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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와 춤을 - 진정한 자유인과 함께한 그리스 여행기
홍윤오 지음 / 넥서스BOOKS / 202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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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와 춤을>은 전 한국일보 기자 출신 홍윤오씨의 그리스 여행기이다. 제목에 조르바가 등장하니 분명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가 주요 소재로 사용되었으리라고 예상했다. 그리스 여행 가본 적 없지만 <그리스인 조르바>는 읽었기 때문에 그리스 여행과 조르바가 어떻게 콜라보 되었을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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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놀랐다. 저자가 인용한 많은 <그리스인 조르바> 속 문장 중에 하나도 기억나는 게 없다니! 책을 대충 읽어서? 감동적이지 않아서? 굳이 변명하자면 읽은 지 10년도 더 돼서 그런 거라고 해야겠다. 독후감을 써놓았더라면 다시 읽어보고 그 때 내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을텐데... 그러니까 읽었으면 꼭 써야 한다!
저자는 머릿 속에 계속 맴도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그리스 여행을 택했다.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왜 그렇게 사는가?”
저자의 해답을 찾기 위한 여행에 나도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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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푸른 하늘과 유적을 찍은 사진과 그림이 나오는데 저자가 직접 찍고 그린 것이다.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어서 수채화 그리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배웠다는 말을 읽기 전에 그림을 먼저 봤을 땐 이미 실력자라고 생각했다. 금방 배워서 이 정도라면 원래 기본 실력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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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사진보다 더 멋스럽게 느껴진다.
저자는 그리스 여행을 혼자 떠났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책에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문장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카잔차키스가 있던 곳, 조르바와 이야기 나누던 곳, 그 둘의 대화 등등 책 속 문장과 저자가 직접 다닌 곳이 연결되어 서술되니 조르바와 카잔차키스와 함께 다닌 여행 같았다.
p.19
나는 산토리니섬 남서쪽 끝 등대에서 에게해의 바람을 맞으면서 조르바를 만났다. 그 조우는 물론 상상이었따. 그곳에서 싱그럽고 부드러운 1월 에게해의 바람을 맞는 순간 조르바와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만 같았다. 바로 그때 나는 깨달았다. 조르바가 왜 이 바닷가에서 춤을 출 수밖에 없었는지를. 사실 상상으로 따지자면 여행 내내 조르바는 나와 함께했다. 길을 걸을 때, 멋진 풍광을 보았을 때, 산과 들을 굽이치는 물줄기처럼 그림 같은 길을 운전할 때, 간단하면서도 건강에 좋은 그리스 음식을 먹을 때, 조르바는 늘 나와 그 감동을 함께 했다.
산토리니 섬은 오래 전 이온음료 cf 배경으로 나왔을 때 처음 보고 그 파랑과 하양의 조합에 홀딱 반했다. ‘손예진처럼 나도 저기서 저렇게 뛰어다니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희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렇게 다른 사람이 산토리니 다녀온 글을 읽고 있다. 저자는 산토리니 섬에서 거센 바람을 맞으며 두 팔을 벌리고 눈을 감았다. 제목처럼 조르바와 춤을 췄고 교감한 것이다. 그는 조르바와 영혼합일이 이루어졌다고 느꼈다. 그리고 마음이 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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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앤서니 퀸이 조르바를 맡은 영화의 장면을 떠올렸다. 앤서니 퀸이 두 팔을 벌리고 산투르 반주에 맞춰 시르타키(전통 춤인 하사피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춤) 춤을 추고, 귀에는 “기차는 8시에 떠나고”가 맴돌았다.
저자는 신탁을 받기 위해 델포이로 갔다. 아폴로 신전에서 신성한 기운은 느꼈으나 신탁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박노해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도달한다.
'내가 이 세상에 왜 왔는지 모르듯이 앞으로 내게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안다. 모두가 죽음이라는 한 지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그때가 언제일지 알 수 없으나 항상 곁에 따라다니는 찰나, 한순간이라는 것을. 그러니 단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저자는 카잔차키스의 묘지 앞에 서서 조르바의 질문을 받는다.
“지금 자네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여행왔다는 대답에 조르바는 웃으며 이렇게 응대한다.
“그 일을 하라. 삶은 자유다. 인간은 자유다.”
달랑 나무 십자가 하나 뿐인, 전혀 관리가 되지 않은 것 같은 카잔차키스의 묘지 앞에서 저자는 실망과 안타까움을 느끼며 카잔차키스의 생애에 대해, 자유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를 추모한다는 것, 누군가의 무덤에 간다는 것은 잠깐이지만 영혼이나마 함께해 보고 싶은 것이라고. 조르바가 죽기 전 외쳤던 세 마디, 묘비에 남겨진 그 세 마디가 저자의 가슴을 두드렸다.
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저자는 이라클리온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 나나 무스쿠리의 음악을 플레이했다.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저자를 줄곧 따라다닌 화두는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마지막에 <장자> 제물론 편에 나오는 ‘오상아(吾裳我)’라는 말을 언급한다. 책의 뜻보다 단순하게 ‘내가 나의 상(裳)을 치른다’로 해석하고 싶다고 했다. 기존의 나를 스스로 죽여 없애야 새로운 나로 거듭날 수 있으므로. 조르바와 함께 한 그리스 여행에서 저자는 진정한 자유를 만났을까? 조르바가 추구했던 삶,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을 마음에 새겼다. 저자는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조르바와 함께 걸어다니고 춤을 출 것 같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