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지 스마일 서해문집 청소년문학 22
박경희 지음 / 서해문집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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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선생 하면 우리는 독립운동가로 떠올린다. 그리고? 하면 아마 더 이상 생각나는 게 없을 것이다. 신민회, 상해 임시정부, 흥사단, 대성학교까지 연결고리가 걸리는 사람이라면 학교 때 역사 공부 열심히 한 기억력 좋은 사람일 것이다. 이처럼 안다고 말하는 역사 속 인물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게 거의 없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딸 안수산, 미국 해군 최초의 여성 포격술 장교로 복무!”


라는 한 줄의 신문기사를 본 박경희 작가는 안수산과 안창호 선생 일가에 대한 책을 썼다.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을 치밀하게 얽어낸 <언제든지 스마일>이 그 책이다. 작가는 그 기사를 만나고 나서 안창호 선생과 그 가족에 대한 자료를 꼼꼼하게 수집했고 몇 년만에 결과물이 탄생했다. 책에는 안창호 선생의 딸 안수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선생 가족의 삶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은 안창호 선생의 삶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안창호, 이혜련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유학생 부부였다. 그들은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던 계획보다는 백척간두의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안창호 선생은 4년 만에 귀국해 신민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했고, 아내 이혜련은 미국에서 자식을 키우며 흥사단 조직원들의 대모역할을 한다. 자녀는 32녀를 두었는데 이 책에서는 셋째이자 장녀인 안수산의 눈으로 부모의 활동을 쫓는다.


열한 살 안수산에게 아버지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존재다. 어쩌다 한 번씩 집으로 와도 잠시 머물다 떠나버리기 때문이다. 반면 어머니는 늘 고생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어머니는 혼자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으며 흥사단이나 한인회 사람들을 위해 언제든 한 끼를 거하게 차려내었다. 다행이 가장의 빈자리를 장남 필립이 든든하게 지키고 있었다.


책의 처음은 안창호 선생이 상해에서 돌아와 잔치 분위기다. 수산은 사람들이 몰려와 북적대는 바람에 아버지와 시간을 가지지 못해 아쉽기 그지없다. 나만의 아버지이길 바랐으나 만인의 지도자였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수산에게 대한민국의 독립은 그리 간절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축제에서 코리아를 소개하는 행사를 도맡아 진행하면서 자아정체성에 눈을 뜨게 된다. 아버지를 한국의 간디로 소개하며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고 당차게 연설한다. 그리고 친구 소피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p.105


실은 난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불만이 많았어. 가족의 안위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위선이라 생각했고,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대한민국의 독립이 뭐 그리 큰 문젠가, 싶었지. 내가 놓친 야구공을 풀밭에서 찾는 것쯤으로 쉽게 생각했던 거야. 그러나 아버지가 감옥에 갇히면서 내 생각이 바뀌었어.



수산은 부모님이 주고받은 편지를 읽고 당신들의 삶을 이해하며 조국애의 싹을 틔웠다. 아버지가 늘 강조하던 훌륭한 미국인이 되어라. 그러나 한국인의 정신을 잊지마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겼다. 남편과 아버지의 부재가 길어져도 가족들은 더 똘똘 뭉쳐 그들의 울타리를 공고히 지켜냈다. 그러나 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된 아버지의 건강악화 소식을 듣고 어머니, 형제들과 면회를 가려고 했지만 좌절되고, 끝내 안창호 선생은 1938년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 후로 수산은 아버지의 연설문집과 신문에 연재된 글을 찾아 읽다보니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어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 될 공부를 아니하는가?



아버지의 말씀에 귀가 번쩍 트인 수산은 아버지가 말하는 그런 인물이 되어야겠다고, 아버지 대신 일본군과 싸우겠다고 다짐하고 미 해군 부대 장교 훈련 프로그램에 지원한다. 두 번 만에 합격했는데 동양인 여성으로는 최초였다. 그 후로도 수산은 최초의 기록을 여럿 이룬다.


드디어 독립이 된 그 날, 수산은 아버지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썼다.


아버지가 못다 간 길을 따르겠다고 군에 입대한 저 자신이 오늘은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군인으로 살면서, 저는 아버지를 더욱 존경하며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라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아버지가 제게 말씀하신 자랑스러운 미국인으로 살되,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을 잊지 말라는 말씀 잊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또 한 가지 버드나무 정신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버드나무의 유연함을 늘 배우려 애썼습니다. 아버지가 심은 버드나무는 사라졌지만, 아버지의 정신만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학생들은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식민은 역사시간에 배우는 옛날이야기쯤으로 여길 것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 그 가족들까지 희생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럴 수 있다고 답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일제강점기에도 그렇게 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도산 안창호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도 분명 있었다. 역사 시간에 독립운동가는 그저 이름으로만 만난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었고, 자신과 가족들의 안위보다는 조국 독립에 온 몸을 바쳤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박경희 작가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작은 조각 조각들을 모아 멋진 퀼트 작품을 완성해냈다. 읽는 이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가족이 함께 덮을 수 있는 따뜻한 이불로, 누군가는 웅장해지는 가슴 부여안고 슈퍼맨 망토처럼 휘리릭 두르고 뛰어나가고 싶게 만든다. 작가의 꼼꼼한 자료 수집과 상상력의 결합은 독자마다 각기 다른 감동으로 다가갈 것이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지만 그 중에서도 콕 집고 싶은 대상은 5학년이다. 작년 2학기에 한국사를 배웠고 일제 강점기까지 진도가 나갔으니 딱 읽기 좋은 시기이다. 겨울방학 맞은 학생들은 꼭 읽으면 좋겠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과 가족을 지켜낸 인물들의 삶을 만나면 바위 같이 어깨를 짓누르던 자신의 고통이 손안에 쏙 들어갈 돌멩이만큼 작아지게 될 것이다.


부모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분명 안창호 선생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읽게 될 것이다. 자녀와 함께 읽고 애국심으로 이야기 나눠보면 어떨까. 또 각자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소개해 보거나 등장인물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 비판적 평가를 해보는 것도 좋다. 부모와 자녀가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주보며 이렇게 말해보자. “언제든지 스마일!” 이 말은 안창호 선생이 제자를 만날 때나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에 늘 썼던 것이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말라는 뜻이다.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늘 웃자고 했던 이 말이 책을 읽고 비장함에 빠질지도 모를 독자들에게 방긋 웃어보라고 하는 것 같다.


언제든지 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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