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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내 일 - 일 잘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내 직업을 발견했을까?
이다혜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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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내 일>은 이다혜작가의 인터뷰집이다. 여성이 여성 7명을 만나 인터뷰했으므로 여성 8명의 이야기라해도 무방하다. 인터뷰어의 질문과 생각이 인터뷰이의 대답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한 편의 에세이 같았다. 이다혜 작가의 필력과 세련된 편집력 때문이리라 짐작해본다.
일 잘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내 직업을 발견했을까?라는 부제에 들어있는 단어, ‘여성들’ 때문에 여학생 포함 여자들만 이 책을 읽어야 할까? 사회 각 분야에서 성공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맞지만 성별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읽어도 좋다. 남성 독자라면 여자들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데에 어떤 고충이 있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여성 독자라면 자신의 롤모델로 삼을 인물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남녀 불문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간접 성취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이나 청년층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그럼 나처럼 나이든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배운? 아니, 얻은 것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이루어낸 이들의 인생이야기는 언제나 희망을 준다. 비록 내가 그 일을 할 것도 아니고 꿈을 키울 일도 아니지만... 나는 소설을 읽으며 가상세계 속 타인의 삶을 보며 공감하고 위로도 받는다. 지어낸 이야기이기에 오히려 쉽게 빠져든다. 우리 곁에 실재하는 사람들,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이들이 더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 속의 인물들은 허물없이 다가왔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대화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인물 사진과 텍스트 배열 덕분인 것 같다.
7명의 인터뷰이의 직업 중에 내가 관심가지고 있는 분야의 인물 이야기가 확실히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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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 감독의 영화는 봐야지봐야지 하다가 계속 못 봤는데 메이킹 스토리와 배우 선정 과정을 읽어보니 더 보고 싶어졌다.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카리스마나 리더십 같은 건 아예 없었던 사람이 영화감독을 하게 되다니 단순히 리더십이 있다고 총지휘자인 영화감독을 할 수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는 대화와 경청을 강조했다. 배우 공고를 내고 캐스팅 확정까지 적어도 3개월은 걸리는데 그의 오디션에는 즉흥극이 들어간다. 대화에 집중하는 배우가 즉흥극에 몰입도 잘 하는데, 또래 친구들과 서로 무슨 말을 하고 듣고 반응하는지(즉흥극 오디션)를 본다고 한다. 윤 감독은 “어린이 관객을 위한 영화가 많아져서, 같이 만들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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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모모스 커피의 바리스타 전주연씨의 이야기 ‘가장 나답고 가장 재미있게’는 이 책의 주제로 걸맞는 것 같다. 부산여성의 부산이야기라서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다!!
남들이 반신반의, 아니 뜯어 말렸기 때문에 더 하려고 했다는 바리스타! 여려보이는 외모와는 정반대로 보이는 행동이었다. 커피가 좋아서라기보다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했다는 것을 보니 고집스러운 면도 있다. 그래서 전주연씨는 10년만에 2019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 전해에 출전해서 바리스타라면 그 누구도 하지 않을 실수를 했는데 그것을 오히려 강조했다. “No Tamping Girl”이라고 인스타에 올리면서 탬핑을 안 한 건 내가 유일하다, 부끄럽지만 온리 원이라고 한 것이다.
커피숍에서 커피 내려주는 알바가 바리스타인가? 했는데 전주연씨를 통해 바리스타가 하는 일을 알게 되었다. 커피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잘 살아야 젊은이들이 꾸준히 유입된다, 커피 산지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생각을 읽으니 바리스타는 단순히 커피콩을 볶고 커피를 내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커피원두 한 알에서 시작해 커피산업 전반으로 연결되었다. 요즘은 또 모모스의 베이커리 완성도를 올리려고 경남 함양의 농부들을 만나러 다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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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세랑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동안 소설만 읽었기에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전혀 알 길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소설을 쓰기 전 어떤 일을 했는지 알게 되었고, 그의 생각들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소설을 쓰지는 않지만 작가가 글이 안 써질 때 어떻게 하는 지를 읽으니 ‘역시, 그렇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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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에는 철새관찰을 한단다. 파주나 연천 쪽에 가서 철새 관찰을 하고 환경쪽에 기부를 하며 앞으로 맹그로브 숲을 보호하는 일에 참여하고 싶다고 한다. 그의 탐조생활이 앞으로의 활동이 소설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된다.
이 책 전체에서 이다혜 작가가 정세랑 작가 편에 한 마지막 코멘터리가 가장 마음에 든다.
“정세랑의 여자들은 낙원에 살지 않는다. 그들이 존재하는 소설을 읽는 독자가 되는 일은, 낙원을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커틸 연대자들을 찾는다는 뜻이다. 장점 특화형, 사람들의 매력을 먼저 발견하는 눈을 지녔다는 것은 창작자에게 장점일까 단점일까. 독자들을 연대자의 자리에 당당하게 호출하는 정세랑 작가의 이야기들은, 자주, 살고 싶다고, 살리고 싶다고 속삭인다. 누군가 있다고, 내가 있다고, 당신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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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고인류학자의 치열한 유학기는 어찌보면 흔한 미국유학 성공기다. 유색인종에다가 여성으로서 백인위주의 고고학 현장에서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을지 예측가능하다. 그 난관들을 이겨내고 현재 교수자리에서 그가 내는 목소리는 편안해보여 다행이었다. 여전히 인종차별 받는 인간이 있고, 기후위기로 생존위협을 받는 동물이 있는 현 상황에서 인류가 할 일이 무엇인지 그는 이렇게 말한다.
p.197
인간이 ‘우리가 없어지면 이 세상이 끝나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만큼 자만은 없다고 봐요. 인생에서 저는 이제 다음 단계를 준비한다고 생각해요. 아, 지금까지 놀이터에서 잘 놀았다. 나는 이제 학교에 가야되고 다른 애들이 놀아야 하니까 놀이터를 치워야지. 청소도 하고, 모래사장도 가지런히 하고, 운동장이 기울어졌으면 판판하게 해 놓고, 쓰레기가 있으면 치우고, 다음 사람들을 위해서, 인간도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 단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없어진 세상을 준비하기. 그것은 우리가 멸종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하는 생각이에요. 인간은 미래를 생각하고 다음 세상을 생각하니까요.
이 책에서 만난 인물들은 자신의 일을 우직하게, 성실하게, 즐겁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쩌면 너무나 평범하고 뻔한 결론이긴 하다. 그래도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길 추천한다. 나와는 영 상관없는 것 같아도 어떤 한마디에 꽂히게 될지도 모르니까...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