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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 생의 남은 시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김범석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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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라는 제목은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여러 번 되뇌게 만드는 제목이었다.
저자 김범석씨는 서울대학교 암병원 종양내과 전문의로서 그가 말하는 어떤 죽음은 말기암 환자들의 죽음이다.
종양내과 의사가 본 죽음의 모습은 어땠을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동생에게 내 돈 2억 갚으라 하고 죽은 형, 가족도 의사도 몰랐는데 사후 뇌기증을 하고 죽은 80대 남성, 죽은 아이의 신발을 사서 태운 엄마, 말기암 환자인줄 알면서도 결혼한 남자, 최선을 다해 생명을 연장해 달라고 했지만 가슴뼈가 부서지도록 실시한 CPR 끝에 어머니를 보낸 자식들...
이런 죽음들이 삶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 삶이란?
살아있는 우리 모두를 가리키는 것일 터이다.
저자는 죽음이 하는 말을 살아있는 이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의 어제는 우리의 오늘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오늘은 또 다른 이의 내일에 영향을 미친다. 삶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 모두는 이어져 있다. 누군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기억이 다른 이의 삶에 작은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진 빚을 비로소 갚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죽음이 삶에게 전하는 이야기들을 이 책에 담아서 당신에게 바친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저자의 당부처럼 본인의 삶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면, 우리는 제목대로 어떤 죽음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들은 셈이다. 이 책을 읽은 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뭔지 알게 되었고 직접 쓴 사람이 있다면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일으킨 파도라 할 것이다. 나는 몇 년전부터 생각만 했지 직접 쓰지는 못했다. 또 호스피스 자원봉사활동도 생각만 하고 차일피일 미뤘더니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는 자원봉사교육을 중단시켰다.
그럼 이 책을 읽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암에 걸렸을 때 김범석 선생을 찾아가는 것? 아닐 것이다! 암처럼 기대여명을 알 수 있는 질병에 걸린다면 차분하게 생을 정리하며 인간적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인위적 치료는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힐 것이다. 이보다 염려스러운 건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그걸 어떻게 대비하나? 본인도 가족도 황망할텐데... 그러니 간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 화두는 내 책장에 책들이 이중으로 꽂히게 될 때부터 계속 생각해왔는데, 그럼에도 점점 책 꽂을 자리가 부족해지기만 하니 실천은커녕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올해엔 책을 덜 사고 서평단 신청도 한 달에 두 권을 마지노 선으로 정했는데, 참으로 버겁다... 심플라이프는 말로는 쉬운데 실천이 힘들다. 금연을 선언했으면 단번에 끊어야지 서서히 줄인다는 여지를 두면 실패확률이 높다더니 딱 그 짝이다. 아예 책을 안 사고 서평단 신청도 안 해야 한다! 그래야 책이 쌓이지 않는다. 그리고 안 입는 옷을 포함 불필요한 물건들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앗, 글이 조금 딴 길로 샌 것 같다. 하지만 죽음이 나에게 말해준 것은! 내가 죽음에게 들은 것은! 이것이다!
심플라이프 실천!
그리고 지금 감사하기!!
'저는 항암치료 안 받을래요’
삶에서 고난은 불가피하다고 부처는 말했다. 그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암도 마찬가지다. 암에 걸린 뒤에 부딪치게 되는 어려움들은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다. 하나를 피하면 결국 둘, 셋이 되어 돌아오는 것까지도 지독하게 인생을 닮았다. 그러니 고통이나 힘든 일이 없기를 바라기보다 마땅히 있을 것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암 진단을 받아도 눈앞에 놓은 상황을 회피하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고 힘든 항암치료여도 필요하다면 기꺼이 받는다. 치료 과정에서 겪게 될 고통도 감수한다. 그리고 그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면서 생명 연장과 증상 완화라는 결과를 얻어낸다.
‘10년은 더 살아야 해요’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태어난다. 일종의 숙제라면 숙제이고,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의 숙제를 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인생의 숙제를 풀든 풀지 않든, 어떻게 풀든 결국 죽는 순간 그 결과는 자신이 안아 드는 것일 테다. 기대여명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특별한 보너스일지도 모른다. 보통은 자기가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 채로 살다가 죽기 때문이다.
‘대화가 필요해’
가족이어서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가족만큼 서로 모르는 존재도 없지 싶다. 타인은 모르는 대상이기에 예의를 갖추고 서로 알기 위해 대화하지만 가족은 날 때부터 가족이었으므로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고 착각한다. 무슨 문제가 생기든 결국에는 괜찮아질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상처주기 십상이다. 언제나 ‘가족이니까’와 ‘가족인데 뭐 어때’ 그 언저리에서 누구보다 가장 모르는 존재가 되기 쉬운 것이 가족인 것만 같다.
‘믿을 수 없는 죽음’
고통스러운 과정을 버티는 환자들을 지켜보다 보면 ‘죽을 용기’라는 말에 동의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지켜본 바로 용기라는 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가 아니라 ‘결국 죽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날들을 버텨내고 살아내겠다’는 의지에 가까운, 살아내는 용기였다.
‘임종의 지연’
어차피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일이라면 임종이 지연될 때 대답할 수 없는 환자에게 묻고 싶어진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발걸음을 때지 못하는지, 알 수만 있다면 알아내서 그 바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 평탄하지 않았을 삶과 지난한 투병 끝에 떠나는 길만큼은 가능한 한 가볍게 떠날 수 있기를, 의사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바라게 되는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