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스님의 무소유에 대한 신념이 간디와 소로에게서 영향을 받아 확립한 것으로 추측했다. 불가의 정진인 삼부족(三不足)을 강조했다고 한다.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배 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
사람마다 삶의 공식이 다르고, 그렇기에 강요할 수는 없지만 스님 본인은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문명의 이로운 기계로 인해 혜택도 받지만 많은 것을 잃고 있어요. 편리하기 때문에 다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지 못하고 점점 해체되고 말아요. 물건의 노예가 되고, 조직의 노예가 되고, 관계의 노예가 되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보다 단순하고 간소해져야 돼요.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산다는 것은 본질적인 삶을 산다는 말이에요.”
이 책에서 작가가 소환하는 스님의 말씀은 시간이 꽤 지난 것부터 입적하시기 전까지의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시대에 꼭 맞는 말씀이라 놀랍다. 인간이 단순하게 살면 지구 생태계를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우린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정반대로,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고 있다. 법정스님 삶의 면면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렇게도 아끼던 난초를 친구에게 선물하고, 원래 쓰던 만년필이 있었는데 만년필을 선물받자 다른 이에게 준 일 등등.
이 책으로 스님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일이 많다. 그 중 두 가지는 역사적으로도 큰 일이 아니었나 싶다. 스님은 인세로 들어온 것을 대학생 장학금으로 후원하고 있었다. 익명으로 하셨는데 금융실명제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나게 되었다. 길상사는 길상화(김영한) 보살의 소유였던 대원각을 시주받아 1997년 12월에 개원한 절이다. 1천억원대의 재산을 기부한 것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길상화 보살은 이렇게 답했다.
“재산은 그 사람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
길상화씨는 일제 강점기 때 여창 가곡과 궁중무 등 가무의 명인으로 이름을 떨친 백석의 연인이었다는 사연도 처음 알았다.
2009년 봄, 길상사 정기법회의 마지막 법문이 이 계절에 새겨들으면 좋을 것 같아서 일부를 옮긴다.
“이 눈부신 봄날, 새로 피어난 꽃과 잎을 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십니까. 각자 이 험난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참고 견디면서 가꾸어온 씨앗을 이 봄날에 활짝 펼쳐보기 바랍니다. 봄날은 갑니다. 덧없이 갑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새로 돋아난 꽃과 잎들이 전하는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듣기 바랍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연둣빛 얼굴을 내미는 꽃과 잎을 ‘거룩한 침묵’이라고 표현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쓸데없이 시끄러운가. 지구를 괴롭히는 짓들은 또 얼마나 과격한가. 멈출 줄을 모른다. 스님의 생애를 보며 우리 같은 범인(凡人)은 감히 따라 하기 힘들다며 손사래를 친다. 결혼하지 않은 스님과 같냐, 가진 게 너무 많아 놓기 힘들다, 자본주의의 습성에 찌들어서 어쩔 수 없다는 등의 변명이 속속 고개를 들이밀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 처음에 나온 ‘무소유는 나눔’은 실천할 만 하지 않은가. 가지고 있는 너무 많은 물건들을 나눠야한다. 그리고 소비를 멈추어야 한다. 이젠 그만 사자고, 작년부터 노력중이긴 한데... 가장 안 되는 게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