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조 - 제2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송섬 지음 / 사계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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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박지리 문학상 수상작 <골목의 조>의 가제본을 중반부 정도까지 읽고 리뷰를 썼다. 나머지를 다 읽고 나서 일주일 정도 후 본책이 도착했다. 전체 리뷰를 쓰려고 재독을 시작하면서 밑줄 그어놓았던 부분을 유념하며 읽어보았다. 그런데 밑줄을 긋지 않은 문장들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골목의 조>는 오랜만에 두 번 정독한 책이 되었다.


사람이 죽는 이야기가 두 번씩이나 나오는 책이 있었던가, 고양이도 죽고, 유령 같은 존재와 동거까지 하다니. 이렇게 쓰면 컴컴하고 우울한 소설이 아닐까 싶을 것이다. 허나 처음에도, 두 번째 읽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리 음울한 소설이 아니었다. 그건 아마도 작가의 묘사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물이나 상황, 분위기 묘사가 어둡지 않을뿐더러 진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리뷰 때 마음에 든 문장을 여럿 옮겼다.


재독하면서 눈에 들어온 아래 문장은 아마 작가(조의 발화였지만)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산다는 것이 마치 이야기를 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언젠가 조는 말했었다. 이쯤에서 의미 있는 대사를 던져야 할 것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그렇지 않으면 슬슬 졸작이 되어버릴 텐데, 도대체가 할 말이 없어서 문제라고. 사는 것 자체에 그다지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그리고 주인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살아간다는 일은 이렇게 두려운데, 남들은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사는 것 자체에 별 재능이 없었던 주인공과 조, 둘의 동거와 이별을 통해 작가는, 산다는 것의 어려움을 말하려고 한 것 같다. 어쩌면 자살을 선택한 아버지와 조의 죽음은 가장 능동적 행위에 다름 아님을. 그렇기에 이 소설 전체의 분위기가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았던 것이리라.


20대 초반의 나이에 가까운 이의 죽음을 두 번씩이나 경험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삶에 그리 애착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주어진 대로 일할 뿐이며 고양이 두 마리를 옆에 끼고 잠들고 일어나는 것에 만족한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타인과 깊이 얘기해 본적 없었던 주인공은 조에게 이렇게 말한다.


p.186


아버지가 죽었을 때 나는 정말 슬펐어. 너무 슬퍼서 한 걸음도 떼지 못할 만큼. 현관문에 매달려 죽은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정말로 깊이 슬퍼했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은 아니지만, 잊은 적도 없었어. 닫힌 문 뒤에 매달려 달랑거리는 기억처럼 아버지의 죽음은 내게 늘 남아 있어. 얼마나 오랫동안 그 모습을 보면서 서 있었는지, 그 시간들이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뿐이야. 나는 슬펐어. 슬프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몰라서, 언제 슬픔이 다 끝나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모른 척했던 거야.



언제 슬픔이 다 끝나는지 알 수 없어서 모른 척 했던 주인공은 결국 조까지 떠나보낸 후에야 아버지도 조도 제대로 보낼 수 있게 된다. 오래 전에 죽은 아버지를, 납골당 안치기간이 만료되어 가지고 나온 유골함을 분실함으로써 말이다. 그것을 잃어버리게 된 연유는 자기 집에 유령처럼 머물다 떠나간 아저씨를 쫓아가다가 발생한다. 결국 아무도 믿지 않을 유령 같았던 존재 아저씨와 아버지를 같은 날 떠나보내게 된 셈이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분실함으로써, 아저씨를 쫓다 놓침으로써, 둘과는 이제 영영 이별하게 되었다.


주인공은 조를 같은 날 있었던 이 사건보다 먼저 떠나보냈다. 그가 죽은 후에 그들과의 헤어짐이 가능했다. 조의 실물은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골목의 조로 남아있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반지하 집 벽에 숨겨져 있던 공간, 그곳은 일종의 베란다 같은 역할을 했는데 그곳을 둘은 골목이라고 불렀다. 조와 고양이 둘과 함께 햇볕을 쪼이던 공간. 이젠 주인공에게 고양이 한 마리만 남았지만 그곳을 떠나지는 않을 것 같다. 둘은 없지만 남은 둘은 그들을 생각하며 그 골목에서 햇볕을 쬘 것이다.


주인공 곁에 존재했던, 그나마 좋은 관계를 유지한 이들은 모두 떠났다. 이제는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살아갈 것이다. 이것을 성장이라고, 아버지와 조를 진정으로 애도함으로써 치유되었다는, 나는 왠지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가 않다. 그동안 만났던 남자들과는 완전히 결이 달랐던 조를 떠나보내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조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기억하며 그것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겠다. 살아가는 데 재능이 없다고 한 조는 떠났지만 살아가는 일이 두려운 주인공은 남았다. 남은 자가 할 일은 살아가는 일이니까... 골목에 나가 책을 읽는 동안, 고양이를 끼고 잠이 드는 옆에, 조는 같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제목도 <골목의 조>일 터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무심하게 살아가는 듯 보이고 친구도 없다고 했지만 책을 많이 읽는다. 부모나 학교로부터 배우지 못한 것들을 대부분 책에서 배웠고 책을 읽으며 소일하고 책 속 문장이나 인물, 작가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나는 보통 책에서 언급되는 또 다른 작가나 작품들을 찾아보는 편이다. 이번 책에서 송섬 작가가 대놓고 언급한 작가는 메리 프랜시스 케네디 피셔이다. 찾아보니 그는 음식에 관한 글을 많이 쓴 작가이고 글을 꽤 많이 남겼음에도 국내에 2010년에 번역된 <늑대를 요리하는 법> 한 권뿐이다. <작가님, 어디 살아요?>는 그의 저서는 아닌데 책 속에 그의 말이 언급된 모양이다.


송섬 작가는 작가의 말마지막 문장에서 첫 번째 독자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의 첫 책을 구매가 아니라 서평단 자격으로 받은 것에 미안하지만, 그의 첫 독자가 된 건 분명하다는 뿌듯함도 생겼다. 그의 문체가 마음에 든다. 나는 그의 신작을 기다리는 첫 독자가 되겠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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