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미쳐 있는 - 실비아 플라스에서 리베카 솔닛까지, 미국 여성 작가들과 페미니즘의 상상력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류경희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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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학-정치를 잇는 가장 중요한 지도”라는 출판사 책 소개 문구는 <여전히 미쳐있는>을 소개하는 가장 적확한 표현이다. 그 지도 위에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찾는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195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페미니즘과 정치, 글쓰기를 인물 위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인물들이 언급되었는데 나는 ‘실비아 플라스’와 ‘토니 모리슨’을 알게 됐다.


실비아 플라스는 1932년생인데 31세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가 7세 때 아버지가 사망했고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24세에 영국 시인 테드 휴즈와 결혼했는데 결혼생활은 힘들었다. 남편은 오랫동안 시인으로 활동했으나 아내 사후의 행동들은 자식들과 매스컴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녀의 짧았던 삶이 어떠했는지 궁금했고 그녀의 작품들을 직접 읽어보고 싶어졌다.


토니 모리슨은 1931년에 태어나 2019년에 사망했다. 1993년에 흑인 여성 미국인 중에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평생 소설과 아동문학 비평에 이르는 왕성한 활동을 했다. 1970년 데뷔작 <가장 푸른 눈>과 오프라 윈프리 주연으로 영화화된 소설 <빌러비드>를 읽어보고 싶다.


1장 20세기 중반의 성별 분화
p.73~74
신문의 구인 광고는 성별을 특정했고, 여성이 구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자리는 지위가 낮고 저임금에 서비스업이 많았다. 비서, 접수원, 전화 교환원, 판매원이 그 예다. 운이 조금 더 좋은 여성은 교사나 간호사 같은 '핑크 칼라' 직종에 종사했다. 금융기관에서도 독신, 이혼, 과부 여성은 금융 신용을 확보할 수없었다. 우리가 지금 '재생산 자유'라고 부르는 것은 존재하지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소위 주기 피임법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었지만 큰 효과는 볼 수 없는 방법인지라 적잖은 아기들이 태어났고, 뒷골목의 불법 낙태 시술로 적잖은 여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5장 가부장제에 저항하다

p.239

1970년대에 가장 폭넓게 읽힌 소설 중 하나는 미국의 전통적 여성성을 비판한 작품으로, 그 여성성의 모순은 우울증에 걸린 주인공/서술자를 광기로 (그리고 자살 시도로) 몰아간다. 실비아 플라스의 『벨자』는 원래 1963년 런던에서 빅토리아 루커스라는 필명으로 출간되었다. 저자가 자살하기 채 한 달도 안남은 시점이었다. 그녀가 죽고 난 후 그녀의 남편도 그녀의 어머니도 영국에서 그녀의 이름으로 이 작품이 발표되도록 허락하는 것을 주저했으며, 미국에서의 출간에 대해서는 한층 더 불안해했다. 이 소설은 마침내 1971년 미국에서 출간되면서 엇갈린 평가를 받거나 열혈 독자들을 감동시켰다. 이들 열혈 독자 다수는 이 작품의 플롯이 플라스 자신의 애틋한 개인사를 따르고 있고 그녀의 불길한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었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詩 - 그 시절에 



사람들은 말하리라, 그 시절에, 우리는 놓쳐버렸다고
우리와 당신들이라는 말의 의미를
우리는 우리 자신이 나라는 존재로 축소되었다는 걸 깨달았지
그리고 모든 것이 바보 같고, 아이러니하고, 끔찍하게 변했어
우리는 개인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어
그래, 그랬어, 그게 유일한 삶이었지
우리가 증언할 수 있던 삶

하지만 역사의 거대한 검은 새들은 날카롭게 울며 곤두박질쳤어
우리 개개인의 날씨 속으로
그 새들은 어딘가 다른 곳으로 머리를 향했지만 부리와 날개 끝은 돌진했어
해안가를 따라, 안개 조각구름들을 뚫고
우리가 나라고 말하면서, 서 있는 그 곳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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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에게
최현우 지음, 이윤희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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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던 어느날 지하주차장 버려진 박스 속에서 발견한 강아지 한마리소년은 그냥 나왔지만 강아지가 소년을 따라왔습니다.

강아지가 소년을 선택한 것이지요...

 


소년은 강아지를 품에 안아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강아지는 코코가 되었습니다. 마치 그 이름에 꼭 맞는 강아지가 올 것이 정해져 있었던 듯이요.

 



이제 소년과 강아지는 모든 일상을 함께 합니다.

동네 구석구석의 냄새를 맞으며,

온 동네 사람들에게 코코라 불리며,

그렇게 그렇게 코코와 소년은 자랐고, 사랑했고, 행복했습니다.

너 없인 아무 것도 아닌듯이요.

 

 



소년이 살던 동네는 재개발에 들어가고,

이제 정든 이 동네를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코코가 킁킁거리며 주워온 병뚜껑까지 챙깁니다.

 

"다 잘 챙겼지? 가자!"

 


이삿짐 차는 출발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코코가 집으로 다시 뛰어들어갑니다.

코코가 챙겨나온 건 무엇이었을까요?​​

 



뒷 면지 두 페이지에는 코코에게 쓴 편지 같기도 시 같기도 한 이 그림책의 텍스트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림의 따스함을 만끽하고 이 텍스트를 시처럼 가만가만 소리내어 읽어보았습니다. 마지막에 코코가 입에 물고 온 것을 표현한 부분에선 가슴 먹먹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작은 영혼이 내게 심장을 포개어 주려고 달려오는 모습을 보며 어찌 가슴 벅차지 않을까요?

 


많은 독자들은 이 그림책 장면장면 마다 제 강아지와의 시간이 겹쳐져서 그저 행복한 눈이 될 겁니다. 만약 무지개 다릴 건너갔다면 눈물 훔칠지도 모르겠고요. 저처럼 개와 함께 산책하고 싶은 이들은 마냥 미소짓게 되겠지요. 더없이 따스하고 예쁜 책입니다.

 

이 책의 제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늘 궁금해 

너는 나를 뭐라고 부르는지 

네가 골라 준 나의 진짜 이름은

 


흔히 불리는, 아주 쉬운, 킁킁거리기 좋아하는 강아지에게 맞춤한 이름으로, 소년은 코코라 불렀습니다. 소년은 궁금했지요. 코코는 나를 뭐라고 부를까?

 

아마도 코코는 자신이 가장 많이 들었던 말, 바로 그 이름으로 소년을 불렀을 겁니다. 소년도 바랐을 겁니다. 어쩌면 이렇게 말했을지도요...

 

"CALL ME BY YOUR NAME!"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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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윤정은 지음 / 북로망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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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금잔화라 불리는 메리골드의 꽃말은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다. 어쩌면 제목이 다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꽃말을 아는 독자가 많지 않을 것이니 세탁소의 이름이 왜 메리골드일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메리골드라는 동네에 마음세탁소를 개업한 소녀, 아니 백만번 다시 태어난 소녀 지은이 사람들 마음의 얼룩을 제거해 주는 이야기다. 사노 요코의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연상케했다. 이 세탁소에 오는 인물들은 요즘 젊은이들의 어려움을 표방한다고 할 수 있다. 젊은 독자층을 위한 설정으로 보인다. 대학 시절 신인 영화상을 받은 후 새 작품을 하나도 만들지 못하고 있는 재하, 연인의 배신으로 힘든 연희, 인플루언서지만 가족들 때문에 괴로운 은별 등등.


나이든 여성 독자를 위한 인물도 있다. 재하의 모친 연자인데 역시 나는 그녀에게 가장 마음이 쓰였다. 연자가 유부남에게 속아 임신을 하게 된 이야기는 전반부에서 소개되었고, 후반부에 마음세탁소에서 따뜻한 위로 차를 마시며 지우고 싶은 마음의 얼룩을 지은에게 이야기한다. 얼룩은 하나만 지울 수 있다고 어떤 얼룩을 지우겠냐고 지은이 연자에게 물었다. 이에 연자는, 자신의 아픔이나 불행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알겠다고, 모두가 다 아픔을 가지고 살더라고, 불행하다 느꼈던 상처를 지우고 싶던 때도 있었지만 이젠 그 불행을 지우고 싶지 않다고. 대신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인생 싫어하지 않아요. 전엔 나마저 내 인생 싫어하면 너무 안쓰러워. 좋아하려 애썼는데, 이젠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좋아졌어요. 좋다고 생각해보면 내 인생이 너무 예뻐 보여요. 그래도 아들이 엄마 위해서 선물 주고 싶다니까 받을게요. 지우지는 않을 건데, 떠올릴 때 덜 아프게 주름만 조금 다려주세요.”


지은은 다린 옷을 돌려주며 다시 주름이 생길 거라 말했고, 연자는 주름도 이쁜 것도 모두 자신의 삶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살아 있는 한 모든 얼룩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좋은 생각만 하기에도 인생이 짧음을 안다는 연자의 생각은 흔하디흔한 표현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절감하는 말이기도 하다.


책의 마지막, 지은이 버스를 타보고 해인과 나누는 말은 내가 생각한 인생이 숙제의 연속이라는 것과 비슷했다.


사는 일이 때론 매번 산을 넘는 거 같잖아요. 이 산만 넘으면 편안해질 것 같은데 다시 산을 만나게 되잖아요.”


넘어야 하는 산, 풀어야 하는 숙제들은 한 인간이 죽기 전까지 계속 된다. 그것의 결과로 남은 얼룩이 고울 리 만은 없다. 허나 그 얼룩과 주름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의 무늬가 되고 그 결들이 쌓이면 우리가 부르는 인문이 되는 것이다. 리뷰를 쓰면서 이렇게 내 생각이 정리된 것이 나에겐 글쓰기에 도움이 된 책이었다.



**위 리뷰는 전승환 작가의 인스타그램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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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죽이거나 - 나의 세렝게티
허철웅 지음 / 가디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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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는 당신은 아재!”라고 놀려도 어쩔 수 없다. 감성도 나이도 벌써부터 아저씨 반열에 올랐으니까. 극구 부인해봤자 강조하는 꼴이 될 터이니 빠른 인정이 답이다. 약육강식의 처절한 현장을 보고 있는 가장의 뒷모습은 이제는 퇴물이 되어버린 수사자의 추레한 갈기와 비슷하다는 연민어린 표현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들은 꾸며낸 드라마보다 동물 다큐에 진정 공감한다고도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동물 다큐를 즐겨봤다. 동물들의 피 튀기는 생존이 자극적이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실은 다른 궁금증이 있었다. 지엽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서 그랬는지 다큐를 보면서 항상 궁금했다. ‘어떻게 저렇게 가까이서 찍을 수 있지?’ ‘동물들은 배우가 아닌데 어쩜 저렇게 생생하게 연기하는 것 같지?’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서 그런 의문들은 하나씩 해결되었고 관심은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동물들의 독특한 생존 방식이나 의사 소통법, 인간과 동물의 관계 등등.


허철웅의 소설 <죽거나 죽이거나:나의 세렝게티>는 제목과 표지에서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이 연상시킨다. 기존에 불후의 명작으로 불리는 작품이 있는데 비슷한 느낌의 소설을 내다니 대단한 자신감이구나 싶었다. 출판사의 책 소개를 보니 작가가 27년간 매달린 끝에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특이한 작가의 이력이 소설 속에 녹아들었을 것 같아 기대되었다. 우려가 없는 건 아니었다. 생생한 동영상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아기 사자가 늠름하게 자라 아빠의 뒤를 잇는다는 애니메이션 줄거리는 충분히 감동적이다. 리얼 생존기나 아기 사자의 귀욤미, 거기에 귀에 익은 뮤지컬 넘버까지, 과연 넘어설 수 있을까? 작가와 아무 관계가 아님에도 걱정이 슬몃 고개를 들었다.


먼저 읽어본 사람으로서 이 책을 추천하겠다. 어떤 다큐보다 생생하고 박진감 있다. 책장을 펼치면 단숨에 탄자니아 평원 어딘가로 데려갈 것이다. 세렝게티 초원의 내음이 코끝을 스칠 것이고, 킬리만자로 산을 헉헉거리며 오르고 있을 것이다. 1인칭 서술자인 어린 사자에게 스르르 감정이입하게 된다. 용맹한 아버지의 사냥법을 배우는 한편 그들의 죽음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만 한다. 물소와 하이에나의 숨통을 끊어야 내가 살 수 있고 가족을 지킬 수 있다.


p.164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머리를 흔들고 나서 나는 먹는 일에 집중했다. 녀석의 부드러운 뱃가죽을 물어 당기자 힘없이 뱃구레가 터지며 주르륵, 창자가 흘러나왔다. 나는 주둥이를 깊숙이 들이밀어 부드러운 간을 뜯어냈다. 입안 가득 진득한 핏물이 차오르며 그동안의 갈증을 순식간에 풀어주었다. 이 맛, 내가 살아있음을 각성시키는 이 환장할 맛이야말로 현실인 것이다. 먹잇감을 살피고, 그것들이 우는 소리와 바스락거리는 움직임을 듣고, 바람에 실려오는 생명의 냄새를 맡고, 발톱과 이빨로 목숨을 취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존재하는 모든 증거이다. 이것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먹는 행위의 적나라함, 부모와 자연 안에서 살아있다는 벅차오름, 죽음을 기껍게 받아들이는 눈망울은 생과 사를 온전히 몸으로 행하는 것이다. 세렝게티의 사자나 물소와 우리 인간이 그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가. 삶과 죽음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스마트폰 속에서만 소통하며 멀티버스와 증강현실의 시대에 내 몸과 내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이 소설을 그저 활자로 만나는 동물 다큐라는 범주 안에 가두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들이 온몸으로 묻는다. 당신들은 몸과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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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토슈즈를 신은 이유 - 미국 최고 발레단 ABT 최초의 흑인 수석 무용수 이야기
미스티 코플랜드 지음, 이현숙 옮김 / 동글디자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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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최초로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수석 무용수가 된 ‘미스티 코플랜드’의 자서전 <내가 토슈즈를 신은 이유>를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 읽었다. 그녀는 나풀거리는 흰 튀튀만큼이나 새하얀 피부의 발레리나가 날아오르는 게 당연한 「백조의 호수」의 주인공이 되었다.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하나씩 다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감히 예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읽어보고 싶었다. 발레를 좋아하기에 더 궁금했다.


그런데, 읽기 쉽지 않았다. 나는 이런 내용일 거라 예상했다.

‘발레가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그 우아한 몸짓과 손끝과 발끝의 움직임은 죽을 만큼 연습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백조의 호수나 지젤 같은 유명 발레의 장면들을 설명하며 이렇게 이렇게 춤춘다...’


내 예상은 빗나갔다. 예상과 달라서 잘 안 읽혔나? 맞다! 언제쯤 내가 상상하는 발레공연의 한 장면이 나올까 목 빠져라 기다렸지만 기대는 여실히 무너졌고 점점 읽기 힘들어졌다.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미스티 엄마의 행동 때문에 책을 덮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만약 서평단이 아니었다면 완독은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ABT의 수석무용수가 되는 과정의 그 어려움에 비할까만은, 노오력해서 끝까지 읽어냈다.


앞서 내 예상과 달라서 읽기 힘들었다는 이유 외에 다른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문화와 번역때문이었다. 먼저 문화적 차이를 이해한다는 말은 정말이지 말로 할 때만 쉽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이 책의 절반 이상은 미스티의 엄마에 대한 내용이다. 인간이란 존재에게 엄마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미스티에게는 어마무시했다. 그녀의 엄마는 여러 번의 동거와 결혼으로 씨다른 아이들을 낳았고, 한 곳에 정착하는 기간이 짧아서 늘 아이들을 데리고 싸구려 호텔을 전전했다. 그 와중에 미스티가 후원자의 도움으로 발레를 배울 수 있게 되었고 후원자의 집에서 지낼 수 있었지만 엄마는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엄마라면 딸이 안정적이고 건강한 환경에서 발레를 배우도록 할텐데 이 엄마는 대체 뭐지? 읽는 내내 화나고 불편했다.


이 책은 어려운 내용이 없다. 미스티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회고하는 내용으로 기록했으며 특별히 전문적인 용어도 남발하지 않았다. 절반정도 읽었을 때 깨달았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을. 작년 영문 번역관련 서적에서, 의역이 지나치면 원문의 의미를 변형시킬 수 있으므로 차라리 직역하라는 내용을 읽었다. 이 책에서는 직역인 것처럼 보이는 문장들이 많았는데 조금 더 매끄럽게 다듬을 수 있었을텐데 굳이 이렇게 번역했을까 싶은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예컨대 이런 문장들이 가독성을 떨어뜨렸다.


“그건 마치 발레가 끊임없이 사람들의 삶에 유의미한 존재로 남기 위해 생존을 모색하는 가운데에서도 변화를 두려워하는 배타적인 비밀사회인 듯 느끼게 한다.”

“내 목표는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 발레를 접할 기회가 없거나, 혹은 감상할 수 없을 관객들과 그것을 공유하는 것이다.”


술술 읽히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전문 대필작가의 손길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투박한 날 것 그대로의 그녀 생각과 삶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린 시절부터 ABT수석무용수가 되기까지 순서대로 이어지지만 엄마 때문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때가 너무 길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발레를 놓지 않은 것이 더욱 강조되었다. 그녀도 말했다시피 허름한 길가 호텔방을 전전하던 씨다른 형제들이 모두 자기 자리에서 멋지게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놀랍다. 어떻게 저런 환경에서 다들 멋지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당연히 그렇지 못할거라고, 마약이나 범죄에 찌들린 삶을 살거라는 예상도 편견이었다. 그런 내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미스티 코플랜드는 타고난 천재였다. 그리 큰 노력 없이도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하고 싶은 자세는 뭐든 마음대로 되었다. 그런 그녀가 열세살에 발레를 시작했다고 해서 구애될 게 없었다. 보통 1년은 지나야 ‘앙 뿌엥뜨(토슈즈를 신고 발끝으로 서는 동작)’를 할 수 있는데 미스티는 발레 시작한지 몇 달만에 해냈다. 그녀의 몸은 발레에 최적화된 상태로 태어났지만 환경은 정반대였다. 그나마 후원자와 ABT후원 프로그램 덕분에 빛을 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흑인이라는 차별조건, 뒤늦게 찾아온 신체 변화, 끊임없이 이어지는 부상은 발레를 그만둘 조건으로 충분했다.


미스티 코플랜드는 말한다.


"나는 발레 기술을 결코 완벽하게 해낼 수 없으리라는 걸 안다(언제까지나). 그 사실이 내가 발레를 좋아하는 이유다."




저토록 완벽한 몸매로 이를 데 없이 아름다운 자태를 뿜어내면서도 완벽하지 않단다. 저 말은 겸손이라기 보다는 매일매일 자신을 다듬는 행위,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표현 같다.





**위 리뷰는 컬처블룸 서평단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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