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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명은 비밀입니다 ㅣ 창비청소년문학 129
전수경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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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앞에 가까이 다가가면, “그러다가 텔레비전 안에 들어가겠다.”라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 많을 것이다. 이 말이 실제로 이루어질리 없겠지만! 전수경 작가의 소설 <채널명은 비밀입니다>에서는 실현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집에서 TV만 보는 은둔형 외톨이인데 진짜 텔레비전 속으로 들어간다. 무기력하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 같던 사람이 취직이 된 것이다. 미래 전자의 모니터링 사원으로, 멀티버스 터미널(TV)를 통과해 다중우주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채널을 찾는 일을 한다. 채널을 찾는 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 그 연결점을 찾아 교류하며 서로의 세계를 확장하는 게 미래전자가 멀티버스 터미널 텔레비전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 일에 만족감을 넘어 다중우주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그녀의 이름은 제갈미영.
엄마는 연약한 사람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다. 지긋지긋한 엄마라 해도 지켜야 했다. 이 세계에서 엄마를 구할 사람은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 p.70
엄마는 나에게 뭔가를 더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빼앗아 가는 사람이었다. 밖으로 뻗어 가려는 나를 안으로 끌어당기는 존재였고 끊임없이 발목을 잡고 침잠시키는 늪이었다. - p.140
위의 엄마가 바로 고등학생 제갈희진의 엄마 제갈미영씨다. 청소년 소설인데 엄마가 주인공? 끊임없이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증명해야 했기에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희진이가 주인공이 맞지만, 엄마 미영도 주인공이다. 도입부에서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고 하루 종일 TV만 보는 엄마를 챙겨야 하는 희진의 고충이 그려진다. TV(다중우주)를 들락거리는 엄마가 사고를 쳐서 희진이 또 그 뒤치다꺼리까지 도맡아야 하는 게 아닐까 살짝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미영은 모니터링 사원으로 일하면서 입체적 인물로 변모한다.
이 소설은 다중우주와 도플갱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SF적 분위기를 띠지만 엄마와 딸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드라마다. 우리는 자기 눈에 보이는 상대의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여긴다. 소설 속 다중우주라는 장치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어쩌면 보지 않으려 했던 상대의 다른 면면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던 엄마가 다른 세상에서 일하고 사랑하는 모습이 희진에겐 너무나 낯설어서 두려웠다. 그래서 그만 두라 하고 급기야 자신인지 그곳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보통은 부모가 자녀의 변화와 성장에 놀라고, 자식이 어떤(직업이든 배우자든) 선택을 할 때 반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은 정 반대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 대목에서 학부모 독자는 뜨끔할 것이고, 학생들은 공감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희진이 전교 1등이라 거리감은 있겠지만... 그리고 희진이 친구들을 조금씩 이해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우정을 쌓는 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딸이 엄마를 걱정하고 원망하면서 시작하기 때문에 내용이 어두울까봐 우려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작가가 구축한 세계 속에서 독자도 자신의 다른 모습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또 작가는 마음의 눈을 키워보라고 권한다. 자신의 고통이 가장 크기 때문에 상대의 미세한 고통은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고...
TV중독만큼이나 요즘은 스마트폰 중독인 사람이 많다. 현실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기 보다 SNS 속 세상에서 더 편하고 익숙함을 느낀다. 점점 허구의 세상과 실제의 구분이 불분명해진다. 사람과 대면하는 것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외톨이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스마트폰세상 속에 계속 있으면 외톨이가 아니라고 착각하게 된다. 작가는 TV가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통로라는 판타지를 보여주며 주인공을 변화시켰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어떤 판타지를 만들 수 있을까. 이미 즐기고 있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판타지 보다 종속되고 싶지 않아 거리를 두려는 사람도 있다. 주인공처럼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