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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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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려고 한번이라도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신경숙 작가의 신작 <아버지에게 갔었어>에서 주인공 딸이 수면장애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자문한다. 그런 질문을 한 곳은 백야 때문에 잠못이루던 핀란드에서였다. 소설 속 딸의 직업은 작가이며 핀란드에 출판행사를 하러가서 통역을 해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자신의 말을 진지하고도 골똘히 듣는 그 나라 사람들 때문이었다.
P. 373
먼 이국의 사람들도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데 나는 내 아버지의 말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 아버지의 슬픔과 고통을 아버지 뇌만 기억하도록 두었구나, 싶은 자각이 들었다. 말수가 적은 아버지라고 해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딸이 되어주었으면 수면장애 같은 것은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낯선 나라에 와서 겨우 백야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해 충혈된 눈으로 쩔쩔매다가 결국 옷장 속까지 기어 들어갔을 때에야 수면 장애를 겪는 아버지의 고통이 어떤 것일지가 떠올랐다.
인간이란 제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그제야 남의 고통이 눈에 들어온다. 자식의 고통이라면 더 일찍 알아챘겠지만 부모라면 다르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그것을 증명한다. 멀리 떨어져 있고 부모가 일일이 어려움을 말하지 않는다면, 저 먹고 사느라 바쁘고 제 새끼 키우느라 정신없다면, 자식에게 부모는 한참 뒷전일 수밖에 없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헌은 몇 년 전 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부모와 거리를 두고 살았다. 엄마가 위암 수술 때문에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몇 년 만에 고향 J시에 가서 아버지와 함께 지낸다. 그 때부터 이 집안의 가족사가 시작되고 헌은 자신의 무심함을 알게 된다. 그동안 자신의 고통이 너무나 커서 노부모가 겪고 있는 어려움, 불편함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소설은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평범한 가족들과 아버지의 이야기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아버지는 '살아냈다, 너희들 덕분에 용케도 살아냈다' 고 유언처럼 말한다. 예스24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아버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처 듣지 못하고 놓쳤던 내면들을 깊게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썼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라는 단어는 희생, 책임감, 헌신 같은 낱말을 내포하고 있는 대명사로 읽힌다. 그 아버지는 개별적 존재가 아니며 개인의 삶이 있으리라고 상상하지 못한다. 작가는 그런 아버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 속 아버지는 1933년생이고 조실부모했는데 다정다감한 아버지로 나온다. 어린 나이에 농부의 삶을 살게 되고 스무 살에 결혼해서 자식 여섯을 낳았다. 시골에서 소 키우고 벼농사 지어 자식 여섯을 모두 대학교에 보냈으니 대단한 아버지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한문으로 사자소학 배운 것이 지식습득의 전부였고 조그만 점방을 하느라 한글을 겨우 익힌 정도였다. 그럼에도 리비아에 일하러 간 장남과 편지를 주고 받기 위해 한글야학에 가서 맞춤법 공부를 했고 동네에서 사용할 농기구를 설명서만 보고 조립해서 항상 최초로 모는 사람이었다. 자식들을 살뜰히 챙기는 아버지였지만 한 때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 남자였다.
이 소설을 읽고 공감과 감정이입을 크게 할 독자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나이대가 비슷하고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일 것이라 예상된다. 3.15 부정선거와 4.19 당시의 시대 상황, 1980년대 사막에 일하러 떠난 남자들, 태생적 압박을 지고 살아가는 장남, 형제들 숫자가 많아서 생기는 여러 가지 갈등들은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에게는 역사책 속 이야기로 읽힐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부모세대조차 소설 속 형제들 나이보다 어릴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젊은 독자들이 전혀 공감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버지, 가족이라는 보편성이 가진 공감의 포인트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었는지 작가는 소설에서 3세대에 거친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주인공 아버지의 이야기가 가장 비중이 높고 인터뷰와 편지 형식을 빌어 큰오빠 승엽의 이야기, 둘째 오빠의 아들의 이야기를 넣었다. 50년대에 시골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야하는 효자로 살아야했던 큰오빠의 삶은 장남이라는 돌덩이를 지고 언덕을 오르는 시지프스 같았다. 90년대생으로 보이는 조카는 둘째 아이를 낳고서야 아버지의 무게를 실감하게 되었다는 고백을 고모에게 한다. 이 세 명의 삶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로 살아가는 이들이 하는 고민의 지점은 다를지언정 모두 엇비슷한 무게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아버지들이 하는 말을 우리는, 자식들은, 들으려 한 적이 있었던가? 이 리뷰 처음에 한 질문은, 작가가 독자에게 한 질문이기도 하다.
“당신들은 아버지의 얘기를 들으려고 한번이라도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아마 대부분 없을 것이다. 정말이지 한 번도 대화란 걸 적이 없었고, 아버지가 하시는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고 그렇게그렇게 당신은 입을 닫은 게 아닐까.
<엄마를 부탁해>를 읽은 독자들이 한결같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은 독자들이 직접 아버지에게 가든 전화를 하든 아버지 얘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옛날 앨범을 꺼내 시작해보자.
“아버지, 이 때 얘기 좀 해주세요!”
**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