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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자리
고민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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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의 자리>는 1인칭 주인공 시점임에도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주인공의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 백수가 된 여자 주인공이 약국 전산원 자리의 면접을 보러 가면서 소설이 시작된다. 면접 당일, 주인공은 사장이랄 수 있는 김약사로부터 유령으로 지목당한다. 유력이 뭐냐고 묻자 김약사는 파안대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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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람도 유령이 될 수 있다는 김약사의 말은 주인공이 면접을 보러오기 전 승용차에 치었던 사건을 오버랩시킨다. 운전자가 다쳤냐고 물으면서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주인공은 면접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다친데 없다며 그냥 가려고 하자 운전자는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한다. 분명 차에 치었는데 찰과상이나 멍 하나 없이 멀쩡한 것은 김약사의 유령이란 명명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셈이다.
산 사람도 유령이 될 수 있다는 김약사의 단정은 소설을 읽는 내내 무엇이 유령의 조건에 부합가능한 것인지 찾게 만들었다. 유령의 靈과 제목의 영은 발음이 유사하나 뜻은 다르다. 소설 속에서 유령과 숫자 영의 상관관계를 찾아보며 읽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영에 어떤 숫자를 더하면 영은 사라지고 그 숫자만 남습니다. 영에 어떤 숫자를 곱하면 그 숫자를 영으로 바꿉니다. 아무리 많이 늘어놓아도 영은 영 외에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숫자에 기댈 때 영은 우주의 단위가 될 수 있습니다.”
영이 아무리 많아도 영은 영이 될 뿐이라는 말은 유령같은 존재들만 있다면 이 세상은 유령도시가 될 것이라는 뜻으로 읽혔다. 소설은 약국에 취직한 주인공의 생활을 세세하게 좇으며 약국에 근무하는 김약사, 조부장, 주인공 양실장의 모습, 손님들과 주인공 부모를 비춘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일상처럼 서술되지만 손님을 포함한 각 인물들의 미세한 삶이 보인다. 그들의 가치관은 행동과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먼저 김약사는 아닌 것처럼 포장하지만 제약회사 영업사원과 직원들에겐 갑질하는 사람이다. 의사들이 영업사원에서 갑질한다는 사실은 개인병원 간호사로 근무하는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지만 약사도 그럴 줄은 몰랐다. 자신들의 갑질이 당연한 권리인양 착각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김약사의 갑질은 직원 조부장과 양실장에게도 유사하게 작동되는데 자신의 행동이나 말이 갑질이라는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김약사는 수다스럽다. 약국에 단골로 오는 손님들의 사생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김약사는 그들의 정보를 직원에게 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일에 필요한 단순한 정보 제공으로 보이지만 평가와 비난을 교묘하게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조부장과 양실장에게도 거침없이 사생활을 묻고 조언을 가장한 지적질을 한다. 대장암에 걸린 조부장 아버지의 안부를 수차례 물으면서 아버지 위암 괜찮으시냐고 말한다. 영혼 없는 질문인 것이다. 김약사는 면접 보러온 주인공에게 대뜸 유령이라고 했지만 가장 유령 같은 존재는 김약사였다.
약국 외의 공간적 배경은 간헐적으로 나오는 주인공의 본가다. 주인공은 독립하여 원룸에 살고 있지만 주말이나 명절에는 부모님 집에 가서 지낸다. 부모님 집 방문에 효도 같은 의미 부여를 하진 않고 습관처럼 다녀오지만 감정적 소통은 없다. 즉 몸만 그곳에 머물 뿐 영혼 없는 행동에 가깝다. 특히 주인공은 엄마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버겁다.
p.135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투고 나면 꼭 나에게 오서 하소연했다. 한때는 어머니와 같은 나라의 주민이라고 생각했다. 귀담아듣고 연민했으며 언젠가 상황이 나아지리라 믿었다. 몇 년쯤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들은 뒤에야 어머니에게 딸이란 약국에서 구입하기 쉬운 약과 같다는 걸 알았다. 수시로 복용해도 병세의 원인이 다른 데 있었기에 차도는 없었다. 그저 진통제에 불과했던 약의 역할을 거부했더니 어머니의 한탄은 비난으로 바뀌었다. 나는 점차 침묵을 모국어처럼 사용했다.
딸에게 하는 말을 대화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딸과의 소통이라 여기지만 실은 딸을 배설창구로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친구같이 가까운 사이라 여겨지는 모녀 지간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는데 소통이 잘 안 되는 인간관계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이처럼 소통과 대화라는 그럴싸한 외피를 벗기면 관계의 우위에 있는 사람의 갑질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주인공이 습관처럼 부모를 만나고 와도 그 시간이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는 이유다.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도 이러한데 다른 사회적 관계에서는 어떨까.
작가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관계를 맺고, 관계와 관계 속에 사람이 있다 고 표현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관계를 맺고 살아가며 자랄수록 관계의 수는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작가는 ‘관계 속에 사람이 있다’고 했지만 유령 아닌 사람이 있는, 진심이 있는 관계는 얼마나 될까? 작가는 수많은 0들이 다른 숫자에 기댈 때 0이 우주의 단위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수많은 0.0000001들이 그 관계 속에서 기댈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이 소설을 쓴 듯하다.
몹시도 협소한 약국이라는 공간적 배경 속에서 뭐 그리 많은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지만 약국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속속들이 보여주었다. 평소 돈을 지불하고 처방약을 타거나 필요한 약품을 받아 나오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그 공간 안에 숨은 이야기가 그리 많을 줄 몰랐다. 근무한 지 달 밖에 안 된 전산 직원이 조제를 하고, 영업사원이 약국에 컵라면 같은 소소한 것들을 사다 바치면서 결제를 받으려고 줄을 서서 굽신거려야 한다는 사실과 손으로 만지면 불임이 되는 약, 후시딘과 마데카솔의 효능 차 같은 깨알 정보도 알 수 있었다. 작가가 옮겨다닌 일곱 번의 직장 중 한 곳이 약국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쓸데없이 궁금한 것이 있었다. 작가가 시리에게 “영 나누기 영은?” 이라고 물어봤을 때 정말 그렇게 답했을까? 내 폰이 아이폰은 아니지만 물어봤다. “영 나누기 영은?” 난센스 퀴즈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칙연산까지 할 필요도 없이 더하기만 생각해보자. 내가 소수점 저 끝에 1이라도 달고 있다면 0과 더했을 때 0은 아니게 된다. 관계 속에 기댄다는 건 덧셈이고 나 자신이 0이 아닌 0.0000001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위 리뷰는 하니포터 자격으로 한겨레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