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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 -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존재로 살아가기
김광기 지음 / 김영사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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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 경북대 교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평소 사회학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제목 <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에 끌려 서평단에 신청했다. 이방인하면 즉각적으로 경계주의보가 발동한다. 낯선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가장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제목처럼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이 있는지 궁금했다. 저자는 2014년에 <이방인의 사회학>이라는 책을 냈는데 어렵다는 반응이 왔다. 그래서 이방인에 대한 대중서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 이번 신간이 그 결과물이며 이전 책이 클래식이라면 이번엔 재즈라고 표현했다. 성공 여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했다.
이방인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만 갇혀있던 내게 다양한 변주를 들려주었기에 재즈라는 설정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 책이 마냥 쉽다고는 하지 않겠다. 아다시피 재즈도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철학자들의 저서와 문장을 언급하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이방인을 다양하게 펼쳐놓았기에 독자의 배경지식에 따라 쉽게 이해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장점이 있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거나 부동의할 경우 왜 그런지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런 독서활동은 자연스레 사고의 확장이 된다. 낯설지만 매력적인 주장을 만나 기분 좋은 설득을 당하면 마치 재즈 연주를 들으며 그루브를 타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방인은 물리적 인지적 시공간을 가로질러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모든 이다.”
“이방인은 과거라는 도입부 없이 갑자기 새로운 환경에 뛰어든 자다.”
“이방인은 기존 사회 구성원과는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자다.”
“이방인은 가깝고도 먼 타인이다.”
“이방인은 호기심의 사람이며 신체와 정신 모두에서 역동적인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지위와 직업, 배역에 목을 매지 않는 자, 모두 내걸지 않는 자. 언제든 그런 것이 주는 명예와 권력과 부를 벗어 던질 준비가 된 자, 그들이 이방인이다.”
“이방인은 자신이 속한 세상의 자연적 태도에 의문을 갖고 그것에 뻗대며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자다.”
위는 저자가 서술한 ‘이방인’ 중에서 고른 것이다. 목차대로 떠나고, 상처받고, 홀로, 각성하는 이방인을 만날 수 있다. 자신의 상황과 유사한 혹은 자신이 생각했던 이방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낯선 자의 얼굴에서 자신을 만날지도 모른다.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17. 나란 인간 이었다. 저자는 ‘나’라는 것은 결국 타인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했다. 인간은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쓰고 사는데 그 배역은 여러 가지다. 우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가면을 자신으로 믿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그 배역에 시큰둥하게, 하찮게 여기며,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칭했다. 나아가 세상의 모든 지위와 직업, 배역에 목을 매지 않는 자, 모두 내걸지 않는 자. 언제든 그런 것이 주는 명예와 권력과 부를 벗어 던질 준비가 된 자, 그들이 이방인이라고.
그동안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페르소나를 역할이라고. 내가 맡은 역할들에 모두 충실해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자기에게 주어진 가면을 자신으로 믿는 착각 속에 살았다. 이 나이 먹도록 나란 인간이 누군지 잘 모르겠는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챕터에서 오래 머물렀다. 이방인의 정의를 아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내가 처한 직위나 지위, 직종, 서열 등에 의해 획득한 콩고물(권력이나 부, 명예)에 만족하면서 살아왔는데 그건 허상이란다. 나는 그런 콩고물을 벗어던질 수 있을까? 그런 것에 연연해하며 살지 않았다고 말한 유명인이 생각났다.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늘 존경스러웠는데 그는 저자가 말하는 이방인인 셈이다.
노예가 아닌 주인, 자신의 삶에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 그것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주인이란 착각을 하며 사는 것이라는 내용에서는 놀랐다. 저자는 189쪽에서 ’언제든 자신이 처한 곳 밖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 자가 존재가 빛나는 자다.’ 라고 했다. 단지 빌려 쓰는 임차인인 주제에 주인입네 하지 말라며, 존재가 빛나는 자는 자신이 손님임을 일시 체류자임을, 즉 이방인임을 깨닫는 자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나는, 이방인이라는 말보다 ‘빛나는 자’라는 말이 좋았다. 빛나는 사람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나도 빛날 수 있을까? 나는 언제든 내가 처한 곳 바깥에 설 준비가 되어 있나? 콩고물에 연연하지 않고 손님의 정체성으로 언제든 내가 서 있는 자리를 툭툭 털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다면 아등바등 목메며 살 일이 아니다.
리뷰를 쓰며 책의 부제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존재로 살아가기’에 부합하는 사고활동을 한 것 같아 만족스럽다. 그러나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빛나는 사람이 되려면.
ϻϻϻ**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