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베이비 -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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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화자인 소설은 재미있다.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을 어른의 시각으로 보면 신선하면서도 애틋한 맘에 이야기 속에 폭 빠져들게 된다. 아이가 감당하기엔 불가항력적 사건들 속에 내몰리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게 아니야, 괜찮아!”라며 위로해주고 싶다. 어서 어른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과 그대로 자라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수시로 교차한다.


<카지노 베이비>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아이가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정선을 연상케하는 지음이라는 지역이 배경이며 카지노에 드나드는 인간 군상들, 그곳에서 생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작년에 읽고 필사까지 했던 <토우의 집>이 인혁당 사건을 모델로 했는데, 이 소설은 그저 정선을 모티브로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가상의 이야기라 생각하고 읽었다. 그런데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탄탄한 취재력을 바탕으로 실제 사건들이 꽤 많이 투영되어 있었다. 대부분 내가 몰랐던 사건들이었다.


4.3사건이나 인혁당 사건은 역사 시간에 배웠고 책으로도 자주 접했기에 그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역사를 머릿 속에 그려가며 읽게 된다. 그러나 이번 책은 소설로만 인식했다가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한숨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 역사는 왜 이리 위정자들이 판을 치고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이 많았는지... 아니다, 현재진행형인가! 작가는 사북에서 있었던 사건들과 카지노를 큰 줄기로 놓고, 삼풍 백화점 붕괴, 태안 기름 유출, 세월호 참사 등을 참고하여 고통받았던 이들의 심정을 녹이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 소설은 2019년부터 2021년 사이에 쓰여졌다. 당시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투자 활기만은 넘쳐나던 사회 분위기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승일로의 위태로움을 환기하고자 지음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작가의 저 말을 읽으며 코스피 지수 3000을 넘나들던 작년 시황이 생각났다. 돈이 풀리면서 주식과 코인광풍이 전국을 휩쓸지 않았던가. 어떤 이는 작년 분위기를 마치 네덜란드 튤립투기에 비견했고 특히 코인투자에 대해 경고도 했다. 올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 여파도 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주가는 거의 20%이상 빠져버렸다. 작가는 시대의 분위기를 발빠르게 읽어내고 적극적으로 감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카지노 베이비>는 작가의 이러한 통찰이 잘 채색된 소설이다. 물론 기자와 편집자라는 이력은 밑그림을 제대로 그려내기에 충분했다. 소개가 늦었는데 이 소설은 제 27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다.


소설 리뷰를 쓸 때 가장 고민되는 지점은 늘 그렇듯 줄거리를 어디까지 소개할지이다. 탁월한 요약 실력이 있다면 몇 줄로 줄거리를 소개하면 되겠지만 그럴 깜냥이 못되는데다 고쳐지지 않는 만년체 스타일이 줄거리만 몇 문단씩 쓰게 된다. 그렇다. 변명이다. 이 책 소개를 쌔끈하게 해내지 못하는 건 내 실력부족 탓이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 하니 지금부터~


카지노 베이비라 하니 아기가 카지노에서 태어난 것인지 궁금한 이들을 위해!

소설의 화자 동하늘이라는 10살 남짓의 사내 아이는 전당포를 하는 할머니의 손자다. 할머니가 꾼 태몽 덕분에 운명처럼 할머니 손자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할머니의 딸 정희는 카지노에서 메이드 일을 하다가 갓난아이를 몇 시간 맡게 되었다. 그런데 그 부모가 돌아오지 않았고 얼떨결에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오게 되는데 그 아이가 하늘이다. 하늘이는 도서관을 제집 드나들 듯 하고 사전에서 낱말 뜻을 찾아보는 게 취미일 정도로 활자 읽기를 좋아한다. 교회에 가는 건 엄마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기도 시간에 주위 어른들을 흘끔거리는 게 재미있어서다.


이 소설은 그리 비밀스럽지 않은 하늘이 출생의 비밀을 서서히 드러내는 한편 아빠를 찾고 싶어하는 하늘이의 제 뿌리에 대한 열망을 더한다. 하늘이는 학교보다는 책에서, 가장 친한 할머니에게서 인생사를 배운다. 할머니가 들려주던 단편적인 할아버지 이야기는 결국 약속대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모두 듣게 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지음에 정착하게 된 사연과 지음의 흥망성쇠가 모두 술회되는데 한국 현대사의 단면과 닮은꼴이기도 하고 드라마틱한 소설 같기도 하다. 카지노와 그 주위 상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지음이라는 특정 지역임에도 우리네 삶과 유사한 모습인 이유는,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 속에는 사랑과 욕망과 불안이 뒤섞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탄광 위에 세워진 카지노가 그예 무너지고 할머니가 돌아가신다. 살아남은 하늘이가 할머니가 물려준 땅을 확인한 뒤 지음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 뒤에는 할머니의 애정 어린 눈길이 늘 따라붙을 것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당연히 하늘이는 신기루를 쫓는 좀비 같은 어른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p.296


나에게, 엄마에게, 삼촌에게, 그리고 할머니에게 주어진 질문과 답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그냥 물을 수 있는 사람은 그냥 묻고,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쉽게 답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은 온 마음으로 묻고 답해야 한다. 끈질기게 살아가면서, 두 발을 딛고 선 그곳이 넓은 땅이든 좁은 땅이든, 평평한 땅이든 가파른 땅이든, 멀쩡한 땅이든 부서진 땅이든 상관없이

나는 지음을 향해 달려갔다.

 

이 소설을 패가망신하는 도박에 발을 들여선 안 된다는 교훈적인 주제로만 읽으면 너무 단순해진다. 마지막에 하늘이가 엄마, 삼촌과 함께 확인한 땅의 위치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와 환경이 어떠하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어린 하늘이가 이미 깨달았듯 우리도 끈질기게 살아가야만 한다!

 

 



 

**위 리뷰는 하니포터 4기 자격으로 한겨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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