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 찐만두 씨 사계절 그림책
심보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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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심보영 작가의 <따끈따끈 찐만두씨>는 만두를 의인화한 그림책입니다.




찜통마을에 사는 찐만두씨가 주인공이지요.


찐만두씨가 외출하는 날, 단무지와 간장주스를 챙겼어요.


후끈후끈 기차를 타고 찜통마을을 떠납니다.

누구를 만나러 가는 걸까요?


눈 넘고 얼음 건너 도착한 곳은 작은 냉동집!

얼마전 냉동만두가 된 할머니댁이에요~~




할머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다음 날 아침,

찐만두씨가 냉동집을 나서는데,

"딱, 딱, 덜덜덜..."

이상한 소리가 나네요.


꽁꽁 언 떡이 내는 소리였어요.

찐만두씨가 "쉭쉭!" 뜨거운 김을 뿜어주면 떡들은 금방 말랑해지지요.

가래냐옹떡이 추위에 떨고 있는 다른 친구들도 녹여달라고 했어요.


연못에 정체모를 깜장봉지들을 직접 본 찐만두씨는 깜짝 놀랐지요.


찐만두씨는 꽁꽁연못을 따끈온천으로 바꿔주었답니다.

따끈따끈 찐만두씨는 냉동친구들과 재미있고 따뜻하게 보내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그림책은 찐만두씨의 외출이야기로 다른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고 사이좋게 지낸다는 스토리입니다. 자신과 전혀 다른 환경에 있는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나눠볼 수 있습니다. 그랬을 때 찐만두씨처럼 기분좋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도요.


이 책은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이 쓰여 읽는 재미를 살려주기 때문에 유아가 소리내어 읽도록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참, 깜장봉지 속엔 뭐가 들어 있을지 상상해보도록 도와주세요. 내용물을 알 수없는 깜장봉지들이 온천물에서 뜨끈하게 쉬고있는 모습이 귀엽게 그려져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그림이 귀엽고 표정이 살아있답니다.

만두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림책입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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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읽어드리겠습니다 - 유광수의 고전 살롱
유광수 지음 / 유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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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수 교수의 전작 <문제적 고전 살롱:가족 기담>을 재미있게 읽었다. 한국 고전 문학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가로 생각했는데 소설도 썼다고 해서 <싱글몰트 사나이>도 찾아 읽었다. 역시 이야기꾼이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월말 김어준이라는 팟캐스트 프로그램에서 유광수 교수의 목소리를 듣고 놀랐다. 텍스트로만 만났던 유교수는 점잖고 진중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 톤은 높았고 말의 속도도 빨랐다.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하는 내내 하이 텐션을 유지하며 속사포처럼 쏘아대는데 정신을 쏙 빼놓았다. 그래서 신간 <복을 읽어드리겠니다서평단을 모집한다기에 바로 신청했다


이번 책은 월말 김어준의 텍스트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입말체로 되어 있어 글을 읽고 있지만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나처럼 팟캐스트나 강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음성지원이 될 것이고 이 책으로 유교수를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도 푹 뺘져들에 읽게 될 것이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고전 문학을 어렵고 재미없게 배웠던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우리나라 옛이야기 속에 이런 숨은 뜻이 있었다니!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니! 하며 놀랄 것이다.


이번 책 <복을 읽어드리겠습니다>는 고전 문학 속 복()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늘 머피의 법칙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남들은 나보다 노력하지 않는 것 같은데 운이 따르는 것 같다. 그래서 배가 아프다!면 또 이 책을 추천한다. 내 추천 이유로는 설득이 안 된다면 아래 저자의 말을 보면 읽고 싶어질 것이다.


"고전은 인간의 이야기고 삶의 이야기다. 거기에는 인간의 바람이 담겨 있다.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바람,

복 받고 싶어하는 우리 마음,

모두가 담겨 있다.

돈이 많으면 세상살이가 편하다. 입도 편하고 몸도 편하다. 하지만 복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 입에 들어가는 산해진미가 모래처럼 깔끄럽다. 아무리 편한 잠자기도 가시가 돋힌 듯 한없이 불편하다. 복이 없으면 쓸데없는 바람에 붕 뜨기만 한다.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만 한다. 곧 사라질 헛된 바람에 아까운 시간을 날려버리고 삶도 행복도 떠나보낸다.

복을 알아야 잘 먹고 잘 살 텐데, 그걸 모른다.

복을 알아야 삶도 행복도 떠나지 않을 텐데, 그걸 도무지 모른다.

복을 일러드리겠다.

헛된 바람들로 가득 채운 가시나무에 아파하지 말고, 따스하고 포근한 공기가 된 바람에 미소 지으시라

복 받으시라

행복하시라."

 

이 책은 총 13개 장으로 구성했고 각 장을 으로 이름 붙였다. 극장에 입장하여 전기수의 이야기를 한 편씩 듣는 듯 했다. 복을 일러 준다고 했으니 복이 깃들게 하는 비법 같은 게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동안 알고 있던 옛 이야기의 교훈은 지극히 표면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것은 잘못 해석된 것을 배운 거였다.


혹부리 영감을 한 번 보자. 이 이야기의 교훈을 욕심을 너무 부리면 안 된다 로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나온 건진 모르겠으나 이런 속담도 있지 않은가.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여 왔다.” 그런데 저자는 이 이야기의 본질은 따로 있다고 한다. 혹부리 영감의 핵심은 진심을 담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혹부리 영감도 노래를 불렀고 욕심쟁이 영감도 노래를 불렀으나 결과는 달랐다.


왜 그랬을까? 유교수는 이렇게 해석한다. 혹부리 영감은 자신의 처지를 담은 노래를 진심으로 불렀다고. 그는 노래로 자신의 삶을 승화했으나 욕심쟁이 영감의 노래에는 진심과 마음이 담긴 게 아니라 전략과 기술만 있었을 뿐이라고. 저자는 이 이야기를 우리 인생과 연결한다. 세상에 완벽한 이는 없다. 누구에게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 부족한 것을 노래로 채우라고 한다.


p.118


모두가 만점이 되려 할 때, 모두가 완벽한 1이 되려 할 때, 그냥 부족한 대로 내 길을 걸어가도 된다. 조금 흐릿하게 조금 천천히 가도 된다.

0.8로 살아도 된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불편해졌어도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부족해도 0.8로 살면 웃을 수 있다. 부족한 0.2는 노래로 채우면 된다. 혹부리 영감이 그랬듯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자기만의 진짜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모자라면 노래를 불러라. 노래는 도깨비도 춤추게 한다. 금은보화? 그건 당신이 부른 노래에 비하면 먼지 같은 것이다. 부질없는 혹 같은 것이다.

인생은 모자람을 즐겁게 노래하는 놀이터다. 웃으며 노래하며 살면 그만이다. 도깨비들이 한껏 웃을 것이다. 즐거운 춤을 출 것이다. 도깨비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은 인생을 노래로 춤으로 승화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말이다.



띠지에 크게 적혀 있는 문장, 옹졸하면 귀신이 찾아온다!”는 옹고집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옹고집은 심술궂고 불효자식이라서 어떤 스님이 그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려고 지푸라기로 똑같은 옹고집을 만든!!게 아니었다. 옹졸해진 옹고집이 스스로 깨닫게 하려고 도플갱어를 만들었다. 옹고집에겐 필살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필살기?? 자기다운 핵심이 없었기에 자기가 없어도 집안이 잘 굴러간 거다.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남들과는 다른 당신의 필살기는 무엇인가?”


커피를 자주 사시는가?

남들보다 먼저 인사하시는가?

신발 정리를 하시는 것이 당신인가?

그도 아님 자주 웃기라도 하시는가?

남들이 떠올리는 당신은 어떤 모습인가?


위 질문을 읽으며 뜨끔했다. 이 책은 분명 고전을 재해석한 거라고 했는데... 복을 읽어준다고 했는데...

옹고집을 떠올리며 옹졸해지지 말고, 옹골차게 살며, 당신의 필살기를 갈고 닦으라고 했다. 고개 끄덕이다가 갸웃했다. 아니이것은 거의 자기계발서가 아닌가?


p.104


살다 보면 인생에 때가 묻는다. 먼지가 앉는다. 때론 아무 생각없이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그렇다고 옹졸해지면 나만 손해다. 옹고집이 되면 나만 억울하다. 내게 주어진 것이 꼭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굳이 내게 주어졌다면 내가 할 만한 거란 의미다. 난 그걸 하면 된다. 감사한 마음으로 묵묵히 하나씩 하나씩 당신만의 필살기를 보여주시라. 그리고 정말 때가 되면 모두 놓고 미소 지으며 떠나면 그만이다.

옹졸해지면 귀신이 찾아온다. 도플갱어가 찾아온다.

아쉽다고, 아깝다고, 남들이 몰라준다고, 마음이 다칠 일이 생겨도 옹졸해지면 안 된다. 당당하게 옹골차게 뚜벅뚜벅 당신의 길을 가시라. 당신의 필살기를 보여주시라.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


차복이와 석숭이이야기에서는 우리는 누구 덕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들려준다. 우리가 하는 큰 착각 중에 하나가 자기는 제 복으로만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복이 오롯이 내 능력과 노력으로 가진 것인가?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 내용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이야기하는 존 롤스의 공동선을 떠오르게 한다. 능력주의의 신화에 빠지지 말고 내가 이만큼 살아가는 것도 공동체 안 다른 이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것이다.


복을 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문장이 바로 주제어가 아닌가 싶다.


유교수는 이 책을 통해 고전 문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해주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허하게 살라는 조도 해준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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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부부 오늘은 또 어디 감수광 - 제주에서 찾은 행복
루씨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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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와 고양이와 화가, 그리고 요리사까지!

이보다 더 좋은 꿀조합은 없을 것 같다.

제주의 사계와 일상을 현대적인 민화로 그려낸 루씨쏜 작가의 책을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서 읽었다. 고양이 집사로서 고양이 소재 책은 뭐든 다 소장하고픈 욕구 뿜뿜이다. 똥손이라 그림은 못그려도 그림 보는 것 좋아라 한다. 이 책 <고양이 부부 오늘은 또 어디 감수광>엔 보고 싶은 것들이 다 들어있다.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해외 같은 제주는 언제라도 가고 싶은 곳이다. 여행지 1순위이지만 몇 년 사이 살고 싶은 곳도 1순위가 되어 제주도 땅값이 엄청나게 뛰었다나 뭐라나... 나 같은 일반인은 제주도 땅이든 집이든 살 능력은 전무하고, 한 달 살기 같은 경험도 언감생심이다. 내킬 때 여행이라도 훌쩍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하는 신세...


그러니 이런 책으로라 자위한다. 책을 받자마자 그림 먼저 감상했다. 첫 느낌은 우리 민화 안에 고양이가 등장하는 콜라보인가 싶었다. 그런데 파스텔 톤이라 전통 민화보다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모든 그림에 고양이가 있어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림만 봐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에세이니까, 서평단이니까 글도 읽어야지~~


작가는 호주 유학중에 결혼을 했고 국내로 돌아와 2015년, 제주에 자리 잡았다제주에서 남편은 식당을 열었고, 저자는 그림을 그렸고, 아이도 낳았다. 작가 가족의 일상과 아름다운 제주가 그림과 글로 완성되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나처럼 그림에 반했을 것이다. 또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제주생활을 간접 경험할 것이다.


p.99


외국에서 살겠다고 했을 때 그리고 제주에 살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우리를 말렸다. “거기 가서 뭐 하고 살려고 그래. 도시에서 빨리 자리를 잡고 살아. 그래야 성공해.”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성공과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은 달랐다. 물론 돈도 벌고 남들처럼 성공해서 편하게 살고도 싶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한 성공은 조금 느려도 삶에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균형을 맞추며 사는 삶이었다.



남들과 달라도 내가 정한 기준에 맞춘 삶을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작가 부부는 제주에서 자신들만의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오래 그려오며 삶과 예술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고 고백한다. 서핑에서 높은 파도를 유연하게 타듯 인생의 파도를 잘 넘겨야 한다. 작가는 덮쳐오는 파도보다 더 큰 것은 자신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p.234


인생도 서핑과 비슷하다. 기회라는 파도가 왔을 때 그것을 타려면 수없이 노력하고 단련해서 미리 힘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그것은 마음의 근력일 수도 있고 실력이 될 수도 있다. 하루하루 삶을 균형 있게 가꾸어야만 행복이란 파도에 올라탈 수 있다. 물론 다른 서퍼들이 파도를 탄다고 해서 꼭 따라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억지로 나섰다가는 다른 사람과 부딪치거나 파도에 쉽게 뒤집힌다. 나만의 박자가 필요하다. 내 스스로 충분히 준비가 되었을 때, 나에게 맞는 높이의 파도가 왔을 때 그 순간 멋지게 올라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과정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덮쳐오는 파도보다 내 안에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 한계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제주에서 행복을 찾았다는 작가, 제주를 아름답게 변주하는 예술가 루씨쏜을 응원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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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당신을 위한 예리한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민경수 옮김 / 지식여행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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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 년전 철학자의 충고가 오늘날에도 유효할까? 17세기와 21세기의 간극은 어마어마할 것 같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불변하는 진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 출간되었다. <순진한 당신을 위한 예리한 지혜>인데 스페인 철학자이자 신부인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격언 혹은 잠언집이다.


부제 ‘세상에서 현명하게 살아남는 185가지 방법’처럼 185꼭지를 4장의 주제로 구분해 구성했다. 각 장의 제목을 보고 자신에게 현재 필요하다 싶은 것을 먼저 읽어도 되고 목차의 소제목을 훑어보고 조언 받고 싶은 것 먼저 읽는 것도 괜찮다. 고비를 맞은 상황이거나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싶다면 그에 맞는 꼭지가 분명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이 성경을 읽듯, 불교인이 반야심경을 외듯, 비종교인들은 이 책의 잠언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려보면 어떨까? 이런 책은 한 번만 읽고 던져두는 것보다 매일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거나 필사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매일 하나씩 읽으면 6개월은 걸릴 것이다. 그렇게 규칙적으로 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생각날 때마다 혹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흔들릴 때 읽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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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들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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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앵커가 JTBC로 간다고 했을 때 내가 아는 한 진보신문 기자는 몹시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자신은 원래 종편을 보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손석희가 진행한다 해도 JTBC 뉴스는 보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다 드러나지 않았던 속사정을 상술한 손석희의 신간 <장면들>을 그 기자가 읽는다면 뭐라고 할까?



나는 ‘손석희의 시선집중’ 애청자였다. 그가 JTBC로 옮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 역시 실망했다. 기억을 톺아보니 손석희의 이적에 관한 내막을 잘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실망했다가 세월호 당시에는 JTBC뉴스만 보았던 것만 떠올랐다. 이 책을 읽으며 적잖이 놀랐다. 다른 독자들도 그랬을거라는 생각이다. 우린 정말 잘 잊는 인간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가 이 책에서 잡아낸 장면들이 속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4.16을 잊지 않겠다던 다짐도, 대통령을 파면시켰던 헌정 사상 최초의 사건도, 위력으로 부하직원을 성폭행한 도지사와 검사도 희미해져 버렸다. 우린 늘 먹고사니즘에 허덕이고, 한국의 정치상황은 너무나 다이나믹하기에 그렇다는 변명을 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저자가 지적한 대로 요즘은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며 자신이 보고 싶은 채널만 보면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독자라면 손석희가 비추는 장면을 따라 잠시 잊었던 사건들을 돌아보며 그 때 자신이 서있던 자리가 어디였는지 더듬어 볼 수 있을 듯하다.



나는 2014년 4월 16일 11시 쯤 헬스장 러닝 머신 위에서 기울어진 세월호를 보며 망연자실했고, 그 후로 저녁마다 팽목항에 나가있는 서복현 기자를 같이 불렀다. 2016년 겨울, 박근혜 OUT을 외치며 부산 서면 시내 한복판 차가운 도로에 앉아 있었다.

손석희가 만든 JTBC의 뉴스룸과 함께 지난 10여 년을 보낸 시청자라면 이젠 앵커석을 떠난 그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책 말미에 나오는 앵커브리핑 텍스트는 그의 목소리로 자동재생될 것이고 엔딩곡을 틀기까지 만든 장면들이 영화처럼 그려질 것이다. 나는 “노회찬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앵커브리핑을 읽으며 울컥하고 말았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룸을 하루도 안 빼놓고 보았다 해도 그의 앵커브리핑 947회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물론 나는 뉴스룸을 매일 시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주요한 앵커브리핑과 함케 장면들을 친절하게 전개해주어 읽기가 수월했다.

'포스트 트루스'시대에 관한 앵커브리핑에서 그는, 사람들에겐 이미 각자의 진실이 존재하는 유튜브가 있다고 표현했다. 이런 시대에 '기자다움'은 회의적이라고 평가하는 듯하다. 그러나 유재석이 신뢰받는 언론인 2위에 뽑힌 것에 대해 충분히 긍정하면서 그는 저널리즘의 폭을 넓게 보았다.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오늘의 일들을 기록해내고, 그것을 각자의 관점으로 담아낸 다음 공감을 얻어내는 것. 노래든 영화든 그림이든 '문화' 현상을 담아내는 것도 명백한 저널리즘의 영역이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진행해오던 '토요일에 만난 사람'은 뉴스룸에서 '문화초대석'으로 이어졌다. 문화계 인물들을 초대하고 뉴스룸 엔딩곡을 고르는 모든 활동이 왜 저널리즘이 아니냐는 반문으로 읽혔다.

그는 2부의 마지막 장 "저널리즘의 선한 설계를 위해"에서 알랭 드 보통과의 인터뷰,1997년 "커먼 커즈" 라는 미국 시민단체의 플로리다 지부장을 취재한 내용을 소개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저널리즘을 강조한다. 그 내용을 옮기며 리뷰를 마무리한다.

"저의 언론관은 매우 교과서적인 겁니다. 우리가 보통 일기를 쓴다고 할 때 영어로는 ‘다이어리’(diary)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런 말을 잘 안 씁니다. 대부분 ‘저널’(journal)을 쓴다고 하더군요. 언론은 일기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일기라는 게 늘 객관적이진 않습니다. 거기엔 자신의 생각도 포함됩니다. 언론은, 물론 언론사마다 다르겠지만, 각각의 일관되고 체계적인 관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널에 ‘이즘’을 붙여서 저널리즘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JTBC의 저널리즘은 이미 일관된 사고체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합리적 진보’라는 건 이미 고유돼 있지요. 저는 그것을 실천하는 데에 네가지 원칙을 제시한 바가 있습니다. 사실, 공정, 균형, 품위였습니다. 그리고 언론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부임 초에 제시하고 우리 뉴스의 모토로 삼은 바도 있습니다. 즉, 힘 있는 사람이 두려워하고, 힘없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뉴스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고요, 그 방법론도 제시한 바가 있습니다. 요즘도 자주 쓰는 ‘한걸음 더 들어가는’ 뉴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온론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 언론의 목적은 명확하게 두 가지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즉, 인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실천한다는 것. 그동안 우리가 행해왔던 많은 뉴스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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