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아이 라이트
케이시 / 플랜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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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시 작가는 소설 <네 번의 노크>로 처음 만났고 인상깊었다. 이번에 신간 에세이 <아이 라이트>가 나와서 서평단에 당첨되었고, 이북으로 제공받아 읽었다. 제목이 아이 라이트? 무슨 뜻일까? 요리조리 짐작해봤지만 내 짧은 추리력보다는 빨리 페이지를 넘기는 게 빠를 것 같았다. 제목의 의미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알 수 있었다. “i Lite”에 대한 설명을 확인하니 작가의 스타일에 한발짝 다가선 기분이었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마음을 활짝 열고 읽는 편이다. 작가가 구축해놓은 가상의 세계로 기꺼이 빠져들고 싶어서다. 특히 미스터리 소설일 경우, 밀도 높게 얽어놓은 서사의 빈틈을 찾고 싶어 집중하게 된다. 작가의 데뷔작 <네 번의 노크>는 끝까지 쫀쫀함을 유지했고 반전에 허를 찔렸으며 종내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런 작가의 에세이는 어떨지 기대가 되었다. 소설가들이 쓴 에세이에 자신을 전부 드러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그러할 것이라 믿고 읽게 된다.

소설에서의 문체와 에세이의 그것이 일치할 수 없음에도 나는, 나도 모르게 이번 에세이를 읽으며 <네 번의 노크>의 느낌을 찾으려했다. 초반부가 지나자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제야 작가의 일상과 생각을 천천히 따라 걷게 되었다. 나는 에세이를 읽을 때 소설만큼 몰입이 안 되고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기 쉽지 않았다. 에세이는 남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라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그러다 내 생각과 비슷한 지점을 만나면 괜히 반갑고, 좋은 문장을 찾으면 월척의 손맛, 아니 눈맛을 느낄 때도 있다.

작가는 천천히 걷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서점에서, 길에서, 무심코 스쳐지나는 것들을 천천히, 유심히 살피고 생각한다. 그 생각의 편린들을 읽으며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는구나, 나는 어땠던가?’하며 내 생각과 비교해보았다.

초연결 시대일수록 상처는 더 예리해진 것만 같다. 검으로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 같다.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비난을 초과해 죽음 가까이 내몰다 벼랑에 닿은 사람을 다 같이 힘껏 민다. 끝내 바닥에 떨어진 사람을 보고 약속이나 한 듯 일시 음 소거 후 뒤돌아 잊는다. 그리고 스스로 면죄부를 준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꼭지에 쓰인 위 대목을 읽으며 최근 한 축구선수를 향한 과한 비난을 떠올렸다. 몇 년 전 조국사태 때도 그랬지만 대중은 미디어에서 쏟아낸 정보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울분을 쏟아낸다. 팩트체크 해볼 의사는 없어 보인다. 그저 누군가를 두드리는 맛에 심취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 또 다른 먹잇감이 던져지면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위 내용처럼 짓밟은 대상을 확인하면 돌아서서 잊어버리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다. 맞을 짓을 했으니 맞을 만 했다고... 여럿이 모여 남을 뒷담화하는 게 수다의 맛이라는데 요즘은 만날 필요도 없다. SNS 상에서 떠드는 건 시간, 장소 구애없이 혼자서도 가능하다. SNS가 배설통이 되어버렸다.

아, 이번 에세이를 읽다 작가에 대해 알게 된 게 있다. <네 번의 노크> 속 주요 등장인물들이 여자라서 그랬을까? 필명 때문이었을까? 난 작가가 여성이라고 철썩 같이 믿었다. 그런데 아내, 할아버지가 되겠다는 말이 나와 놀랐다. 참으로 저 보고 싶은 대로만 봤다. 그러고보니 케이시 에플렉, 남잔데...

나이들어서도 아이들에게 성공담 보다 실패담을 생생히 들려줄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무엇보다 성공담은 좀 재수 없다. 자기 자랑은 영 듣기 거북한 측면이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남의 망한 이야기가 제일 재밌다. 난 실패담을 웃으며 얘기할 때 인생의 참맛을 느낀다.

나도 망한 이야기를 재미지게 들려줄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하고 실패도 해봐야 할텐데 맨날 똑같은 일상을 살고 있으니 가능할까... 나이 들어도 도전하라는 책은 읽으면서 실제로는 하지 못하고 있다. 과감하게 도전해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아, 나도 저렇게 해보려고 했는데!’ 라며 시도하지 못한 이유들을 떠올리다 후회하는 수순을 밟는다.

생각만 하고 시작하지 못한 것 중 하나는 첼로다. 어릴 땐 피아노를 쳤고, 20여년 전엔 색소폰을 배운 적이 있는데 현악기를 켠다면 첼로의 활을 잡고 싶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본 후 더 마음이 동했었다. 영화 초반부, 주인공 스필만이 은신하고 있던 집에서 첼로를 켜는 여성의 옆모습을 훔쳐본다. 음악이 삶의 전부인 피아니스트가 첼로 소리에 이끌려 열려진 문틈 사이로 다가간다. 첼로 소리를 듣고 있던 그 모습은 독일 장교 앞에서 쇼팽 발라드 1번을 연주하던 장면만큼이나 내겐 절절하게 다가왔다. 나도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를 연주하고 싶다. 무식자 귀에 그 곡이 연주하기 제일 쉬울 것 같은 건 너무 많이 들어서겠지?

‘천천히 걸으면 어디든 미술관’ 책 제목으로 잡아도 좋을 법한 이 꼭지에서 그려지는 장면장면의 색감은 세피아였다. 줄이 죽죽 그어진 옛날 영화 필름 같기도 했다. 작가의 산책길을 따라 나서기도 하고, 어떤 책의 귀퉁이를 접었는지 작가의 손에서 뺏아보기도 하고, 커피를 한잔씩 두고 마주앉은 카페에서 그의 낙서를 흘깃흘깃 훔쳐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은 내게 하는 말 같았다.

도구가 있는데도 즐거움을 창작하지 않는 건 직무 유기다. 읽었다면 이제 쓸 차레다. 재채기처럼 참을 수 없는 창작의 욕구를 뱉어내야 한다. 재채기를 억지로 삼키려고 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얼굴을 보게 된다. 어차피 할 기침이라면 해버리는 게 속 시원하다.

압! 나 지금 가장 못생긴 얼굴로 살아가고 있...

작가는 라이트한 버전으로 살아보겠다고 하면서 이 책을 마쳤다. 이 ‘라이트’는 빛도 된다. 에필로그에서는 소문자 I의 의미와 모양을 가지고 요모조모 뜯어본다. 줄 위의 공이라는 생각은 참말이지 기발하다. 그것을 Looking for lost love로 연결한 것 역시! 이게 뭔 소린가? 싶은 사람은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에필로그 전체를 옮길 수 없고, 에필로그만 읽는 것 보다는 책 전체를 읽어야 더 잘 공감하게 될 것이므로.

**위 리뷰는 이북으로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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