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들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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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앵커가 JTBC로 간다고 했을 때 내가 아는 한 진보신문 기자는 몹시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자신은 원래 종편을 보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손석희가 진행한다 해도 JTBC 뉴스는 보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다 드러나지 않았던 속사정을 상술한 손석희의 신간 <장면들>을 그 기자가 읽는다면 뭐라고 할까?



나는 ‘손석희의 시선집중’ 애청자였다. 그가 JTBC로 옮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 역시 실망했다. 기억을 톺아보니 손석희의 이적에 관한 내막을 잘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실망했다가 세월호 당시에는 JTBC뉴스만 보았던 것만 떠올랐다. 이 책을 읽으며 적잖이 놀랐다. 다른 독자들도 그랬을거라는 생각이다. 우린 정말 잘 잊는 인간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가 이 책에서 잡아낸 장면들이 속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4.16을 잊지 않겠다던 다짐도, 대통령을 파면시켰던 헌정 사상 최초의 사건도, 위력으로 부하직원을 성폭행한 도지사와 검사도 희미해져 버렸다. 우린 늘 먹고사니즘에 허덕이고, 한국의 정치상황은 너무나 다이나믹하기에 그렇다는 변명을 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저자가 지적한 대로 요즘은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며 자신이 보고 싶은 채널만 보면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독자라면 손석희가 비추는 장면을 따라 잠시 잊었던 사건들을 돌아보며 그 때 자신이 서있던 자리가 어디였는지 더듬어 볼 수 있을 듯하다.



나는 2014년 4월 16일 11시 쯤 헬스장 러닝 머신 위에서 기울어진 세월호를 보며 망연자실했고, 그 후로 저녁마다 팽목항에 나가있는 서복현 기자를 같이 불렀다. 2016년 겨울, 박근혜 OUT을 외치며 부산 서면 시내 한복판 차가운 도로에 앉아 있었다.

손석희가 만든 JTBC의 뉴스룸과 함께 지난 10여 년을 보낸 시청자라면 이젠 앵커석을 떠난 그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책 말미에 나오는 앵커브리핑 텍스트는 그의 목소리로 자동재생될 것이고 엔딩곡을 틀기까지 만든 장면들이 영화처럼 그려질 것이다. 나는 “노회찬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앵커브리핑을 읽으며 울컥하고 말았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룸을 하루도 안 빼놓고 보았다 해도 그의 앵커브리핑 947회 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물론 나는 뉴스룸을 매일 시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주요한 앵커브리핑과 함케 장면들을 친절하게 전개해주어 읽기가 수월했다.

'포스트 트루스'시대에 관한 앵커브리핑에서 그는, 사람들에겐 이미 각자의 진실이 존재하는 유튜브가 있다고 표현했다. 이런 시대에 '기자다움'은 회의적이라고 평가하는 듯하다. 그러나 유재석이 신뢰받는 언론인 2위에 뽑힌 것에 대해 충분히 긍정하면서 그는 저널리즘의 폭을 넓게 보았다.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오늘의 일들을 기록해내고, 그것을 각자의 관점으로 담아낸 다음 공감을 얻어내는 것. 노래든 영화든 그림이든 '문화' 현상을 담아내는 것도 명백한 저널리즘의 영역이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진행해오던 '토요일에 만난 사람'은 뉴스룸에서 '문화초대석'으로 이어졌다. 문화계 인물들을 초대하고 뉴스룸 엔딩곡을 고르는 모든 활동이 왜 저널리즘이 아니냐는 반문으로 읽혔다.

그는 2부의 마지막 장 "저널리즘의 선한 설계를 위해"에서 알랭 드 보통과의 인터뷰,1997년 "커먼 커즈" 라는 미국 시민단체의 플로리다 지부장을 취재한 내용을 소개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저널리즘을 강조한다. 그 내용을 옮기며 리뷰를 마무리한다.

"저의 언론관은 매우 교과서적인 겁니다. 우리가 보통 일기를 쓴다고 할 때 영어로는 ‘다이어리’(diary)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런 말을 잘 안 씁니다. 대부분 ‘저널’(journal)을 쓴다고 하더군요. 언론은 일기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일기라는 게 늘 객관적이진 않습니다. 거기엔 자신의 생각도 포함됩니다. 언론은, 물론 언론사마다 다르겠지만, 각각의 일관되고 체계적인 관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널에 ‘이즘’을 붙여서 저널리즘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JTBC의 저널리즘은 이미 일관된 사고체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합리적 진보’라는 건 이미 고유돼 있지요. 저는 그것을 실천하는 데에 네가지 원칙을 제시한 바가 있습니다. 사실, 공정, 균형, 품위였습니다. 그리고 언론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부임 초에 제시하고 우리 뉴스의 모토로 삼은 바도 있습니다. 즉, 힘 있는 사람이 두려워하고, 힘없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뉴스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고요, 그 방법론도 제시한 바가 있습니다. 요즘도 자주 쓰는 ‘한걸음 더 들어가는’ 뉴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온론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 언론의 목적은 명확하게 두 가지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즉, 인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실천한다는 것. 그동안 우리가 행해왔던 많은 뉴스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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