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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멋진, 거짓말 - 어쩌다 보니 황혼, 마음은 놔두고 나이만 들었습니다
이나미 지음 / 쌤앤파커스 / 202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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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멋진, 거짓말>은 서울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 이나미씨의 신간이다. 저자는 올해 환갑을 맞았다. 아주 늙지도 젊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가 되고 보니 아쉬움과 분노, 후회같은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일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잘 버텨낸 스스로를 위로하고 칭찬하고 싶다고 했다. 노인이라 부르기에 애매한 60대 동년배들과 공유하고 싶은 심정(그동안 참 애썼다!는 격려)으로 이 책을 낸 것으로 보인다.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단을 보면.
"아름다운 지구에서의 찰나, 생겼다 없어지는 한 점 먼지에 불과한 ‘거짓말’ 같은 인생. 그럼에도 내 영혼은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사라진 후에도 나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기에... 감히 이 찰나의 거짓말에 ‘멋진’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고 싶었습니다."
저자는 대외적으로는 교수라는 직함으로 불리지만 그의 역할은 여러 가지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대부분 하고 있는 역할들이다. 가정에서 딸과 며느리로 살았고 이제는 시어머니와 할머니역할까지. 저자는 시부모를 모시며 년간 12번이 넘는 제사를 지냈고, 자녀를 양육하며 사회생활을 했다. 전문직을 가진 우리나라 여성들이 대부분 그러한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그 때는 다들 그런 줄 알고 1인 3역, 4역을 꾸역꾸역 해냈다. 요즘 20~30십대가 보기에 못할 짓이었다. 요즘은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니 시부모 봉양이나 제사까지 이어질 일도 없지만.
저자의 나이는 그러니 딱 끼인 세대다. 우스갯소리로 시부모를 봉양한 마지막 세대, 자식들에게 버림받을? 첫 세대라는 말이 딱 현실이 된 세대이다. 그러니 좀 억울할 법도 하다. 시어머니에게 조금은 서운했던 감정들이 책 곳곳에 드러났는데 아래 내용을 보면 나름대로 정리된 것 같다.
p.71~72
수십 년 동안 함께 살며 주고 받은 상처나 서운함 같은 것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시어머니와 돌아가시기 전, 끝내 하지 못했다. 기저귀도 갈아드리고, 식사를 못하실 때는 죽과 미음을 만들어 수저로 떠먹이곤 했었지만, 사실 사랑과 진심으로 모신 시간은 통틀어 겨우 몇 시간이나 될까 싶다. 돌아가시고 난 후 한동안은, 어쩜 시아버지처럼 고맙다, 미안하다 한 말씀 없으셨을까, 서운했기도 했다. 어쩌면 시어머니에게 마음의 문을 완전히 열지 않은 채 며느리로서의 도리만 한 내 속내를 아시고, 별로 미안할 것도 없다 생각하셨을 수 잇다. 며느리가 직장 나갈 때 무게가 꽤 나가는 손주들을 십 수년 간 키워주셨으니, 며느리가 진 빚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한데 지금 와보니, 가족이니 굳이 잘잘못을 따질 것도 없고 그래서 고맙니 미안하니 서로에게 입에 발린 소리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자신의 개인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마음대로 넘겨짚고 평가하는 시선에 억울함도 있었던 가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자에게 밥은 할 줄 아느냐고 물을 때마다 실소가 나온다고 했다. 집에선 손까딱 하지 않고 걱정 없이 바깥 일 할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에 대한 어이없음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가장 힘들고 다른 사람들은 쉽게쉽게 사는 것만 같이 느낀다. 그래서 저자도 저런 질문들을 자주 받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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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비슷한 경험을 한 미국 사는 친구가 있다. 작년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갔는데 그 친구가 말해준 경험담이다. 절친이라 생각했던 친구(나는 모르는 친구)가 자신의 삶에 대해 비아냥섞인 찬사를 하기에 너무 화가 났었다고 했다. 친구의 사연을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너는 어쩜 그렇게 쉽게 선생이 되더니(사대출신이 아니란 비아냥) 삼성맨이랑 결혼하고(남편이 오빠의 친구라서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였음), 애 둘을 다 친정이랑 시댁에서 봐주며 팔랑팔랑 선생질(자신은 교사가 못되서 그런지 계속 교사 비하)하고 다니다가, 것도 그만두고 놀다가 셋째까지 낳고(자신은 불임으로 힘들었음), 이젠 주재원으로 미국 가서 살게 되다니 너무 부럽다.”
친구라면서 저렇게까지 발언할 수 있다니 듣는 내가 더 화가 났다. 급 흥분해서 저런 애랑 아직 친구냐고 했더니, 이젠 거의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내 친구도 사실 결혼생활 쉽지 않았으며 교사를 그만두고 늦둥이를 낳은 이유는 둘째 아이에게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미국에서 주재원의 삶도 녹록치 않다고 했다. 게다가 작년 가을에는 남편이 코로나에 걸려 고생을 심하게 했다. 한국 본사에서 지원해주는 것은 거의 없었으며 물론 병원에 입원도 못한 채 집에서 끙끙 앓으면서 겨우 겨우 견뎌냈다.
이렇게 사람들은 겉으로 보여지는, 자신의 눈으로만 보이는 것으로, 섣부르게 판단하고 평가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저자는 노년으로 접어드는 이 시기에 세상을 보는 시각을 조금 더 유연하게, 젊은 사람들을 더 관대하게 보도록 노력하자고 말한다. 스스로가 그러려고 노력하겠으며 책을 읽는 이들도 그러기를 바란다고 했다. 독자가 젊다면 부모나 상사들을 너무 꼰대라고 싸잡아 흉보지 말아주길 바라고, 비슷한 연배라면 공감하며 읽어주길 원하는 것 같았다. 나이 많이 먹은 것이 벼슬은 아니니 추태는 부리지 말자는 조언도 했다.
p.106
아이의 아름다움이 ‘순수미’라면, 노년의 아름다움은 죽음과 가깝고 운명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간의 한계를 인식시켜 주고 자연의 장엄한 힘을 절감케 하는 ‘숭고미’에 가까울 것 같다. 비유를 하자면 젊은이들의 삶은 꽃과 열매가 가득한 풍성한 녹색에 가깝다면 노년의 삶은 메마른 협곡이나 사막 같을 수 있다. 전자의 풍경에서 생기 가득한 아름다움을 찾는다면, 후자의 풍경은 때로 우리를 압도시켜 작은 자아 따위를 버리게 하는 자연의 광대한 힘을 만나게 한다. 늙고 죽음은 우리를 사라지게 한다는 점에서 운명의 숭고함을 절감하게 만드는 메마르지만 광활한 사막 같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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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같으면 환갑잔치로 축하하며 어른 대접을 받을 60이 이젠 어정쩡한 나이가 되었다. 장년이라기엔 나이가 많은 것 같고, 아직 노년은 아닌 것 같다. 굳이 ‘아름다운 노년’이라는 수식으로 불리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죽음을 기다리고 앉아있는 화석같은 노년이 되지 않으려면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듣고 싶은 소리만 하는 오픈 카톡방이나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유튜브 채널만 들락거려서도 안 된다. 시간이 많으니 오히려 다양한 매체를 접하려고 노력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직접 만나서 들을 수 없다면 이 책 <인생이라는 멋진, 거짓말>을 추천한다. 이 책에는 젊은이들이 쓴 책도 소개되어 있는데 <아빠의 아빠가 됐다>라는 책에 관심이 가서 찾아봤다. 치매에 걸린 50대 아빠를 9년간이나 간병한 1992년생 아들이 낸 책이었다. 꼭 읽어보려고 한다.
유튜브에는 없는 게 없다는 세상이지만 나는 아직 책에서 대부분의 정보를 얻고 재미를 찾는 편이다. 이렇게 노년이 될 내가 먼저 노년으로 진입한 사람의 이야기를 책으로 듣는 것, 또 다른 사람의 책을 소개 받는 것, 나는 이런 활동이 좋고 계속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좀 아쉬웠던 점이 있다. 저자가 정신의학과 교수이고 심리분석 연구소의 원장이라고 하기에 상담 사례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단 한 건도 없었다. 대부분 자신의 인생 경험과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이었다. 저자의 삶이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지만,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말들을 이 책에서 또 읽는 것은 솔직히 조금 지겨웠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