등장하고 있다. 치밀하게 짜여진 무대 위에 독자와 작가가 머리싸움을 벌여야하는 추리소설에 웬 초능력? 이 서로 맞지 않는 듯한 조합이 내겐 작가의 도전으로 보이면서 '그래 만약 초능력과 추리가 엇갈린다면 마음껏 비웃어주마'하는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표제작이자 첫 작품인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는 말 그대로 뜬금없이 당신은 살해당한다면서 다가온 케이시와 그에 휘말려 하룻밤 동안 짧은 모험을 하는 아가씨의 이야기다. 일단 기본 설정은 황당하지만 그 설정 위에서 숨가쁘게 움직이며 비교적 짧은 분량에서도 수수께끼가 중첩되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무리는 추리소설 3편만 읽은 사람이 봐도 짐작 가능한 식상 그 자체의 결말. 뭔가 좀 기대를 걸어봤는데 그 기대가 무너진 느낌이랄까?

 

 이어지는 얘기들도 김새기는 마찬가지였다. '꿈을 잃지말고 노력하자'는 둥 '일상에서 행복을 찾자'는 둥 하는 별로 대단찮은 얘기들이 평이하게 펼쳐지는데 책을 별로 안 읽는 사람이나 좀더 어린 연령층에겐 그럭저럭 먹히는 얘기겠으나 나에겐 큰 감흥이 없더라고. 물론 일본소설이니만큼 쉽고 빠르게 읽히기는 하고, 이야기 자체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다만 <13계단>에서 보여준 치열함과 진지한 의식 때문에 내가 이 작가에게 기대한 바가 좀 컸었던지,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은 내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는 정도로 해두자.

 

 표제작과 이어지는 구조의 사실상 마지막 단편인 '3시간 후 나는 죽는다'는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야기다. 그간 다른 사람의 미래를 예견해온 케이시가 마침내 자기의 마지막 모습을 미리 보게 되고, '6시간'에서 케이시 덕에 목숨을 구한 미오가 이번에는 그를 구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인데,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결말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든 그걸 막아보려는 모습에서 과연 예정된 결말이 그대로 가는지 그 결말이 변하는지, 추리소설다운 '똥줄태우는 맛'이 제법 느껴지더라. 하지만 사건의 진상은 뭐랄까 조금 의외성에만 초점을 맞춰서 설득력이 조금 없었단 생각이 든다.

 

 또한 해피엔딩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게 결말이 나버리면 이제까지 예지능력을 착실히 발휘해 온 케이시는, 그리고 앞서의 모든 이야기들은 설득력을 잃어버리는거 아닌가?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싶은지는 알겠지만 설정 자체의 당위성을 제쳐두더라도 그 설정 위에서 움직이는 인물과 이야기들은 개연성과 설득력을 꼭 갖춰야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결말 부분은 영 불만이더라고.

 

 에필로그로 나오는 짧은 이야기인 '미래의 일기장'이 미래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잘 드러낸다고 보는데, 뭐 맞는 말이긴 하지만 굳이 이런 식으로 낯간지럽게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도 들고, 책을 덮고나니 '<13계단>의 작가'라기보다는 '그냥 일본소설가'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더라. 즉 <13계단>의 포스는 거의 안나오는 평작이란 얘기.

 

 나쁘게 얘기를 해놨지만 가볍게 킬링타임용으로 읽기엔 부족함 없는 소설이다. 또한 13계단의 팬이라하더라도 작가의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으니 한번 읽어봐도 괜찮을 듯 하다. 암튼 나는 뭐 좀 좋은 책 읽고 나면 후속작에도 너무 기대를 품어서 문제라니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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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로드
랍 기포드 지음, 신금옥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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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좋든 싫든 중국의 영향을 오랫동안 받아 왔고, 앞으로도 여러 분야에서 중국과 협력/경쟁해야할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의 오늘과 내일을 제대로 읽어 그에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은 중국에서 20여년간 기자생활을 한 저자가 중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상해에서 중앙아시아 국경에 이르기까지 무려 4800킬로미터가 넘는 312번 국도를 횡단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써내려간 기행에세이다. 흔히 이런 식의 책이 무조건적인 찬양이나 단편적인 정보들의 나열, 혹은 편협한 자기기준으로 타문화를 난도질하기 쉬운데비해 역시 저널리스트라서 그런지 나름 차분하고도 진지하며, 다채로우면서도 날카롭고 자기 주장을 펼치면서도 상대방의 대한 존중을 잃지 않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여행은 우선 눈부신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거대한 용, 그 경제대국 중국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상하이의 휘황찬란한 야경과 하늘을 찌를 듯한 스카이라인에서부터 시작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화려한 모습 이면에 이미 과도한 개발의 후유증이 차츰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노동집약적 공업의 한계나 도시빈민들의 문제도 빠짐없이 잘 다루고 있었다.

 

 이어 공업도시인 허페이의 환경오염이나 모두들 도시로 떠나버린 농촌에 남아있는 농부의 무력감과 분노, 공산당 일당독재체제의 모순 등 섣불리 얘기할 수 없었던(혹은 중국의 화려한 발전에 가려 미처 볼 수 없었던) 중국의 그늘진 모습이 여과없이 차례로 드러난다. 특히 허난성에서 어이없이 에이즈가 퍼져버린 이야기나 역대 중국역사를 바꾼 건 다름아닌 농민들의 분노였다는 분석에서는 확실히 중국이 지금 화려한 겉모습처럼 내부도 튼튼하진 않다는 저자의 생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또한 찬란한 전통문화를 갖고 있지만 굴욕적인 근대를 보내며, 또 공산혁명과 이어 닥쳐온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전통이 단절되어 배금주의와 이기주의, 부패와 요령이 판치는 일종의 도덕적 진공상태도 다양한 인물과 사례들을 통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경우는 다르지만 우리도 전통문화를 애써 부정하며 서구화에만 목매달고 있으면서 도덕/윤리의 개념이 상당히 약해진게 사실이니, 이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곱씹어볼만한 대목이라 생각한다.

 

 경제발전 이면의 이런저런 도시문제들, 커지는 빈부격차와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 농촌의 붕괴와 공산당독재의 부패 및 무능함, 전통의 상실과 이로 인한 도덕적 공백등 현대 중국이 안고 있는 여러문제들이 때론 직설적으로 때론 우회적으로 끝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중국을 비난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312번 국도에서 만난 다양한 유형의 중국인들 - 소비를 즐기는 상해의 멋쟁이 아가씨부터 피를 팔다가 에이즈에 걸려버린 농부, 중국의 정체성을 살리고자 노력하는 라디오 진행자, 핸드폰을 갖고 다니는 화산의 도교 수행자에 이르는- 의 생생한 모습들이 중국의 복잡성과 활기, 고통스런 상황과 그래도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기약까지 많은 것들을 잘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사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절대 한두가지 피상적인 측면에서만 이해될 수 없는 나라다. 그렇기엔 너무나 크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랜 중국 체류경험 뿐 아니라 중국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서도 비교적 왜곡없이 깊은 지식을 갖고 있어 이런 중국의 복잡함 속에서도 날카로운 통찰력과 비판정신을 발휘함과 동시에 중국인들에 대해서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희망의 여지를 두고 있다. 하지만 중국 역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유교와 황제독재체제에 대해서는 역시나 서양인이라 그런지 조금은 포괄적인 이해가 부족한 듯한 부분이 눈에 띈다. 유교와 황제독재가 물론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꼭 중국의 침체를 불렀고 지금도 중국의 내일을 붙잡는 악령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 입장에서, 저자의 이런 시각은 조금 아쉽더라고.

 

 시안에서 란저우에 이르는 1부의 여정은 불륜여행을 떠나는 택시기사를 끝으로 마무리되고 이제 본격적인 실크로드 기행, 중국이되 전통적인 중국문화권이라 할 수 없는 지역의 여행으로 넘어간다. 이 실크로드 부분에서도 앞서 나왔던 중국의 여러 문제들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여기에 하나 더하여 '소수민족의 정체성 위협'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에게도 동북공정으로 익숙한 중국정부의 문화적 식민주의와 자신들의 전통을 왜곡해서라도 당당하게 세우고 싶은 열망과 경제논리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소수민족의 현실이 맞물려 소수민족의 중국화와 그로 인한 전통의 상실이 앞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인물들의 생생한 육성으로 전달된다. 먹고살기 위해 중국어를 가르치는 위구르인과 아무렇지도 않게 낙태시술을 하고 다니는 '애국심에 가득 찬' 중년 부인의 모습에서 중국의 문제와 소수민족의 문제를 동시에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이부분에서도 '유럽보다 더 큰' 중국이 아직 한 나라로서 존재하는데 필수적이었던 '一 사상' 에 대해서는 저자의 이해가 조금 부족하단 생각도 들었다.

 

 결국 국경지대까지 흘러간 저자는 거기서 312번 국도 횡단을 마치며 상해로, 그리고 그의 조국 영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숱한 모순과 복잡함과 분노와 염려들을 뒤로 한채, 또한 중국의 미래에 대해서도 섣부른 판단을 유보한 채 말이다. 그가 서두에서 밝힌, 루쉰의 글에서 인용한 구절이 어쩌면 중국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가장 잘 나타냈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게 없었다.
하지만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다른 기행문에 비해 재미있고 편히 읽은 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국의 참모습을 성실하면서도 날카롭게 또한 다채롭게 담아낸 점과 중국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못내 놓지 않고 있는 점에서 중국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모두 일독을 권할만한 미덕을 남기고 있다. 비록 몇 군데에서 서양인 특유의 피상적 이해와 오만함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이 책의 미덕을 가릴 정도는 아니니 중국의 그늘진 모습까지 보면서 총체적으로 우리의 거대한 이웃을 이해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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