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 이은정 - 요즘 문학인의 생활 기록
이은정 지음 / 포르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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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종류의 책을 읽었는데 공통점을 발견할 때가 있다. 며칠 전 읽은 책 <왜 얼굴에 혹할까>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말, 잘 생긴 얼굴에 눈길이 간다고 했다. 범죄자인 걸 뻔히 알고도 잘 생기면 호감이 가고 동정심이 생겨 급기야는 도와주려고까지 한다. 잘 생긴 얼굴을 이길 수가 없다. 그럼 못 생긴 사람들은 어쩌나? 성형수술 해야 하나? 아니다. 저자는 각종 실험과 연구 사례를 인용해 웃으면 된다고 했다. 웃고 있는 사람 옆에 있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니 웃는 낯으로 주위에 긍정에너지를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자고 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쓰는 사람, 이은정>에서 작가도 웃음으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고 이런 팔자는 고칠 수도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약국에서 일 할 때 약사님에게 팔자는 타고 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답하기에 그럼 벗어날 수 없는 거냐고 다시 물었다. 그 약사님은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건 적선이라고 했다. 가진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던 작가는 어떻게, 뭐로 베푸냐고 물었고 그에 대한 답이 바로 웃음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팔자를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살고 있다. 최대한 웃는 얼굴로 사람을 만났고 내 말의 온도를 점검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때로는 가슴이 젖은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함께 울어주기도 했다. 웃음 한 줌이 적선이라면, 어쩌면 울음 또한 적선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결과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말하기 전에 말 온도를 재며, 가끔은 함께 울어주는 것, 그것들은 정말 팔자를 바꾸게 했다. 내가 베풀고자 한 행동이 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내게로 돌아온 것이다.

많은 사람이 위로의 말을 건넸으며, 진심으로 울어주었다. 밥을 굶는 내게 쌀을 보내주었고, 차비가 없는 내게 구겨진 지폐를 건넸다. 죽고 싶은 내게 살자고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도 알고 보니 나만큼 지난했던 과거가 있는 분들이었다. 그분들 역시 자신이 받았던 것들을 내게 되돌려준 것이다.

p.80~81

 

이은정이라는 작가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라도 위 내용을 보면 작가가 어떻게 살아왔을지 짐작 가능할 것이다. 팔자 탓을 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그것은 거창한 베품이 아니다. 진심으로 웃으면서 대했던 거다. 웃는 얼굴에 진심어린 말과 행동이라면 받은 사람도 다시 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전업작가로 계속 살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책 제목도 <쓰는 사람, 이은정>이다. 신기하게도 작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이 열렸다. 주춤주춤하며 한 발 내디디면 용케도 그 발 앞으로 길이 났고, 비록 경제적으로는 넉넉지 못해도 그 길로 걸어갈 수 있었다.

집을 구한 사연을 작가는 기적이라 표현했지만 실은 그동안 작가가 베푼 것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 싶었다. 바닷가 어촌 마을에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사고 싶었지만 은행대출이 불가능했다. 도저히 마음을 접을 수가 없어서 주인에게 다시 찾아가 사정을 말했더니 가진 게 얼만지는 모르겠지만 전세든 월세든 이 집에 와서 살라고 했다. 그 집에서 쓴 소설로 작가는 문학상에 당선되었다. 이 에피소드에서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을 대면할 때 다정한 눈동자와 목소리, 예쁜 미소를 세팅하고 나의 가난이나 결함 따위에 솔직해지는 연습을 시작했다. 고달픈 일상을 사는 주제에 가식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연습이니까. (……) 작은 연습이 습관이 되면 인생이 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꿈 같은 행운이 들이닥친다는 걸 믿게 되었다. 기적은 몸과 마음을 예쁘게 부리는 작은 습관 속에서 조용히 찾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p.18~19

 

 

이 책은 작가 이은정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 느끼고 깨달은 글들이 실려 있다. 글 한 꼭지가 서너 페이지 정도로 짧다. 그럼에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 라디오에서 나오는 청취자 사연을 듣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겪었던 일이 오버랩되는 상황에서 느끼는 작가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예컨대 이런 내용 말이다.

"음식점 안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다가 창 너머 나를 쳐다보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하면 혹시 배가 고파서 보고 있나 싶어 미안해진다. 늦은 오후, 놀이터 그네에서 혼자 무료하게 앉아있는 어린아이를 보면 어두워지기 전에 부모가 퇴근할까 걱정된다. 남의 밭에서 배추 한 포기를 뽑아 뛰어가는 낯선 아주머니를 보면 넘어지지 말고 가셨으면 한다."

사람들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거다. 작가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시선 이라고 표현했다. 초등학생에게 재능기부를 하게 된 사연은 마음으로 보는 시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고등학생 논술과외 광고를 냈는데 초등학생 딸아이를 주 2회만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아빠였고 대리운전 하는 날 밤 늦게까지 딸이 혼자 있는 게 걱정되어 계속 부탁했던 것이다. 작가는 그 집에 직접 가보고는 과외 대신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말한다. 어른스럽던 그 아이와 헤어지던 날 눈물을 흘리며 먹던 통닭의 기억을 잊기 힘들 것이라고 썼다.

다시는 그 아이가 통닭을 먹으며 울지 않기를, 어떤 음식을 먹다가도 눈물이 나지 않기를, 나처럼 너무 슬픈 어른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어른들 사정이야 어떻든 아이들은 그저 웃을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p.27

 

 

이 책은 산문집이기에 작가의 일상이 다 드러난다. 자신의 이야기를 써야하므로 진솔함이 생명이다. 나는 작가는 아니지만 책 리뷰를 쓸 때 내 생각이 들어가야 하고 그러다보면 내 신상도 드러내야 할 때가 있다. 내 정보 못지않게 생각을 드러낼 땐 나도 모르게 자가검열에 들어간다. 마음의 자가 스스로 그어둔 선 아래 위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눈치를 본다. 작가들은 정말 솔직하게 쓰는 걸까 궁금했다. 이은정 작가의 생각은 이렇다.

작가라는 신분에 솔직함이 제약이 된다는 말은 내가 겨우 쌓아가고 있는 내 인생에 대한 모독처럼 들렸다. 나는 솔직하지 못한 작가는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픽션이 됐든 논픽션이 됐든 글에는 반드시 글쓴이의 영혼이 들어가게 되어있는데,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의 글에서만 빛을 발하는 감동과 공감이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p.220

 

그래서 이 책을 읽고 고개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어떤 사연에선 같이 눈물 흘렸고, 감사의 인사를 90도로 같이 했으며, 뜨거운 군고구마에 입맛 다셨다. 가난한 독거중년이 더 가난한 독거노인이 될지라도 계속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인용하며 이은정 작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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